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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장 자살을 결심하고죽음의 문턱에 서서 제 1 절 족벌왕국에 환멸을 느끼고 약속을 어겼던 곽정환 회장은 문선명의 명령으로 한국 통일교 회장에서계 통일교 회장으로 인사발령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문선명의 사촌 조카사위인 황선조가 취임을 하였습니다. 황선조는 단 한번도 개척하지 않고 교구장이 되었고, 실적도 공적도 없는데 문선명의 사촌인 문용현 사장의 딸과 합동 결혼식을 하여 하루아침에 한국 통일교 협회장이 되었습니다. 곽정환 회장은 한국 통일교회 회장직을 물려받은 황선조에게 박준철 영도 목사를 교구장으로 추천하니 문선명 교주에게 보고 드리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황선조 회장은 저에 대한 실적과 공적(협회장 상 10회, 교구공로 16회, 총 26회 수상, 부흥 교회 건축)을 문선명 교주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황선조 협회장은 그 당시 문선명 교주가 머물고 있는 제주도 영빈관으로 박준철, 양우진(전남 부흥단 단장)을 교구장 후보로 복수 추천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곽정환 회장이 추천한 저는 간단히 설명 후 탈락시켰고, 전국 통일교 우수교회 협회장 상을 한차례도 수상하지 못한 양우진을 종로 교구장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이와 같이 문선명의 통일제국은 족벌왕국입니다. 저는 점점 더 건강이 악화되어 심장 판막과 심부전증으로 사투를 벌여야 했습니다. 전도활동과 심방활동, 통일교 합동결혼식 행사로 밤낮으로 황동을 하여 밤에 코피를 흘리고 모든 물체가 희미하게 보일 정도였습니다. 영도 통일교를 총책임지고 있는 이진상 순회사가 정성을 다하여 저를 보살폈고 이상희 부인 회장이 저의 식사 준비에 정성을 다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제 영혼과 육신을 문선명 교주에게 빼앗긴 사실과 건강악화, 아내와 자녀들에 대한 무능한 남편이라는 자괴감 때문에 밤마다 괴로워하였습니다. 결정적인 것은, 문선명 교주가 참 부모 메시아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 받았다는 새 진리요 성약이라고 주장하는 통일교 원리강론은 김백문 사이비 교주의 교리인 성서신학과 기독교 근본원리를 문선명이 도용하여 통일교 원리강론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으로부터 계시 받은 새 진리라고 한 것이었습니다. 통일교 목회자와 교인들을 속인 것입니다. 문선명 교주가 김백문 교리를 이용하여 자칭 재림주가 되고 수많은 영혼을 지옥으로 끌고가는 통일교 원리강론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저는 속았다는 배신감에 통곡해야 했습니다. 통일교 전단지 한 장에 청춘을 빼앗기고 저를 30년 동안이나 노예로 삼고 이용한 문선명 교주를 생각하면 제자신의 어리석음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미친 사람 같이 밤마다 '부산 영도섬에서 죽어야지' 라는 그 생각으로 머릿속에 가득차 있었습니다.
제 2 절 "준철아! 죽지 말아라." 저는 문선명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배신과 분노를 느꼈습니다. 밤마다 새벽 4시~5시까지 불면증에 시달리며 새벽 기도 후에야 겨우 잠이 들곤 했습니다. 그리고 밤에 차를 몰고 나가 영도 섬을 돌며 절벽 아래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으려고 수십 번 시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죽으려고 할 때마다 "죽지 말아라!" 라는 음성이 제 귀에 생생히 들렸습니다. 낮에 전도하며 심방을 하다가도 영도섬 끝에 있는 태종대 유원지 자살바위에 서서 천길 절벽 아래로 뛰어 내리려고 했습니다. 태종대 등대에도, 신선대 절벽 바위에도 여러번을 가서 한 많은 제 인생을 마쳐야 되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준철아! 죽지 말아라" 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저는 자살하려는 순간 그 음성을 듣고 번번이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로 돌아와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때로는 분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를 자해 하기도 하고, 방을 뒹굴며 큰 소리를 지르기도 하였습니다. 배신과 절망감에 사로잡혀 미칠 것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1998년 4월 30일 오후 5시경 자살을 결심하고, 영도 신선대 바위에서 뛰어 내리려는 순간 이었습니다, 지금 까지보다 훨씬 더 크고 뚜렷한 음성이 저를 사로 잡았습니다. "준철아! 죽지 말아라. 문선명 통일교 집단을 궤멸하여 박준철과 같은 제2의 희생자를 막아라. 이단집단을 궤멸하라." 저는 그 음성에 압도되어 자살하려는 생각을 단념 하였습니다. 그리고 문선명 집단에서 겪은 것을 책으로 써서 이 세상에 문선명의 정체를 폭로하여 수많은 영혼을 구할 결심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 이름으로 문선명 집단과 같은 사이비 집단을 궤멸하라는 사명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책이 발행될 때까지 심장병이 더 악화되지 않도록 기도와 약으로 병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제 20장 폭언 폭력 배신으로일괄된 통일교 지도자 제 1 절 황선조 회장에게 한 직언 황선조 한국 통일교 회장이 전국 통일교회 순회 집회를 하였습니다. 부산교구 본부 교회에는 1998년 4월 14일에 왔습니다. 낮12시부터 부산시내 통일교 목회자 부부들이 황선조 회장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황선조 회장은 통일교를 배반하고 나갔던 문선명 비서실장인 박정화씨(야록 통일교회사 책을 발행한 저자)와 합의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부산 시내 통일교 목사 중 최고 실적과 공적을 많이 쌓은 목사로 부산교구 목사 대표자로 선정되어 황선조 회장에게 영도교회 발전과 통일교 발전안을 놓고 보고를 하였습니다. 황선조 회장은 "앞으로 한국 통일교회가 발전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고 저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사실을 말한다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직언을 했습니다. "통일교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통일교 기업체를 정리하고 사명감 있는 목사들을 양성하며 통일교 교인들이 신바람 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통일교회가 말로만 공생 공영 공의주의를 주장하고 입으로는 사랑을 외치고 있지만 실천한 것이 아무것도 없고, 47년 동안 통일교회 교인들은 희생의 제물만 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통일교회는 사회를 위하여 고아원 하나도 없고, 사회인과 통일교 교인들을 하여 양로원도 병원도 하나 없는 무풍지대입니다. 통일교 교인들에게 40년 동안 명령만 하였지 통일교 목사들과 교인들을 위하여 협회에서 무엇을 해주었습니까? 통일교 목사들이 굶어 죽고 병들어도, 통일교 협회에·는 조금도 혜택이 없었습니다. 목회자 자녀 교육비나 노후를 위해서도 신바람 나는 목회가 아닙니다. 저는 서서히 마음정리를 해가고 있었습니다. 생활이 있고 처자식이 있다 보니 빨리 서울로 올라가서 가족과 합하지 않고서는 안되었습니다. 병든 몸을 가지고 홀로 목회하면서 정리한다는 것은 너무 무리였습니다. 저는 빨리 서울로 올라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제 2 절 김용갑 교구장의 폭언과 폭행 김용갑 교구장은 마침내 회복할 수 없는 사건을 저질렸습니다. 그 날은 1998년 6월 11일 금요일 이였습니다. 문선명은 1998년 6월 13일에 있을 1억 2천만 쌍 합동 결혼식을 위하여모든 통일교인들을 몰아 세웠습니다. 저도 영도 통일교회 미혼남녀들의 합동결혼을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동분서주하며 뛰었습니다. 합동결혼에 참석할 예비 신랑 신부의 약혼이 거의 다 성사되고 최종적으로 이상희 부인회장 아들 이봉규와 김영주 장년회장 딸인 김혜진만 제일 늦게 사진으로 약혼이 되었습니다. 일본 사람과 약혼이 되어 일본에서 신랑, 신부 될 사람 사진이 부산 교구 본부에 도착했습니다. 6월 11일 영도 통일교회의 이봉규와 김혜진은 김용갑 교구장의 축도를 받기 위하여 저녁 늦게 교구본부에 갔습니다. 부산 시내 통일교 18명의 목사들은 한 사람도 자기 교회에 미혼 남녀 약혼식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목사들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저는 오전에는 심방활동을 하였고 오후에는 영도 여성연합 하진희 회장의 부탁으로 악령에 사로잡힌 김숙자씨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저는 김숙자씨에게 남편과 자녀들이 통일교회를 나오면 확실하게 악령을 제거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만일 교회를 빠른 시일 내에 나오지 않으면 김숙자씨가 자살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한 달 후인 1998년 7월 10일에 김숙자씨는 정말로 목을 매고 자살을 시도 하였습니다. 김숙자씨는 자살시도 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식물인간이 되었다가 의식을 회복하였지만 뇌세포가 많이 파괴되어 정신병원에서 폐인이 되어 가정에 돌아오지 못하였습니다. 김숙자씨를 만나고 저녁에 영도 통일교회에 돌아와 속회예배를 드렸고 기진맥진 하였습니다. 그래도 저는 우리 교인의 일이라 책임감을 느끼고 부산 통일교 교구 본부 교회로 갔습니다. 저는 김용갑 교구장에게 이상희 부인회장의 아들인 이봉규의 아내 될 사람과 김영주 장년회장의 딸인 김혜진의 남편 될 사람 사진을 보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사진을 보았더니 너무나 착하고 아름다운 신랑, 신부였습니다. 이봉규씨는 19살이었습니다. 저는 두 사람이 잘 만났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김용갑 교구장이 저에게 하는 말이 "영도 통일교회 부인회장 아들인 이봉규는 000네." 하면서 입에 담지 못할 모욕적인 욕을 하였습니다. 저는 "둘이 행복하게 잘 살라고 하지 못할 망정 결혼을 파괴하려고 그런 말을 하느냐고 반문하였습니다. 그래도 김용갑씨는 "김혜진 신랑 될 사람은 키가 너무 작다" 고 또 다시 부정적인 말을 하였습니다. 이봉규에 대한 모욕적인 언사에 마음이 상당히 상했지만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밤 10시가 되어 일본에서 온 신랑, 신부 사진을 각자 받았습니다. 김용갑 교구장은 "약혼이 된 신랑, 신부 사진을 보고 마음에 안 들면 파혼하라" 고 5번이나 외쳤습니다. 저는 김용갑 교구장이 말하는 것을 보고 못 마땅 하였습니다. 합동 결혼식을 할 미혼 남녀들은 사진으로 자기의 아내 될 사람과 자기남편 될 사람을 보게 된 것이니 고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에 들면 기쁘고 다행이지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파혼을 해야 되는 상황에서 김용갑 교구장은 불안과 공포를 조성하였던 것입니다. 김용갑 교구장은 기도실에서 약혼 축도를 하기 위하여 신랑, 신부를 모았습니다. 일본이나 필리핀에서 온 신랑, 신부 사진을 한국의 약혼자들에게 나누어주는 시간이었습니다. 영도 통일교회 차례7,1 되어 상대방의 사진을 받았습니다. 이상희 부인회장 아들인 이봉규씨 아내 될 사람은 얼굴도 착하고 키도 크고 빠지는 데가 없었습니다. 이상희 부인회장과 이봉규씨는 좋아서 어쩔줄을 몰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김영주 장년회장 딸인 김혜진씨는 '남편 키가 작네." 하면서 불평을 하였습니다. 김영주 장년회장도 사위 될 사람이 키가 작다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신랑 될 사람은 김혜진씨 보다 9cm이나 컸습니다. 저는 김혜진의 키가 작다는 불평 소리에 결혼할 사람이 착하고 진실한 얼굴이고 천생연분이라고 말하고 격려하는 뜻에서 앞으로 행복하게 잘 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부산교구 본부 부인회장이 "영도 또 시작한다. " 라며 빈정거렸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김용갑 교구장이 영도 통일교회 목사인 저에 대해 무수한 비난을 했다는 증거였습니다. 저는 여러 사람 앞에 참을수가 없어서 조용히 밖으로 나왔습니다. 저는 복도에서 마주친 김용갑씨에게 "어떻게 교인들 신앙 교육을 시켰으면 교인이 다른 교회 목사에게 반말을 씁니까?저는 그 여자 교인을 알지도 못하는데 영도교회 일에 끼여 들어 파혼을 시키려고 합니까?"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김용갑 교구장은 "영도교회 목사가 잘못하였다" 고 하며 자기 교인만 감싸고 돌았습니다. 저는 다시 기도 실로 들어가 그 부인회장에게 '당신이 누구냐? 영도 또 시작 한다고 했는데, 무엇을 시작하느냐? 왜 목사에게 반말을 하느냐?" 고 꾸짖었습니다. 그러자 교구 본부 교회 부인 회장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저와 여러 교인들이 "왜 거짓말을 하느냐?" 고 따졌더니 그때서야 시인하였습니다. 그리고 교구 부인 회장도 잘못했다고 사과를 하였고 교구 부인회장의 남편이 되는 장로도 저에게 내용을 알지 못하고 영도 교회 일을 방해하여 죄송하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밖으로 나와 밤12시가 다 되어 영도 통일교회에 돌아왔습니다. 저는 남의 교인에게까지 무시당한 데 대한 아픔으로 밤새도록 잠을 자지 못하였습니다. 다음날인 1998년 6월 12일은 부산 교구 본부 회의실에서 부산 시내 통일교 목사들의 회의가 있었습니다. 저는 회의 시간에 회의 분위기를 망칠까봐 어제 밤 사건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김용갑 교구장이 저에게 사과를 하고 서로 화해하고 조용히 처리하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그러나 김용갑 교구장은 저에게 사과를 하지 않자 할 수 없이 어제 밤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동래 허한경 목사와 김진수목사도 교구 본부 부인회장이 잘못한 것이고, 김용갑 교구장이 저에게 잘못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부산 시내 통일교 목사 전체가 "승공 연합 빼앗은 일이나 이번 사건은 김 용갑 교구장이 잘못 했다" 고 저에게 사과를 하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김용갑 교구장은 제가 말을 다 마치지도 않았는데 막말로 '알 다했냐?" 하면서응접실 의자에 앉았다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러면서 "병신새끼, 꼴값하네!!" 하며 저에게 욕설을 하였습니다. 그 말 한마디는 저의 심장에 비수가 되어 꽃혀 버렸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교통 사고 후 단 한차례도 '병신새끼' 라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하였는데 통일교회에 들어와 병신새끼라는 말을 처음으로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나오려고 일어났습니다. 그랬더니 김용갑교구장은 갼자기 의자위로 올라가 저에게 주먹질을 하고 발길질을 하였습니다. 저-'김용갑 교구장의 폭력에 더 이상 때리지 못하도록 넥타이를 잡았을 뿐 어떤 대응도 하지 않았습니다. 동래교회 허한경 목사와 부산진교회 김진규 목사가 김용갑 교구장을 말려 걱우 진정이 되었고 저는 교구장실을 나와 버렸습니다. 저는 충격과 심장판막과 심부전증으로 인하여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겨우 영도 통일교회에 돌아왔지만 몸을 가눌 수도 없었습니댜. 하나님의 뜻을 이끌어내시고자 문선명과 나와의 관계를 구세주 참 부모와 참 아들 효자의 관계에서 서서히 세뇌마취에서 깨어나 사랑과 믿음을 끊고 조금씩 조금씩 문교주에게 절대복종의 자리에서 점차적으로 세뇌에서 깨어나 통일교를 떠나게 만드는 역사를 해오신 것입니다 제 3 절 문책인사를 약속한 황선조 회장 1998년 6월 13일 1억 2천만 쌍 합동 결흔식을 위하여 영도 통일교회에서 교인들을 합동결혼식 하객으로 총동원하여 서울의 잠실 체육관에 참석하여야 했습니다. 1억 2천만 쌍 합동결혼식이라고 전 세계 언론과 매스컴을 통하여 알렸지만 과장되고 거짓된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잠실 체육관에서 2천쌍 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3일 동안의 폭언과 폭력을 겪어 몸이 만진창이 되었지만 합동결혼식 행사를 치렀고 서울 집에 있는 자녀들을 보지도 못한 채 영도교회로 내려왔습니다. 1998년 6월 26일 부산 시내 통일교 목사 회의석상에서도 통일교 목사들이 김용갑 교구장에게 영도교회 박준철 목사에게 사과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김용갑 교구장은 사과를 하겠다고 했지만 사과는커녕 오히려 저를 모함하기 시작했습니다. 통일교 콘도인 설악산 일성 콘도에서 전국 통일교 목사 회의가 있었습니다. 저는 심장병으로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김용갑 부산 교구장은 설악산에서 황선조 협회장과 김종우 총무국장 등에게 자기 잘못에 대해서는 일절 말하지 않고 오히려 저를 비난하는 말을 하며 저를 인사 조치하여 잘라 버리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김용갑 교구장의 모두 잘못한 것이 드러나서 저를 인사발령 시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김용갑 교구장 자신이 문책 인사로 부산 교구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김용갑 교구장은 지혜롭지 못하여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판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에게 사과하고 조용히 끝내기를 바랬는데 오히려 사건을 황선조 협회장에게까지 끌고 가 일을 확대시킨 것이었습니다. 저는그 내용을 알지 못하고 있다가 통일교 협회 김종우 총무국장이 부산 영도교회로 전화를 해주어 알게 되었습니다. 김용갑 부산 교구장은 교만하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며 교구장의 직분을 망각하고 회개하지 않고 사과할 줄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부산 시내 18곳의 통일교회 목사를 책임지고 명령하는 직책이 교구장입니다. 김용갑씨는 18곳의 교회 헌금을 받아 임의대로 사용하였습니다. 불법이고 공금 횡령죄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김용갑 교구장은 주위의 통일교 목사들이 욕을 얻어먹을 각오를 하고 충고를 하여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1998년 7월 1일 서울 통일교 협회 사무실로 갔습니다. 황선조 통일교 회장을 만나 김용갑 이야기만 듣지 말고 저의 이야기도 듣고 판단하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황선조 회장이 화를 내고 격하게 이야기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김용갑 교구장의 잘못을 낱낱이 보고하였습니다. 황선조 회장은 박준철 목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김용갑 교구장을 문책인사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있는 앞에서 황선조 회장은 김용갑 교구장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박준철 목사의 말이 사실이냐고 물었습니다 처음에는 김용갑 교구장이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뒤에 사실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황선조 회장은 그 자리에서 김용갑 교구장에 대한 문책 인사를 할 것이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저는 그 길로 서울 .집에 잠시 들렀다가 부산 영도 통일교회로 내려갔습니다. 제 4 절 눈물로 세운 부산 영도 교회를 떠남
"황선조 회장은 김용갑 교구장이 부산 교구장에서 면직되고 서울 시내 구단위 교구장으로 문책 인사를 당하는데 전국 교구장들은 이번 사건을 주시 하고 있다" 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국 통일교 회장의 체면을 보아서 박준철 목사가 황선조 회장의 체면을 세워 달라" 고 하였습니다. 총무국장은 "지금까지 황선조 협회장이 한국 통일교 교구장과 목회자 인사이동을 시키면서 단 한번도 먼저 전화를 하거나 양해를 구한 일은 없는데 박준철 목사가 처음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생사를 넘나들며 전력을 다했던 영도 통일교회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김종우 총무국장은 "황선조 회장이 미국에서 김종우 총무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반드시 박준철 목사를 기억 하였다가 내년 1999년 2월 7일 3억 6천만 쌍 합동결혼식 후에 교구장으로 발령을 하겠다고 약속하겠다" 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미 1998년 6월 설악산 일성 콘도에서 전국 통일교 목사 총회때 전체 교구장들의 사표를 받아 놓았다고 하였습니다 3억 6천만 쌍 합동결혼식 할 때 실적이 나쁜 교구장들의 사표를 받기 위해서라고 하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를 교구장으로 발령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때까지 몇달 동안만 과천교회에서 교인들을 수습하고 너무 어려우면 한 달만 교구장 자리가 나면 바로 저를 발령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2년 5개월 만에 영도 통일교회를 목사로서의 사명을 마치고 죽음의 고개를 넘어 살아서 영도섬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1998년 8월 2일 주일날에 영도 통일교회에서 마지막 이임예배를 드렸습니다. 저는 마지막 이임 예배에서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영도 통일교회에 이진상 하진희 순회사님 가정, 이광철 이상희 회장 가정, 김봉민 사찌꼬 가정, 김옥순씨 가정 등 영도 통일교회 전체 교인들의 정성을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 뿐 이었습니다. 심장병으로 고려대학 병원에 응급실에 2차례나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고, 자살을 30번도 넘게 결심하고 시도하였지만 죽지 않은 것을 감사하게 생각 했습니다. 영도 통일교회를 떠나며 모든 영도 통일교회 교인들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뜻은, 저를 문선명 자칭 구세주로 부터 빨리 통일교로 부터 탈출시켜 통일교 궤멸을 시키고자 고난, 시련, 가시밭길을 저는 걸어야 했습니다. 문선명과 저와의 관계가 참부모 구세주와 아들의 관계가 아니라 문선명을 불신하게 만들고 정을 끊고 통일교를 떠나게 만들고자 마지막까지 인사문제 폭행 폭언을 당하며 저는 생사를 넘나든 병고와 싸워야 했습니다. 제 5 절 과천통일교회에서의 비참한 생활 과천교회는 세워진 후 8년 동안 어려운 교회였습니다. 처음엔 처녀 전도사가 목회를 하였고 후임으로는 1992년 3만 쌍 합동결혼식을 한 목사였습니다. 그러나 그 목사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아 과천교회를 떠났습니다. 그 다음은 제가 1982년도 경기 화성 교회에 목사 생활을 하며 합동결혼식을 시키고 신앙 지도를 하였던 이정만씨가 과천교회 목사였습니다. 이정만 과천교회 목사는 교인 20명에 불과한 개척교회에서 교인들이 모이면 언쟁을 벌이고 교인들이 이정만목사와 싸움을 하여 허탈과 배신감으로 통일교 목사직을 사직하였습니다. 이정만 목사는 과천에 온지 3개월 만인 1998년 4월에 과천교회 목사직을 그만두었습니다. 이정만 목사는 진실하고 정직하며 착한 목사입니다. 제가 화성교회 목사로 있을 때도 가장 모범 된 교인이었습니다. 기독교 신학대학을 다녔지만 통일교 교인으로 학교에 알려져 신학대학을 졸업하지 못하고 통일교 선문대학 4학년에 편입하여 신학교를 졸업하여 열심히 목회자의 사명을 가지고 살았던 이정만 목사는 배신감에 통일교 목사직을 버렸습니다. 과천교회 통일교 교인들은 몇 달 동안 목사도 없이 교인 10명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통일교 협회에서는 저를 그렇게 처참한 과천교회 목사로 발령하였던 것입니다. 그 곳에는 개척도 하지 않고 협회장상을 한번 받지 않고 교회를 부흥시킨 일이나 교회 건축한 일도 없는 교구장이 그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저는개척, 부흥하여 교회건축을 한 서울 강서교구 본부나 노원교구 본부에 간 후 통일교회를 떠날 생각을 했지만, 과천교회에서 통일교 목사직을 그만두고 탈퇴할 결심을 하였습니다. 1998년 8월 3일부터 저는 아내와 같이 과천교회를 수습하였습니다. 8월달에 비가 그렇게 많이 왔는데도 비를 맞아 가며 심방활동을 하였습니다. 과천 통일교회는 종교 부지 내에 3층을 분양 받아 2칸으로 막아 교회와 사택을 꾸몄습니다. 70평이라고 하는데 실제 평수는 50평 정도에 불과 했습니 다. 과천교회는 매년 여름만 되면 비가 올 때마다 옥상에서부터 비가 새어 4층 학원으로 쏟아지고 4층 학원을 채운 빗물은 3층 통일교회로 쏟아져 내려왔습니다. 교회에 발목까지 물이 차서 물을 퍼내야 했습니다. 매년 겪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사택이나 방에도 비가 새고 교회에 발목까지 물이 차다보니 그 물을 다 퍼내는데는 10일이 넘게 걸렸습니다. 교회에 물을 다 퍼내고 나면 벽에서 물이 나오고 교회 콘크리트에서 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교회 내의 전기는 누전이 되어 매년 여름에는 전기 불을 켤 수 없습니다. 교회에 창문이 없어서 교회에만 들어가면 숨이 막혔습니다. 저는 가는 곳곳마다 통일교회를 부흥 발전시켰으며 교회와 가정적인 생활안정을 지금까지 시켰지만, 과천교회에서는 더 이상 교회를 발전시킬 필요가 없었습니다. 제 자신을 정리해야 했고 가족들의 처절한고통과 가난,배고픔으로 내몰아야 했습니다. 저는 과천교회에서 통일교 목사직을 탈퇴할 준비를 해야겠다고 굳게 마음먹었습니다. 더 이상 교회를 발전시키면 하나님께 죄를 짓는다는 생각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제가 목회하는 개척교회 마다발전시켰지만 더 이상 수많은 영혼을 지옥으로 끌고 가는 일을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저는 교회를 발전시켜 가정생활이 안정되는 길을 포기하고 가난을 선택하였습니다. 저의 자녀 대학생 3명의 등록금도 없어서 휴학계를 내고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습니다. 아내는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병든 몸을 이끌고 파출부와 식당 일을 해야 했습니다. 교회를 부흥시킬 능력이 있지만, 가난을 선택해야 했고 문선명 사이비교주를 위해 교회를 부흥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황선조 회장이 미국에서 한 전화약속도 져버리고, 협회 김종우 총무국장의 약속을 받고 과천으로 왔지만 하나님은 빨리 통일교회를 탈퇴하라는 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목사 생활비를 4달 동안이나못 받고 자동차 기름값이 없고 버스 탈 돈도 없는 처절한 생활고로 목회자 교육 때도 가지 못하는 비참한 생활 이었습니다. 저는 문선명 참 부모 재림주라는 통일교 교주를 믿어도, 통일교회는 구원이 없고 믿음도 사랑도 소망도 없는 지옥 그 자체 생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6 절 연속되는 폭행과 폭력과 거짓말들 1999년 1월 28일날 문선명 통일교 교주 사돈인 곽정환 통일교 총 회장, 황선조 한국 통일교 회장을 협회 회장 사무실에서 만났습니다. 그 곳에 김종우 협회 총무국장도 같이 있었습니다. 2월 7일 3억 6천만쌍 합동결혼식 행사를 위한 준비 모임이었습니다. 그 동안에 통일교 역대 협회장들이 저에게 약속과 신의를 저버리고 배신한 행위와 부당한 인사이동으로 억울한 일을 당한데 대하여 직언을 하였습니다. 황선조 회장은 저를 보고 "박준철 목사가 죽던지, 황선조 회장이 죽던지싸워보자" 고 저에게 말하였습니다. 저는 "그 동안에 폭력, 폭행을 하다가 이제는 살인까지 할거냐?" 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황선조 회장이 저를 치는 바람에 저는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사이 김종우 협회 총무국장이 저의 멱살을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갔습니다. 저는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통일교 강제 부정인사와 폭행, 폭력으로 심장병에 걸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인데도 곽정환 회장의 말 한마디를 믿고, 혼자 부산 영도교회목사로 부임하였던 제 어리석음을 자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고향인 경상남도로 가서 잠시 다녀 오라" 고 해서 부산의 영도까지 다녀온 저는 "과천 개척교회 목사로 부임하기 위하여 부산 영도교회까지 간 것이 아닙니다" 라고 곽정환 회장과 황선조 회장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곽정환 회장은 "내가 언제 그랬느냐?" 고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곽정환 회장이 저에게 잠시만 부산에 다녀오라고 5번이나 말을 하였고, 임도순 부 협회장도 바로 서울로 원대 복귀하게 될 것이라고 저를 위로해 주었는데 말입니다. 저는 김종우 총무국장에게 "약속을 지키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고 물었습니다. 그는 "곽정환 회장의 약속을 황선조 회장이 책임질 이유가 없다" 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황선조 회장과 김종우 총무국장은 2월 7일 축복 후 교구장 인사 이동시 최선을 다하여 박준철 목사를 교구장으로 발령하겠다" 고 또 다시 저에게 약속하였습니다. 김종우 총무국장은 "1999년 2월 7일 3억 6천 쌍 통일교 합동결혼식 측복 후 최선을 다하여 교구장으로 발령하겠다" 고 또 다시 약속하였습니다. 저는 그 소리에 눈과 귀가 멀고 영혼까지 멀어 명예 회복을 한 후 통일교를 탈출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에 유린당하며 약속을 지키는 협회장을 한 사람도 못 보았으면서도 속았던 것입니다. 저는 문선명 교주에게 너무나 세뇌되고 교육되어 있었기에 마음으로는 통일교를 탈출 한다 하면서도 행동으로는 탈출 하지 못하였습니다. 제 자신이 한 없이 부끄럽고 미웠습니다. 제 7 절 위장된 합동 결혼식
잠실 올림픽 주 경기장에 혹독한 겨울 추위가 몰아쳐 전국에서 몰려온 노인정의 노인들은 추위에 떨며 아수라장을 이루었습니다. 서로 밀고 밀치며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12만 명의 노인들과 통일교 교인이 모였던 것입니다. 출입구에서는 노인정에서 온 노인 12만 명에게 하얀 목도리 한 장씩과 빵을 하나씩 선물하였습니다. 통일교 행사장의 사회자는 하얀 목도리를 목에다 감지 말고 하얀 목도리 끝이 무릎까지 내려오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합동결혼식은 매스컴이나 언론 기자들은 세계 통일교 교인들에게 공중헬기 중치로 방송하기 때문에 노인들까지 하얀 목도리를 어깨에 걸침으로 미혼 신랑, 신부같이 보이게 하기 위한 위장전술이 었습니다. 전국 팔도에서 올라온 노인들이 서울 잠실 경기장에 모여 문선명 교주의 거짓된 합동 결혼식장의 들러리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 추운 걱울 날씨에 서울까지 통일교 합동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올라온 것이 아니라 관광 버스를 태워주고 식사를 대접하니까 노인들은 서울까지 올라와서 문선명 교주의 이용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 미혼남녀 전도를 하는 사람에게 한 명당 10~15 만원씩 상금을 주었습니다. 지금까지 통일교 교인들은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며 이 엄청난 거짓된 통일교 합동결혼식 행사를 위하여 재산을 바치고 헌금을 해야 했습니다. 문선명은 돈을 찍어내는 기계가 아닙니다. 돈이 어디에서 나오겠습니까? 통일교 교인들에게 재산을 갈취하여 2천 쌍도 되지 않는 합동결혼식을 3억6천만 쌍 합동결혼식이라고 주장하며 하였던 것입니다. 참으로 문선명은 하나님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며 기독교 교인과 통일교 교인을 속이는 사기꾼입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와 합동결혼식 한 교인은 일생 동안 각종 행사에 매일 동원되어 활동을 해야 합니다. 매일 통일교 활동을 하기 때문에 가정생활은 무관심과 비참함으로 가정생활이 어렵고 힘들며 결국에는 파탄되는 가정도 있습니다. 통일교 교인은 각종 행사장에 참석하지 못하고 거액 재산을 문선명 교주에게 바치지 않으면 일생 동안 지옥과 같은 마음의 고통을 느끼며 불안과 공포 속에서 생활해야 합니다. 30년 동안 문선명 사이비 교주의 각종 행사를 주관했고 강의를 했으며 인원을 동원했던 저는 문선명 교주의 일회용 허세 거짓말 행사에 가증스러움과 치가 떨리는 심정입니다. 통일교 교인들은 행사에 지치고 가난한 가정살림에도 재산을 바쳐 헌금을 내야 하는 비극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1999년 2월 7일 통일교 합동결혼식을 올린 이후 지금까지 수 차례의 교구장 인사이동이 있었지만 저는 황선조 회장을 찾아 사정하지 않았습니다. 협회 김종우 총무국장도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곽정환회장 도 1월 28일 이후 단 한차례 전화를 하거나 만난 적도 없습니다. 제가 대우받는 자리에 있으면 문선명 집단의 세뇌에서 깨어나지 못 했을 것입니다. 저에게 닥치는 끊임없는 폭행 폭언충 격으로 심장병을 얻고 부당한 인사 고난 시련을 통하여 문선명 사이비 교주를 점점 정을 끊고 불신케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 이였습니다. 통일교 원리강론 교리적인 문제와 문교주의 정체, 자녀들의 방탕한 모습과 1998년 1월 IMF로 말미암아 통일그룹이 부도 남으로 문선명 사이비교주는 국민의 세금인 융자금 1조 7천억을 갚지 않고 전국 통일교 땅과 건물을 경매 처분을 피하기 위하여 통일교 유지재단에서 통일교회로 증여하였습니다. 문선명 교주는 통일교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합동 결혼식한 통일교 교인들을 속이고 지옥간 조상들을 1대부터 120대까지 천국에 보내준다며 거액재산을 착취하였습니다. 문선명 교주는 통일교 교인들에게 죄를 용서해준다는 면죄부 탕감비 1200만원을 바치라고 하여 바쳤고 천국의 황제요, 재림주로서 통일교 교인들을 천국 황족 가족으로 입적 시켜준다고 통일교 교인들을 속여 1만6천달러(2100만원)을 바치게 하였다. 이외에도 매월 통일교 교인들은 십의 삼조 헌금을 바쳐야 하고 문선명 나라 건국기금 매월 17만원을 바쳐야 하며 각종 거액 재산 착취에 통일교 교인들은 자살, 이혼, 가정파탄 등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문선명의 명령으로 매일 오전10시부터 통일교 교인들이 동원되어 저녁까지 통일교자금줄인 합동결혼식을 시키기 위하여 골목 골목을 누비며 영혼을 빼앗고 지옥으로 끌고 가고 있습니다. 자칭 참 부모 재림주 문선명을 믿고 복종하며 합동결혼식을 해야만이 천국가고 가정천국을 이룬다고 주장하지만 제가 체험한 30년 빼앗긴 세월 동안 생생한 지옥 생활 이였으며 비극적인 한순간의 악연으로 잃어버린 30년 세월 이였습니다. 제 8절 비참한 현실의 벽을 넘어선 사투 비록 30년의 처절한 삶을 마감하는 결단을 내렸지만 저는 아직도 수돗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집에서 살며 기약이 없는 날들을 보내야 했습니다. 1층에서 아침저녁으로 수돗물을 틀어 사용하면 2층에 있는 우리 집은 그릇을 씻고 쌀을 씻다가도 수돗물이 나오지 않아 식사 준비를 할 수 없습니다. 화장실도 물을 퍼부어야 되는 곳에 살고 있습니다. 물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5년 동안 물통에 물을 받아 놓고 사용을 했습니다. 안방은 여름에 비가 올 때면 언제나 비가 흘러내려 물통을 대어야 합니다. 저의 집은 마루에도 비가 흘러내려 물통 여러 개를 놓고 살았습니다. 추운 겨울에는 천장이 높아 안방이나 마루에 있어도 성애가 끼고 마루 유리창이 얼어 유리창을 비닐로 막아야 했습니다. 봄이 되어 따뜻해질 때까지 문도 한번 열지 못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추운 겨울에는 제가 세 들어 살고 있는 이 집이 문선명 통일 제국 만큼이나 추운 동토의 집이었습니다. 겨울이면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는 난방이 제대로 안되어 저와 저의 가족들은 옷을 두겹 세겹으로 끼워 입고 자야 했습니다. 심장병에는 감기가 가장 무섭기 때문에 저는 잠바를 2개, 3개를 입고 밤마다 감기에 안 걸리려고 추위와 싸워야 했습니다. 저는 집에 올라오려면 대문을 들어와 'ㄷ' 자로 된 사각형 길을 와야 집 안으로 들어 올 수 있습니다. 'ㄷ' 자 길을 들어 을 때마다 저와 가족들이 큰 건물을 지을 때 쓰는 강철로 만든 'H Bim'과 비슷한 아슬 아슬한 길을 걸어 2충으로 올라 와야 합니다. 특히 밤에는 어두워서 몸의 중심을 잡고 걸어 올라오기가 어려워 위험한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저는 3번이나 지하실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제가 처음부터 아파트로 이사를 갔더라면 아내와 자녀들을 이토록 추위와 더위에 고생시키지 않고 비참하게 만들지 말았을 것입니다. 이 집은 정화조와 하수구가 바로 연결 시켜져 있어서 세면대 하수구에서 정화조 냄새가 1년 365일을 코를 찌릅니다. 저는 문선명 통일교 사이비 교주 집단을 떠나 마음의 감옥과 가정생활의 감옥에서 탈출하는 길만이 살길입니다. 고통스러운 이 집에서 이사를 가려고 하여도 지금까지 이사를 갈 수 없는 비참한 현실이 되었던 것입니다. 경제적인 생활고로 가족들은 추위에 떨어야 했고 지옥 같은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저는 지옥 같은 집에서 이사를 했습니다. 이사한 집은 전에 살던 집에 비하면 수돗물이 잘나오고 방이 따뜻해서 조금 살 것 같습니다. 저는 통일 교회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며 매일 대학 병원에서 조제한 심장약을 아침, 저녁으로 먹고 생명을 이어 갑니다. 저는 죽을 때까지 기도와 약으로 생명을 이어가는 현실이 되어 버렸습니다. 제가 이 땅에 태어나 성공과 좌절을 겪으면서 육신의 병고와 빼앗긴 생활로 인하여 비참한 심정 입니다. 문선명 통일교에 빠져 제 고향도 부모, 형제도 버렸습니다. 특히 늙으신 어머니 마저 병마에 시달려 1년 내내 병원에 계셔도 찾아보지 못하는 불효자였습니다 문선명 사이비 교주를 이 땅에서 뿌리 뽑는 것이 제 마지막 소망입니다. 저는 참으로 육신의 고통과 싸우며 이 지옥에서 해방될 수 있는 그 날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문선명 사이비 통일교회의 충성꾼 이었던 저는 과천 통일교회 현직 목사직을 탈퇴하고 지옥 같은 통일교회를 탈출합니다. 그러나 저는 통일교회를 탈퇴하는 순간까지 과천교회 교인들을 위하여 아침저녁으로 간절한 마음을 갖고 기도 드렸습니다. 저는 통일교 목사직을 그만 두면 지옥 가고, 통일교를 떠나면 지옥 가는 것으로 믿고 살았습니다. 단 한번의 인연이 단 한장의 통일교 전단지가 30년의 청춘을 빼앗고 지옥 길 이었고 죽음과 같은 삶 이였습니다. 저에게 예수님만이 오직 구주요 성경만이 진리라고 기독교 성도들이 통일교 입교전에 저에게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26년 동안 제 아내는 문선명 통일교주의 잔인한 인사와 횡포에 불안과 공포, 긴장 속에서 추위와 배고픔과 싸우며 지옥 같은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이 세상 천지에 저의 아내같이 알뜰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것입니다. 물 한 방울도 아끼고 전기 한 등도 아끼며 근검 절약으로 살았습니다. 26년이 지난 지금도 청량리 경동시장에 가서 시래기를 줍고 배추 잎 버린 것을 주어다가 김치를 담아 먹습니다. 계란도 깨진 것을 사와 먹습니다. 쌀도 언제나 최하품만 삽니다. 저의 아내와 자녀들은 돈 600원을 아끼려고1시간이 걸리는 거리도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 다닙니다. 이렇게 피눈물 나게 알뜰하게 살아도 생지옥과 같은 통일교회 목사 아내로서는 살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저의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고 26년 동안 지옥 생활 그 자체였습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문선명 사이비 교주에게 충성한 목사 아내의 처절한 생활입니다. 저는 제 아들, 딸에게도 2000년에 들어와 너무 많은 책망과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지울 수 엾는 상처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저는 저의 아내와 자녀들이 문선명 교주와 저 때문에 이렇게 마음의 지옥과 생활의 지옥에서 살게 된 것을 잘 압니다. 그런데도 저는 지금까지 30년을 빼앗긴 세월 속에서 억울한 생지옥에서 살아온 것에 대한 분노 때문에 마음이 상하였습니다. 저의 아내와자녀들에게 억지소리를 하는 때가 많습니다. 저는 자녀들에게도 "음식을 사먹지 말라", "음료수도 사 먹지 말라", '학교도 버스비만 가지고 다녀라" , "등록금도 벌어 가지고 써라" 등 간간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자녀들에게 하곤 합니다. 자녀들은 안 쓰고 안 먹고 친구도 안 만나고 피눈물나게 사는데도 걸어 다니라고 하고 온갖 고통을 자녀들에게 주어 자녀들이 눈물 흘리는 때가 많습니다. 모든 근심걱정 염려를 제가 한다고 해결 되겠습니까? 주님께 맡기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줄 믿고 푯대를 향해 달려 가노라고 했던 사도 바울 같이, 통일교 궤멸을 위해 엘리야와 스데반 집사와 같은 심정으로 문선명 집단과 싸워 승리하겠습니다. 제 9절 저는 하나님 뿐 아니라 아내와 자녀애게 죄인 입니다. 그 동안 저의 아내는 근검 절약을 하여 모았던 돈을 3남매 교육비와 생활비로 모두 써 버렸습니다. 그래서 3남매 자녀들의 대학 학비를 빚으로 충당하고 있습니다. 졸업 무렵엔 저의 딸이 문방구에서 종이와 재료를 사다가 장미꽃을 만들었습니다. 손이 얼어서 마루에서 난로를 피워놓고 그 추운 겨울에 손을 불에 녹여가며 하루 종일 손으로 장미꽃을 만들었습니다. 저의 딸은 새벽까지 장미 꽃다발과 장미 바구니를 많이 만들었습니다. 장미 꽃다발과 장미 꽃바구니를 들고 집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에 가서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며 두딸이 꽃팔이 소녀가 되어 "꽃 사세요!" 라고 외쳤습니다. K대학교 졸업식에도 꽃을 팔러 갔습니다. 잠도 자지 않고 장미 꽃다발과 꽃 바구니를 만들어 놓은 것을 저는 학교 앞에 딸들과 같이 갖다 주고 돌아왔습니다. 딸들은 그 곳에서도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고 손을 불어가며 꽃을 사라고 외쳤습니다. 저는 저의 아내와 같이 딸들이 만든 꽃을 가지고 두 딸과 같이 D대 졸업식장에 가서 학생들과 학부형들에게 꽃을 팔았습니다. 통일교 목사가 대학교 졸업식장 앞에 가서 "꽃을 사세요"하고 몇 시간을 외쳤습니다. 저의 딸들은 사회 경험을 하기 위하여 꽃을 만들어 졸업식장에서 꽃팔이 소녀가 된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한 몸부림을 친 것이었습니다. 저의 딸은 지금도 매일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돈을 벌어서 아끼느라고 학교에서 점심을 굶으면서도 부모에게 옷을 사주고 고기를 사주며 동생들에게도 정성을 베품니다. 저의 아내는 목사 사모지만 아침에서 밤12시까지 파출부 일과 식당 일을 합니다. 저의 아내와 딸은 주택가 대문 앞에 버려진 음료수 병과 신문을 들고 집으로 들어와 모아 놓았다가 많이 모아지면 폐휴지 수집소에 가져가 팔아서 생활비로 보태고 있습니다. 제가 넉넉하고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가운데 폐품을 수집하여 팔아서 생활에 보태 썼다면 검소하게 사는 것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나 저의 가족들은 알뜰한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버린 쓰레기, 폐휴지를 모아 팔아서 먹고 사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현실 앞에 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문선명 교주에게 적당히 아부하고 또 목회를 열심히 하면 교회가 부흥되어 안정된 이단 집단생활이 되겠지만 저는 예수님 이름만이 나의 구주요 성경만이 진리라고 내 마음속에 각인 되었기에 거짓된 부자보다 가난을 선택 하였습니다.
제 21 장 목숨을 건 문선명 통일제국 탈출
제 1절 "준철아, 붉은 통일교 감옥을 탈출하라."
제 앞에서도 길이 갈라지고 산이 갈라져 길 가던 사람들이 땅 속으로 떨어져 버렸습니다. 순간 어찌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었는데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준철아, 빨리 네가 있는 그 자리에서 탈출하라." 저는 땅이 갈라지고 수많은 사람이 땅 속으로 사라져 갈 때 극적으로 몇몇 사람들과 같이 갈라진 땅 속에서 결사적으로 기어 나와 산으로 피하여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문선명 교주의 명령 때문에 수많은 통일교 교인이 고통 당하고 처절한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을 꿈에 본 것입니다. 저 자신도 통일교회에서 몇 몇 통일교 교인들과 같이 탈출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하나님은 미리 저에게 1998년 1월 IMF로 통일그룹의 부도로 통일교 기업체가 국가로 넘어가고 몰락할 것과 한국 경제의 파탄으로 IMF가 올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저는 이 꿈이 시련과 고통, 생지옥과 같은 통일교회를 탈출하라는 것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통일교회를 떠나야지' 하면서도 몸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 때라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통일교회를 탈출 했다면 제 모든 환경이 달라져 하나님 안에서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1999년 2월 10일 밤에 또 꿈을 꾸었습니다. 제가 끝없는 모래사막을 기진맥진하여 가고 있었는데 제 앞에 사각형의 높다란 담을 두른 강철 쇠로 만든 집이 나타났습니다. 저는 밥을 얻어먹고 물을 마시기 위하여 쇠 대문을 통과하여 쇠로 된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제가 집안으로 들어가자 쇠문 밖에서 키가 2미터 정도 되는 검은 사람이 쇠문을 잠가버렸습니다. 저는 쇠문을 열고 다시 밖으로 나가려고 노력을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밖으로 탈출하고자 몸부림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은 탈출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어떻게 하면 이 쇠 집을 탈출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은 "사각형 안에 갇힌 사람들을 총 지휘하는 붉은 옷을 입은 저 사람의 사슬을 벗어나야 한다" 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그 사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붉은 옷을 입고 있는 문선명 사이비 교주였습니다. 저를잡으려고 문선명 교주가 쫓아왔던 것입니다. 문선명 교주가 붉은 쇠 감옥에서 저를 잡으려고 쫓아온다는 것은 사단 마귀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 때 "문선명 통일교 교주는 사이비 교주로서 수많은 영혼을 죽이는 지옥으로 끌고 가는 영적 살인마" 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러면서 "준철아, 너는 빨리 통일교회를 탈출하라. 그 길만이 네가 살길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순간 죽을힘을 다하여 쇠로 된 높은 담 장을 기적같이 뛰어넘어 탈출하였던 것입니다. 심장판막증, 심부전증, 담석증, 불면증, 위장장애 등으로 호흡이 곤란i고 계단을 잘못 오르 내리며 사경을 헤매는 저는 어디에서 힘이 솟았는지 다윗과 같고 여호수아와 같은 힘과 용기가 넘쳐 났던 것입니다. 기진맥진 하였던 제가 아니라 이제는 힘이 넘치는 박준철이 되었습니다. 꿈에 사막을 가로질러 도시에 가서 수많은 사람에게 문선명 통일교 사이비교주에게 받았던 박해와 통일원리의 비 진리성을 놓고 강의를 하였습니다. 그 동안에 문선명이 제 꿈에 나타날 때마다 "뜻을 위해 일 할 사람은 너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저를 지금까지 그토록 많이 칭찬해 주고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며 축복한 가짜 재림주 문선명은 그 동안에 저를 통일교회에 끌어들여 이용만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문선명 교주의 세뇌교육에 영혼까지 노예가 되어 살아왔기 때문에 문선명 교주는 저를 이용 하였던 것입니다. 제가 문선명 교주를 재림주 참 부모로 믿고 절대신앙, 절대복종, 절대사랑으로 충성할 때는 문선명 교주가 꿈에 나타날 때마다 "네가 최고다" 라고 칭찬 하였습니다. 이제는 제가 문선명 교주에 대한 믿음이 없고 '통일교 목사직을 버리고 탈퇴하여 통일교 궤멸운동을 해야지' 이런 생각을 했을 때 문선명 교주는 저를 붉은 감옥에 가둬놓고 탈출하지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저를 잡으려고 그토록 역사 하였던 것입니다. 2000년 2월 13일 문선명 통일교 사이비 교주는 잠실 체육관에서 4억쌍 1차 통일교 합동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저는 과천 노인들을 관광버스 4대에 모시고 거짓된 핵사에 동참을 하였습니다. 통일교 교인이 되겠다고 노인들이 서명한 것도 아니요, 통일교 교인도 아니며, 합동 결혼식을 올리는 것도 아닌데 신랑, 신부로 위장하기 위하여 하얀 목도리 1개씩을 나누어주었습니다. 문선명은 자기 교세를 과세하기 위하여 언제나 40년 동안 허세를 부려왔습니다. 통일교회는 대외적으로 교인이 많은 것처럼 홍보하지만 안에는 교인들이 텅텅 비어있습니다. 전국 통일교회 교인 전체가 3만 3천 명 재적이고 예배인원은 1만 7천명입니다. (학생포함) 큰 기독교회 한곳의 20분의 1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문선명 통일교 집단의 협회본부 안호열 기획국장은 "통일교 재적인원이 20만명 이며, 예배인원은 재적인원의 10분의 1인 2만명이 통일교 전국 한 주일 예배인원이다" 라고 2002년 7월 12일 서울지방 검찰청 조사실에서 주장하였지만 거짓입니다. 일본에 통일교 교인은 2만명에 불과한 것을 3백만명 이라고 허위 주장 하였습니다. 문선명 교주와 그의 제자들은 언제나 합동결혼식 숫자나 예배 재적 행사숫자를 허위로 부풀려 대외적인 선전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4억 쌍 1차 합동 결혼식은 실제로 신랑과 신부는 극소수 였습니다. 전국에서 끌어 모은 노인들 10만 명은 신랑, 신부가 아닙니다 전국의 노인들을 관광버스에 태워 서울 구경과 식사 제공 및 선물을 제공하기 때문에 참석한 것입니다. 전국 시군구 기독교 연합회는 각지역 노인정 노인들을 통일교 행사장에 참석 못하게 막아야 합니다. 단 한번의 만남으로 노인뿐만 아니라 그 자녀들이 이용물이 되고 통일교(가정교회)에 입교 하여 영혼을 빼앗기고 지옥길로 끌려 가는 것입니다.
제 22장 통일교 과천교회 박준철 현직목사 탈퇴 기자회견 54가지 비리폭로
제 1절 문선명의 정체와 통일교 비리폭로
박준철이라는 한 인간의 출생과 파멸은 문선명 교주와 만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일순간의 악연으로 문선명 사이비 교주에게 세뇌되어 재림주 참부모로 믿고 빼앗긴 30년동안 목숨을 바쳐 폐인이 될 때까지 충성하며 지옥생활을 했던 것을 세상에 고발했던 것입니다. 저는 「빼앗긴 30년, 잃어 버린 30년」책을 통하여 문선명의 정체, 피가름 의식, 혈통복귀 구원의식, 합동결혼식의 비극, 문선명의 사생아 등 합동 결혼식후 통일교 한가정당 1억씩을 착취하는 문선명 교주의 잔악상, 통일교 제국의 실체를 테러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정의와 공익을 위해 제2의 박준철과 같은 희생자를 방지하기 위해 세상에 폭로해야 했습니다. 저는 더 이상 탈퇴기자회견을 연기 할 수 없었습니다 탈퇴준비를 했던 것을 마침내 결단하고 통일교 실체가 베일에 가려져 있던 것을 일간지와 기독교방송, 기독교 언론 40여 곳을 통하여 2001년 1월 9일부터 2003년 1월 9일까지 900회에 걸쳐 낱낱이 문선명의 정체와 통일교의 비리를 폭로하였습니다. 1200만 기독교 성도들이 문선명 집단에 대하여 이단이라고 제쳐둘 것이 아니라 경각심을 갖고 통일교 궤멸을 위하여 1200만 기독교 교인이 하나되고 함께 기도하며 함께 궤멸 하기를 바라고 목숨을 바쳐 통일교 실체를 보도 하였습니다. 저는 1999년 10월 1일을 문선명 통일교 사이비 교주 집단에서 탈출할 날로 정했지만 제 마음이 약하여 자꾸만 미루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과천교회에 올라오는 즉시 탈퇴할 준비를 하였지만 뜻있는 분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여 번번이 시기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혼자라도 탈퇴하여 문선명 통일교 궤멸을 위해 외쳐야 한다는 절박감에 통일교를 탈퇴하여 홀로 외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만이 저의 지팡이가 되 주셨고 저의기도를 들어주시고 저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저는 문선명이 인류 역사에 없는 사악한 영혼 사기꾼으로 고발합니다 문선명은 선량한 사람들을 끌어다가 합동결혼식을 시켜놓고 천국 가는 면죄부라며 1억원씩 받고 헌금이라는 미명하에 재산을 착취하고 있습니다. 거액재산 착취 때문에 자살, 이혼, 가정불화, 처절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비극적인 삶입니다. 문선명을 믿고 복종하며 통일교 합동 결혼식을 하면 구원받고 가정천국을 이루고 천상천국에 간다고 세뇌시키고 있지만 지옥생활이 바로 통일교 생활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하루라도 빨리 문선명 통일교 사이비 교주의 합동 결흔식은 파멸과 죽음, 생지옥과 같고 가난한 결혼생활이 되며 문선명 교주는 영혼 사기꾼이라는 것을 세상에 고발했어야 했습니다. 문선명 교주가 재산 착취범이라는 것을 준비부족으로 세상에 늦게 고발한 것을 가슴아프게 생각합니다. 갈라디아 1:8 '다른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기독교 성직자와 성도들은 통일교 문선명 이단집단을 이단사이비집단이요, 문선명은 적그리스도라고 매일 이웃집에 전해주어야 합니다. 마음속으로만 통일교가 이단 사이비집단이라고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기독교 성도가 저에게 단 한번이라도 "문선명 교주는 적그리스도요 사이비 교주" 라고 말해 주었다면 저는 통일교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독교 목사님과 성도들이 마음속으로 통일교가 이단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말씀으로 소리 내어 이웃집이나 만나는 사람마다 통일교는 이단 집단이라고 외쳐주어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 목사님과 성도들이 매일 "문선명 교주는 적그리스도요 사이비 교주" 라고 외치지 않으면 박준철 목사와 같은 어리석은 사람이 통일교회에매일 매시간 전도되어 영혼을 빼앗기고 지옥으로 끌려 갈 것입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문선명 집단을 궤멸하여 주십시오. 제가 세뇌된 다음에 통일교가 이단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디모데후서 4:'2'"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는지 못얻든지 항상 힘쓰라. 오직 구주는 예수님이요, 진리는 성경밖에 없다" 라고 기독교 성도들이 매일 외쳐서 통일교회에 빠지지 않도록 영혼을 구원해야 할것입니다.
제 2절 문선명 사이비 교주와 통일제국의 정체폭로
제 3절 기독교 성도들에 대한 박준철 목사의 호소문
기독교 언론과 1200만 성직자와 성도들이 단결하고 합심하여 기도하며이 땅의 통일교회가 뿌리 뽑힐 때까지 전쟁을 하고, 성경 진리대로 사탄마귀인 통일교회를 없애는데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것입니다. 국내의 살인집단 백백교나 용화교, 32명의 목숨을 빼앗은 1987년의 오대양교, 종말론, 휴거론을 주장하는 이장림 집단, 박태선 집단, 문선명 집단에서 집사까지 지냈던 JMS(정명석)등 수많은 사이비종교로 말미암아 이 땅의 수백만 영혼이 사이비교주에게 영혼을 빼앗겼습니다. 특히 이단교회 중 살아있는 우상인 문선명 통일 집단보다 큰 것은 역사에 없습니다. 통일교회를 궤멸시키지 않고서는 이단 교회에 대해서 반대운동을 하였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한국 기독교회가 이단교회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영혼을 말살하는 이단 교회의 참극을 알고있습니다. 1955년대에는 장로교회와 감리교회에서 전 기독교 교인들과 합세하여 통일교회 반대운동을 대대적으로 하였습니다. 기독교 학교였던 연대와 이대에서 문선명 교주를 재림주 참부모로 믿고있는 대학교수와 학생들은 "학교를 선택하느냐, 문선명 교주를 선택하느냐" 에 2가지 중 1가지를 선택하라고 학교에서 지시하였습니다. 문선명 교주에게 세뇌된 대학교수와 학생들은 문선명 교주를 믿고 교수직과 학생직을 박탈당하면서 문선명을 따라나온 것입니다. 참으로 사이비교주에게 세뇌되면 부모형제를 버리고 교수직까지도 포기하면서 사이비교주에게 세뇌된 것을 볼 때 참으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55년 3월 24일, 감리교 학교였던 이대는 교수 5명(양윤영, 한충화, 최원복, 김영운, 이정호)과 1955년 5월 11일은 통일교 이단교회 신앙을 함으로 학생 14명이 퇴학 처분되었습니다. 1955년 3월 5일, 박상래 연대교수는 통일교회의 신앙문제로 퇴직 되었습니다. 한국 1200만 기독교 목사와 성도들은 문선명 통일집단이 이단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잘 모릅니다. 기독교가 수 십년 동안을 침묵함으로써 통일교회는 47년 동안 세계 185개국에 통일교회의 원리강론 교리를 전파하여 뿌리를 내렸습니다. 문선명 사이비교주는 인류역사에 전무 후무한 사악한 사이비 교주요, 우상입니다. 기독교는 통일교회와 전쟁을 해야 합니다. 기독교가 통일교회와 이단교회를 이단이라고만 생각하고 외면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문선명 집단과 같은 이단들이 번성하는 기회로 삼고 문선명이 의도 하는데로 움직여주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 진리대로 사탄과 싸워야 합니다. 엘리야 선지자같이 갈멜산에서 바알신 450명을 궤멸시켰던 역사와 주기철목사의 순교적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 되어문선명 사이비 종파를 없애야 합니다. 기독교는 통일교에 대한 철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합니다. 1200만 기독교목사와 성도들이 통일교 궤멸을 위해 외치지 않는다면 누가 문선명 사이비종파를 파멸시키겠습니까? 한국 기독교는 초대교회의 순교정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제2의 말틴 루터와 같은 심정으로 저는 외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목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외치겠습니다. 문선명 통일교 사이비교주를 이 땅에서 기독교 교인들이 단결하여 없애지 않는다면 한국 기독교는 이단교회에 방치한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이제 문선명 통일교 사이비 교주집단의 멸망할 때가 왔습니다. 전 기독교는 사탄 마귀와 가라지요, 영혼을 파멸시키며 가정을 파탄시키는 문선명 사이비교주를 궤멸시키는데 동참해 주십시오. 이 저서는 일생 동안 문선명 사이비집단을 이길 수 있는 방패요, 무기가 될 것입니다. 이단교회의 정체와 비리를 알 수 있고, 1명의 전도사와 같은 역할을 하는 교재가 될 것입니다. 저의 저서는 한국 기독교 목사와 신학생, 교회 입직자, 평신도와 양심적인 사람들이 구독해야 될 교재입니다. 또한 일생동안 문선명 통일교 집단의 정체를 알고, 대처할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이며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저의 글을 읽는 분들 가정에 하나님께 영광이요, 은혜와 축복이 넘칠 것입니다.
제 4 절 한국 기독교 통일교 대책협의회 설립, 문선명 통일교 대책연구소, 한국 기독교 이단 종파 문제 연구소 설립 저는 문선명 사이비 통일교 교주에게 원리강의로 세뇌되고 교육되어 30년 동안 영혼을 빼앗기고 청춘을 빼앗겼습니다. 이제 심장판막증, 심부전증 등으로 인하여 죽음까지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어떠한 핍박과 고난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대적이요, 기독교의 원수인 사이비 종교와 교주를 뿌리뽑고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게 만들고자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종교의 자유를 틈타 사이비 교주들이 이 땅에 붉은 용이 되고 늑대가 되어 선량한 영혼을 미혹하여 빼앗고 세뇌시컥 삼키고 있습니다. 이 땅에 사이비 교주가 만들어짐으로 강간, 우상 숭배, 재산 착취, 가정파탄 등 그 피해가 실제로 혜아릴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납니다. 사이비 교주들은 불쌍하고 선량한 이 땅의 국민들의 영혼을 빼앗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말세를 외치며 자칭 재림주 구세주 메시아 참 아버지로 자칭하며 문선명과 같은 이단 사이비교주가 자신의 제국을 세우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사이비 교주들은 공갈협박으로 힘없는 교인들을 세뇌시키고 교육시켜 피눈물을 흘리게 합니다. 이용할 대로 이용하고 끝내는 배반하며 버리는 것입니다. 문선명 통일교 사이비 교주는 일회용 소모품으로 자기 교인들을 이용하고 쓰레기 버리듯 버리는 것입니다. 저는 목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이 땅에 사이비 종교를 박멸하고 사이비교주를 뿌리뽑는데 앞장서겠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기독교 성직자와 성도들과 함께 하십니다. 이 땅의 사이비 종교를 박멸하여 뿌리뽑는데 기독교성직자와 성도들이 앞장서신다면 이 땅의 사이비 교주들은 한 사람도 발붙이지 못할 것입니다. 기독교는 그 동안에도 사이비 종교에 대한 많은 비판과 기도회를 실시해왔습니다. 그러나 80~90년대 기독교는 사이비 종교를 뿌리뽑는 데 무관심, 무방비, 무책임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사이비 교주에게 수많은 영혼을 빼앗겼던 것입니다. 통일교 집단도 이단이라고 제처 둘 것이 아닙니다. 진작 궤멸 운동하여 뿌리를 뽑았더라면 저 같은 어리석은 사람이 매일 전도되어 지옥 길로 끌려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독교 목사님과 성도들이 마음 속으로만 통일교가 이단이라고 제쳐둘 것이 아니라 입으로 소리내어 직장이나 내 이웃, 가게 분들에게 "문선명은 사이비교주요 적그리스도요 합동결혼식을 하면 1억씩을 착취하는 사이비집단" 이라고 매일 외쳐야 할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사이비 종교에 빼앗긴 사랑하는 아들 · 딸을 찾기 위하여 지금도 기도하고 계십니다. 기독교회가 일치 단결하여 사이비 종교근절을 위한 대책을 세우기를 바랍니다. 언론과 기독교회는 연합이 되어 대대적인 사이비 종교 퇴치를 위한 기도회와 캠페인을 매달 전국 시군구 기독교연합회 벌려야 할 것입니다.
제 5 절 국제 자살 · 살인 방지 연구소 설립 계획
그 때 살인 방지 연구소를 설립하라는 마음속의 생각이 계속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간증 예배 때 경각심을 갖는 말씀을 증거합니다. 통일교회는 문선명 교주를 믿고 합동결혼식을 하여 가정 천국을 이루고 죽으면 천국에 간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통일교 합동결혼식을 한 통일교 교인들은 천국이 아닌 생지옥과 같은 통일교 교회 때문에 자살해 죽는 사람이 제 주위에도 있었습니다. 통일교 부산 교구본부에 소속된 36만 쌍 통일교 합동 결혼식을 한 김동수씨도 결혼을 하여 살다가 1998년 5월에 목을 매고 자살해 죽었습니다. 오진수씨와 이인자씨 부부는 1982년도 6,000쌍 합동결혼식을 받았습나다. 1997년 9월 13일날 추석을 목전에 두고 이인자씨는 문선명 통일교 사이비 교주와 통일교에 대한 배신, 합동결혼식의 처절한 생지옥 생활을 뒤로하고 아파트 안방 문고리에 목을 매고 자살하였습니다. 문선명 사이비 교주 합동결혼식은 처참한 가정파탄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오진수씨와 이인자씨는 통일교 회사인 일화제약과 통일산업에 근무하며 요령을 부릴 줄 모르고 아부할 줄도 모르는 우직한 사람입니다. 언제나 성실하게 일을 했지만 아부할 줄 모르는 성격으로 살다 보니 통일산업에서 53세에 퇴사할 때까지 반장이나 주임 한 번도 해보지 못하였습니다. 그저 진실하고 성실한 교인 이였습니다. 문선명 통일교 통일산업에서 근무하면서 IMF 때 부도가나 월급을 11개월이나 받지 못하여 가정생활이 처절한 상태에서도 문선명 통일교 사이비 교주는 십의 삼조 헌금, 구국헌금, 160쌍 행사비, 1600쌍 행사비등 각종 통일교 헌금을 내라고 하였고 가정은 파탄 되었습니다. 이인자씨는 착한 성품을 갖고 가정천국을 이루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삶을 포기하고 안방 문고리에 목을 매어 죽음으로서 문선명 교주에게 항변하였던 것입니다. 경남 교구장과 사모는 1년 동안 교회 앞에 있는 오진수씨와 이인자씨 가정에 단 한번도 심방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인자씨가 자살을 할 때까지 경남 통일교 교구장은 엎어지면 코 닿을 데에 있어도 무관심, 무책임하였습니다. 문선명 통일교회에 들어와 오진수씨와 이인자씨가 합동결혼식을 하지 않았다면 가정은 파탄되지는 않았을 것이고 자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이인자씨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랬지만 자살로 인생을 마치자 너무나 허탈하여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그 계기로 자살과 살인 방지 연구소를 설립해야 되겠다고 더욱더 다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경제적인 어려움과 여러 가지 사정이 여의치 못하여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저는 자살하려는 한 생명이라도 구할 수만 있다면 그 길을 갈 것입니다. 회사가 부도가 나고 실업자가 되고 가정이 파탄되어 이혼되고 전 가족이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의 원혼을 누가 풀어 줄 것입니까? 저는 많은 양심적인 사람들이 외롭고 고독하고 의지할 곳도 없이 모진 인생의 비 바람을 맞으며 마지막 자살을 선택할 때 속수무책 이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빠른 시일 내에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사정이 허락하면 자살 살인 방지 연구소를 설립하여 한 생명이라도 구하고 싶습니다.
제 23 장 문선명 통일교 비판
제 1 절 문선명의 출생과 통일교 창단 배경
1938년 4월에 경성 상공실무학교 입학, 1941년 2월 25일에 경성상공실무학교 전기과를 졸업을 하였다. 1944년도에 서울에 있는 가시마구미 토목 건설회사 전기기사로 취직하여 근무하였다. 문선명은 1945년 10월부터 경기도 파주군 임진면 섭절리 이스라엘 수도원에서 김백문 교주에게 6개월 동안 기독교 근본원리 교육을 받고 세뇌되어 있다가 서울 상도동에서 교회 인도자로 있다가 문선명 교주는 1946년 6월 6일에 김백문을 배반하고 김백문 사교 교리인 성서신학과 기독교 근본원리를 도용하여 통일교 원리강론교리로 만들어 평양에 가서 문선명은 재림주 참부모를 자칭하며 기독교를 비판하고 포교 활동을 하였다. 한국의 예루살렘이라 할 정도로 평양은 기독교회가 왕성하였습니다. 평양에서 부터 문선명은 사교교리를 통하여 통일교 포교 활동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평양에서 김종화 유부녀 집에서 어린양 혼인잔치를 문선명이 하게 되어 사회혼란 음행죄로 감옥에 가게 되어 1948년 2월 20일에 평양 형무소에 들어가게 되었고 1948년 4월 7일에 문선명의 재판결과 5년 감옥생활을 언도 받고 감옥생활을 하였습니다. 이후 1948년 5월 20일에 흥남 감옥소로 이송되어 형무소 생활을 하던 중 터지지 말아야 될 1950년 6월 25일 전쟁으로 말미암아 문선명이 감옥에서 해방되어 남한으로 피신하여 부산 수정동에서 교회를 하다가 최선길 본부인이 문선명의 피가름 행위, 혈대 교환의식을 참다 못하여 문선명 교주를 폭행함으로 문선명은 부산 범냇골 이라는 산에서 기독교인을 포교하였다. 그 이후에도 최선길 본부인이 찾아와 문선명 교주의 부도덕한 행위 때문에 싸움을 하여 문선명 교주는 서울로 도망쳐 올라왔고 서울 성동구 북학동 세대문집에서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라는 간판을 1954년 5월 3일에 걸고 본격적인 포교활동을 하였던 것이다. 자칭 재림주 참부모 문선명 교주는 온갖 피가름의식과 혈통복귀의식으로 최선길 부인과 불화중 자기 아내도 전도하지 못하고 1957년에 이혼하였다. 문교주는 김백문 교리를 훔쳐 1954년 5월 3일에 2대 협회장 '유효원'과 '김원필', '박정화' 등 6인이 정리하여 1957년 8월 15일 통일교 원리해설로 만들었다. 1966년 5월 1일에 통일교 원리 강론으로 책을 출판한 것이다. 부산 영도 신상진씨 집에서 통일교 2대 협회장인 유원효 씨와 사촌 유민효, 유영효 3형제가 입교하게 되었다. 유원효는 서울대학교 의대를 다니다가 결핵성 관절염으로 학업을 중단하였다. 문선명 교주는 김백문에게 교육받은 그 기독교 근본원리 강의를 유원효 씨에게 다시 통일교 원리로 만들라고 지시하였다. 유원효 씨는 다리가 굳어서 쓸 수 없어 눕거나 의자에 앉아서 문선명 교주의 강의를 밤낮으로 들었다. 1954년 2월부터 이스라엘 수도원 김백문 교주의 기독교 근본원리 강의를 갖고 문선명 교주와 유원효, 유민효, 유영효 3형제와 이창환(초대 통일교협회장), 김원필, 박정화 이렇게 6명이 종로에 있는 여관에서 하숙을 하며 통일교 교리를 썼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김백문의 강의를 통일교 원리강의로 만드는 작업을 하였던 것이다. 문선명 교주는 그때 6명에게 5만원을 주면서 전세 집을 마련하여 통일교 원리강론 교리 작업을 하라고 명령하였다. 유원효씨는 매일 원리해설을 정리하였고 유민효씨와 박정화씨는 원리원본을 기록하면서 김백문 이스라엘 수도원 교주의 교리가 문제가 많다고 하였다. 유원효 통일교 2대 협회장도 원리해설을 집필하면서 통일교 교리로 사용한다는 것이 모순이 많이 하며, 기독교 근본원리 강론을 이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강론을 고치기 위해 문선명 교주에게 여러 의견을 물었더니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문선명 교주가 대답을 하지 못하는 부분은 유원효씨 생각대로 원리해설을 썼다. 문선명은 김백문 기독교 근본원리를 도용하여 통일교 원리강론을 만들어 놓고도 통일교 목사 교인들에게 재림주가 하나님으로 부터 직접 계시 받은 새진리라고 주장하지만 조작된 것이며 거짓이다. 통일교 목사들과 교인을 속인 것이다. 문선명은 여러 사람이 통일교 원리강론을 만들던 중에 성동구 북학동 391번지 통칭 세대문집이라는 가정집에서 1954년 5월 1일 세계 기독교 통일 신령 협회라는 간판과 통일교 창립을 하게 되었다. 통일교 협회 창립일을 1954년 5월 1일로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통일교 창립일은 1954년 5월 3일이다. 김백문이라는 사이비 교주에게 6개월 동안 교육 받은 문선명 교주가 그것을 도용하여 자기 것으로 만든 다음 또 한 사람의 가짜 재림주인 문선명 교주로 탄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문선명 교주는 훔쳐온 교리로 1954년 5월 3일, 원리 해설이라는 통일교 원리강의를 선포하고 통일교 간판을 달게 된 것이다. 유원효 씨와 사촌인 유민효, 유영효 3형제는 통일교에 충성꾼 이었고, 통일교의 산 증인이다. 30가정 최초 합동결혼식을 하였지만 유원효는 1970년사망을 하였고 유민효, 유영효 형제는 문선명 교주가 일생동안 이용하고 이용가치가 없어지자 버렸다. 그들은 일생 동안 이용만 당하고 통일교를 떠났고 버림받은 것이다.
제 2 절 원리 강론은 김백문 교리를 도용한 것
또한 기독교는 구원이 없는 종교라고 강조하여 오직 구원은 예수가 아닌 문선명 자신만이 재림주로서 구원 해 줄수 있고 성경진리가 아닌 통일교 원리강론 새진리 성약말씀만이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문선명은 혈대교환, 혈통복귀의식, 피가름, 혈통복귀 피가름 교리로 타락한 인류를 구원한다고 주장한다. 문선명의 통일교 원리강론인 창조원리, 타락론, 복귀 원리, 재림론은 김백문의 기독교 근본원리와 동일한 내용이다. 통일교 원리강론 교리는 김백문 이스라엘 수도원 기독교 근본원리를 문선명이 도용한 것이다. 문선명은 통일원리 강론이 성약 말씀이며, 재림주가 계시를 받아쓴 새로운 진리라고 주장하지만 거짓이다.
제 3 절 문선명 통일교 원리강론 교리비판
1. 통일교회의 원리 주장은 새 진리의 필요성과 사명을 역설하고 있다. (요한복음 3:12, 요한복음 16:25) '통일교 원리강론 교리만이 새진리요, 성약이라고 주장하며 성경은 사명이 끝났고 진리(통일교원리)를 가르쳐주는 교과서에 불과한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반증- (계시록 22:18) '성경진리를 가감하면 생명록에서 이름을 제 할 것이다·(마태복음 5:18) '율법 일점 일획도 가감말라'(요한복음 3:16) ' 오직 구주는 예수님이시며 진리는 성경말씀 뿐이다. '(갈라디아1:8) 성경말씀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자, 저주를 받을 것이다' 2. 문선명 사이비 교주는 새 말씀의 사명을 역설하고 있다. (요한복음 16:25, 계시록 5:1, 계시록10:11) 통일교 참조원리는 성경의 진리성을 부인하고, 구약과 신약 66권 사명이 끝났다고 주장한다. 예수를 믿어도 진리를 찾아가는 교과서라고 주장한다. 문선명 재림주 시대는 원리강론이 성약이며, 새진리라고 주장한다. 문선명은 성경진리 말씀을 자칭 황제 참부모 재림주라는 세뇌교육용으로 인용 할뿐이다. (요한복음 16:12) *반증-(요 3:16), '오직 구주는 예수님이요, 진리는 성경뿐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3. 문선명 사이비 재림주에게만 구원이 있고, 기독교 성경말씀은 구원이 없다고 주장한다. *반증-(사도행전 4:12, 16:31), 주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4. 원리강론은 창조목적이 문선명 교주를 자칭 재림주 참부모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창세기 1:26~31)" 반증-(사 43:1, 고전 10:31), 통일교 교리에 하나텀의 이성성상을 주장하는데 문선명 교주가 하나님을 닮아 인간은 아담과 하와가 만들어졌고 몸과 마음 즉 이성성상으로 되어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이미 성서에 하나님의 창조성을 닮아 되어진 것을 문선명 교주는 자신이 발명특허나 낸것같이 주잔하지만 거짓이다. 만유원력 수수작용도 되어진 결과를 논하는것이지 새진리가 아니다. 5. 통일교 인류역사 종말론은 기독교 종말론과 정면 배치된다. 기독교는 성경진리대로 불심판을 믿지만, 통일교 문선명 교주는 불심판을 부정하며 말씀 심판이라고 주장한다. 문선명 교주 자신이 재림주로서 통일교 성약말씀인 원리강론을 새진리라고 주장하며 문선명과 통일교 원리강론을 믿으면 구원받고, 믿지 않으면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거짓이다. (벧후 3:10~12)통일교 원리강론에는 진리심판 곧 말씀심판이라고 주장한다. (약 3:6) "반증- 벧후 3:10~12, 살전 4:16~17, 마태복음 27:52, 마태복음24:29 6.구주론은 예수를 실패자요, 예수 십자가를 믿어도 구원이 없으며, 영적 구원만 있고 문선명 재림주 참부모를 믿어야만 영육간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지만 거짓이며 적그리스도이다. 기독교 교인들도 문선명 재림주를 믿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하지만 문선명 자신은 자신의 아내와 자녀들도 구원하지 못하는 사이비 교주이다. (마태복음 16:23) "반증- (요3:16, 창1:28), '사단아! 물러가라.'(요한복음 19:30) '다 이루었다' (요한복음 3:14), (눅 9:31) 오직 구주는 예수님이시며 십자가 보혈로만이 인류가 죄사함을 받을 수있다. 7. 통일교 원리강론 부활론은 예수 십자가 부활을 부정하며 기독교 성도 부활을 부정한다. (살전 4:16) "반증-(마 27:25, 눅 9:60, 롬 G:23) 8. 통일교 원리강론 재림론은 문선명 자신을 재림주로 만들기 위한 교리 이다. ① '재림주님은 언제 오시나?' 문선명 교주가 이 땅에 태어난 때이다. (마 24:14, 땅끝까지 천국, 마24:32) 문선명 자신이 참부모 재림주로 태어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증-(마 24:36, '그날 그때 모름' , 계 3:3 '도적같이 주님 이 온다' ) ② '재림주님은 어떻게 오시나?' 재림주는 구름 타고 오시는 것이 아니고 여인의 (마24:30)몸을 통해 태어난 문선명 교주가 재림주라고 주장한다. "반증-(계 12:5 '철장' , 눅 17:20, 마 7:21 '주의 뜻' ) ③ '재림주는 어디로 오시나?' 동방 대한민국으로 오신다 (계7:2~3)문선명의 주장과 통일교 원리강론 주장은 언제 오시나? 한국에 재림주가 오고 1920연대에 태어난 문선명 교주(본이름 문용명)만이 재림주라고 통일교 교인들이 받들고 있다. 어떻게 오시나? 재림주는 구름 타고 오는 것이 아니고 여인의 몸을 통하여 낳은 문선명이 재림주 황제 참부모 구세주라고 주장한다. 재림주는 어디로 오시나? 극동의 중심 동방삼국인 한국으로 재림주가 온다고 교리적으로 가르치며 통일교 자칭 목사들과 교인들에게 문선명만이 인류의 구세주 메시아라고 세뇌 교육을 시키는 것이다. 참으로 인류역사에 이렇게 날조를 밥 먹듯이 하는 이단 사이비교주는 문선명 밖에 없다. (마태복음 23:33, 포도원비유) '동방삼국은 중국, 일본, 한국인데 중국은 신을 부정하는 공산국가 이기 때문에 재림주가 못 오시고, 일본은 천주대신 우상 숭배 국가이기 때문에 재림주가 못 오신다고 주장한다. 재림주는 한국에 오기 싫어도 한국으로 와야 된다고 주장한다. 문선명만이 오직 참부모 재림주라고 통일교 원리강론 교리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반증-문선명 교주는 적그리스도이며 수많은 영혼을 빼앗는 사악한 사이비 교주일 뿐이다. (계시록 12:9 '하늘에서 큰 용이 되어 쫓기니 이는 곧 옛 뱀이요 사단이다. ') 문선명은 본래 이름이 문용명 인데 가운데 '용' 자 '적그리스도용자' 를 빼어버리고 '선' 자를 집어넣어 자신은 태양이다. 문은 달이며 선은 태양,명은 스타(별)이다. (창세기 37:1 요셉의 꿈.) 모세 오경과 구약은 촛불에 해당되고 이미 전깃불인 예수님 신약 말씀이 선포됨으로 구약의 사명이 끝났고 문선명의 이름인 태양인 재림주 참부모 문선명 교주가 재림하심으로 예수님의 사명은 끝났다고 문선명 사이비교주와 통일교 원리강론은 재림론에서 결론을 맺고 있다. 문선명 교주야 말로 하나님의 대적원수이며 전세계 19억 기독교 교인들의 원수요, 한국1200만 기독교 교인들의 원수이며 일순간의 악연으로 통일교회에 빠져 세뇌되어 지옥 길로 가는 사람들의 원수이다. 억울하게 자살하고 이혼, 가정 파탄된 불쌍한 영혼들의 원수요, 박준철 목사의 빼앗긴 30년을 짓밟은 원수가 바로 문선명 교주이다. 1200만 기독교 교인들은 예수님을 정말 믿고 성경 진리안에 산다면 하나되고 단결하고 예수님 이름으로 제2의 박준철과 같은 희생자를 막기 위해 문선명 통일교 집단을 뿌리 뽑아야 할 것이다. 9. 통일교 원리강론, 타락론은 아담과 하와가 지의 뿌리가 된 것은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는 하와의 종이었던 천사장 루시엘과 하와가 불륜한 사랑관계로 영적 타락을 하였고 아담과 하와가 불륜한 사랑관계로 육적 타락을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 되는 재림주 문선명 교주가 인류를 혈통복귀 피가름으로 복귀해야 된다는 복귀 원리 교리 이다. (창세기 3:I~7)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 합동결혼식을 하면 완전구원의식을 치르기 위하여3일 혈통복귀 피가름의식을 치르는 것이다. "반증-(요 1:3, 창2:17),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것이 지요, 성경 어느 구절에도 혈통복귀 피가름으로 타락했다는 성경구절이 없는데 통일교 원리강론은 혈통복귀 피가름으로 타락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예수를 부정하고 성경을 부정한 것이다. 통일교 원리강론은 예수님 성령잉태를 부정하며 사생아요,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간 예수라고 주장한다. 오직 구주는 문선명이라고 주장하지만 적 그리스도요, 사이비 교주일 뿐이다.
제 4 절 예수, 공자, 석가를 자신의 제자라고 말하는 문선명
집회 때마다 "여기에 정보부나 안기부에서 온 사람이 있으면 청와대에 보고하라" 고 온갖 만용을 떨었습니다. 또한 기독교에 대해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하며 "문선명을 이단으로 규정짓고 반대하지만 통일교는 성공하고 기독교는 문선명 재림주 참부모를 반대하기 때문에 심판 받을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1950년에 박태선 장로와 나운몽 장로가 문선명과 하나 되었더라면 기독교와의 통일은 1950년에 이루어져 문선명 통일제국을 세웠을 것이 라고 누차 강조했습니다. 문선명은 "구약적 복귀패는 박태선이 책임자이고 신약적 복귀패는 나운몽 장로패이다. 복귀패 재림주님은 통일교 신령집단 재림주인 내가 책임자이다. 주님을 위한 기독교가 되어야 하는데 자기 교파 교단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망하고 통일교와 나는 하나님을 위해서 살았기 때문에 승리할 것이다. 기독교가 아무리 반대해도 통일교는 핍박을 받으면서도 승리할 것이다. " 라고 했습니다. 문선명은 ''나는 재림주 참부모로서 영계에 가면 참부모 이름이 최고이다. 이 지상에서 문선명을 재림주로 믿고 충성한 사람은 최고의 축복이고 문선명 재림주를 믿고 복종하지 않은 기독교인은 원수가 되어 지옥을 가게 될 것이다 지상에 있는 기독교 교인들에게 문선명 통일교 재림주를 믿으라고 아무리 외쳐도 말을 듣지 않은 사람은 지옥에 간다. " 그러면서 문선명은 "석가, 공자, 예수는 내 제자다" 라고 외쳤습니다. 통일사상 연구원 원장을 하다가 죽은 이상길의 '영계에서 보내온 편지'라는 책이 있는데 문선명이 인정한 책이었습니다. 통일교 교인들에게는 필독서인 '영계의 실상과 지상 생활 1, 2, 3, 4, 5권' 에 예수님을 저승에서는 한없이 외롭고 사명을 완수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낙인을 찍어 명예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문집단의 통일교 천국 가는 구원 의식인 합동결혼식은 문선명으로부터 용서 기도를 받고 문선명을 재림주로 믿어야 구원받고 천국 간다고 주장하여 영혼결을 시킨 것이다. 예수님의 명예를 훼손하는 문선명 사이비 교주를 1200만 기독교 교인이 매일 궤멸을 위하여 외쳐야 한다. 예수님이 역대 성인들이 문선명 교주를 믿고 구원받고 싶다고 했으며 통일교 구원의식인 영혼결혼을 시켜달라고 했습니까? 참으로 사악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왜 문선명을 구세주 참부모라고 하겠습니까? 예수님은 연세가2000세고 문선명은 나이가 83세 입니다. 누가 아버지 입니까?왜 통일교 세뇌용 책에는 문선명 참 부모님이 불효 자식을 용서해 달라고 예수님이 문교주에게 빌고 있다는데 이런 조작으로 통일교 교인을 세뇌시키는 문집단은 1200만 기독교 목사 성도들이 의분심을 갖고 통일교 집단을 뿌리 뽑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교통사고로 죽은 문흥진의 지시를 받고 마호메트, 공자, 석가등 인류 역사에 왔다 갔던 영웅, 열사, 기독교 순교자들이 영계의 총 사령관인 문흥진의 명령과 지시에 복종하고 있다고 통일교 교인들에게 세뇌 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문선명 재림주가 죽어서 천국 문을 열고 천국에 갈 때 예수님은 구원받는다고, "영계에서 보내온 편지" 에 써 놓았습니다. 참 부모님이 영계에 오셔서 영계를 정리할 때까지 예수님은 기다려야 한다고 책에 써놓고 예수님의 명예를 훼손했습니다. 적 그리스도인 문선명의 사주로 통일교 교인을 착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영계의 가짜 책을 만들어 우상 숭배를 하게 하고 있습니다. 불쌍하고 가련한 통일교 교인들을 각종 공갈 · 협박으로 재산을 착취하는 도구로 이용하곤 있습니다. 지금도 사이비 교주에게 미혼 남녀가 매일 통일교 집단에 유혹되어 영혼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통일교회 문선명 교주를 재림주로 믿다가 통일교 교인이 통일교를 떠나 문선명한테 배운대로 자신을 재림주라고 칭하며 사이비 교를 창단한 사람도 수십 명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80년까지 통일교 집사일을 했던 JMS(정명석)사이비교주입니다. 정명석 집단에서 20만명이라고 주장하나 실제로는 1만 5천명의 영혼이 지옥으로 끌려가고 있습니다. 그중 문선명을 재림주로 믿다가 탈퇴한 주영희 패거리들이 교단을 만들었는데 그는 자기가 재림주고, 2000년 전 세례요한이 예수를 증거 해 주듯이 문선명의 사명은 끝났다고 하고 새로운 교회를 만들었습니다.
제 24 장 혈통복귀 피가름집단인 문선명 통일교
제 1 절 처음부터 혈통복귀집단이 된 통일교
문선명은 사악한 통일교 복귀원리라는 섹스교리로 통일교에 예쁜 여자 교인들과 피가름 구원의식을 치뤘다. 문선명이 복귀 원리라는 미명하에 통일교 여자교인들과 혈대교환 혈통복귀 의식인 섹스를 하는 걸 첫번째 부인 최선길씨가 알았다. 최선길씨는 혈통복귀 의식을 치른 여자교인들을 폭행하고 남편인 문선명의 멱살을 잡고 폭행을 하였다. 문선명은 도망을 쳤고 최선길씨는 수정동 가정 주택 교회에서 생활했던 여자 통일교 교인들을 전부 쫓아내고 수정동 통일교의 집과 가재도구를 1953년 9월에 몽땅 팔아버렷다. 문선명은 최선길씨를 피해 이곳저곳을 도망 다니다가 1953년 9월 17일 통일교 본거지를 옮기려고 서울까지 왔다. 그러나 문선명에게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1953년 12월 24일 서울에 있는 문선명에게 부산 영도에 신상진이라는 통일교 교인이 자기 집에서 부흥회를 해달라고 하였다. 부산 시내 전체 통일교 교인 28명이 신상진씨 집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문선명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12시간 걸리는 완행열차의 기차비가 없어서 올 수가 없자 6마리아의 한 사람인 오명춘 집사가 여비를 급하게 마련해 주어서 서울에서 부산 영도교회까지 올 수 있었다. 후일 오명춘 집사는 문선명 교주와 혈통복귀 의식을 치른 후 문선명의 노예가 되어 집을 판대금 거액인 500만원을 문선명 교주에게 바쳤다. 이 사건으로 오명춘 집사는 가정이 파탄되어 이혼하고 버림받고 결국 문선명 교주에게 까지 버림을 받았다. 문선명 교주는 혈통복귀 원리 섹스교리로 말미암아 영도에서도 처녀와 복귀의식을 치러 한 처녀 대학생의 파멸을 가져왔고 그 처녀는 사생아까지 낳았다. 문선명은 서울에 올라와서도 수많은 처녀들과 6마리아, 60마리아를 만들어 혈통복귀 섹스를 통한 의식으로 완전 구원, 사기교리를 실천하였다. 서울에서 이성화라는 처녀를 혈대교환, 피가름, 혈통복귀 의식인 섹스로 복귀의식을 치렀다. 이성화 처녀는 후일 아들을 낳는 비극을 가져왔다. 문선명은 40세에 1960년 4월 11일, 몇 번째 부인인지 알 수 없는 어린17세(고등학교 2학년)의 나이 어린 한학자를 아내로 맞아 어린양 혼인잔치를 하여 지금까지 14남매를 낳았다. 한학자와 살면서도 1965년도 최순화라는 처녀와 혈통복귀, 혈통복귀 피가름으로 간통하여 박 사무엘(박준경)이라는 아들을 낳았다. 미국 이스튼 가든 호화 궁전 저택에서 유럽, 미국의 젊고 예쁜 통일교 여자교인들이 문선명 교주에게 인사를 할 때 끌어안고 키스를 하였다. 문선명 교주와 끌어안고 키스 하는 광경을 본 한학자는 모든 유럽 미국 여자들은 문선명 교주에게 경배 드리고 인사할 때 문선명 교주와 1m 거리로 접근금지를 시키라고 명령하였다. 제 2 절 문선명은 혈통복귀교리를 통해 가정을 파괴한다
문선명은 자기의 혈통복귀 피가름교리를 위장하기 위하여 타락론을 강조하고 가정의 윤리와 도덕을 중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통일교 합동결혼식을 한 교인들에게는 간통죄가 가장 큰 죄라고 말합니다. 또한 자신의 섹스교리를 위장하기 위해 선문 대학교에 순결학과를 만들어 놓고 미혼 남녀들이 순결을 지키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가정정 파괴범이 어떻게 자기를 위장하고 가증스럽게 통일교 교인들을 속이고 국민까지 속인단 말입니까? 문선명은 신정순, 이순철, 오명춘, 김안실, 유신선, 임영신 이렇게 6마리아를 혈통복귀 피가름으로 혈통 복귀하였습니다. 6마리아는 60마리아로 늘어났고 수많은 처녀들과 유부녀들이 문선명 교주의 피가름 혈통복귀의식으로 희생이 되었습니다. 문선명은 수많은 처녁들과 유부녀들의 영혼을 빼앗아 자신의 남편보다도 문선명 교주를 더 극진히 모시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일례로 수많은 60마리아 중에 옥상현씨는 원래 장대현 교회의 권사였습니다. 옥상현 권사는 통일원리를 들은 후 장대현 교회에 나가지 않고 문선명 교주를 재림주라고 믿고 따랐던 여자 교인입니다. 그녀는 문선명 교주와 복귀의식을 치르고 미혹에 빠져 가정이 파탄되어 버렸습니다. 결국 옥상현 권사는 문선명 교주와 김종화와 같이 구속되기까지 하였습니다. 장대현 교회에는 우화섭이라는 장로님이 계셨는데 평양 고무 연맹의 이사장으로 돈이 많은 부자였습니다. 옥상현 권사는 우화섭 장로의 힘으로 감옥에서 풀려날 수 있었으나 문선명 교주는 평양 감옥에서 흥남 감옥소로 이송 되었습니 다. 그러자 옥상현 권사는 그 먼 거리를 쫓아가서 돈을 마련하고 사식을 마련하여 문선명 교주의 옥바라지를 했습니다. 문선명이 흥남 감옥소에 있을때 옥상현 씨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털실로 짠 것처럼 양말을 만들어 문선명에게 바치기도 했습니다. 옥상현씨는 두 딸과 같이 살았는데 그 곳에서 문선명, 문정빈, 김원필씨도 같이 생활하였습니다. 옥상현씨는 문선명 교주의 부산 피난 시절에는 1945년 4월 28일에 결혼한 첫 번째 부인 최선길을 대신해 문선명의 뒷바라지를 다 했습니다. 40년을 문선명을 모시고 그림자 처럼 따라 다녔지만 그녀는 통일교회에서 버림받고 보살핌도 받지 못했습니다. 후회와 처절한 가난으로 말년을 비참하게 보내야 했던 것입니다. 제 3 절 통일교는 혈통복귀의식이라는 3일식 피가름행사
또한 통일교 원리인 타락론에는 죄의 뿌리가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되어 죄의 뿌리가 된것이 아니고 아담 하와의 불륜한 사랑관계로 타락된 것이 선악과요 죄의 뿌리라고 통일교 원리 강론 교리는 주장합니다. 따라서 천사장 루시엘이 하와를 혈통복귀 피가름으로 더럽혀 죄의 뿌리가 되었기 때문에 문선명 재림주 메시아가 혈통복귀 피가름으로 혈통복귀를 해야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문선명 교주는 혈통복귀 피가름을 통한 혈통복귀야 말로 모든 인류를 하나님 앞으로 구원한다는 의식이라고 하였습니다. 동방 예의지국인 대한민국에서 그 당시 문선명 교주와 같은 혈통복귀 피가름교주가 나타나 선량한 처녀들과 수많은 가정을 파괴해도 징벌하는 법조인이 없었고, 종교인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문선명 교주는 자신의 수재자에게도 복귀의식을 치르게 하였습니다. 제 4 절 문선명이 창안한 혈통복귀 피가름의식
문선명 교주는 방법을 짜냈습니다. 통일교 교인들이 합동결혼식을 할때 포도주인 성주의식을 먼저하게 되는데 이때 포도주에 21가지의 과일즙과 포도주를 넣고 자신의 00을 넣어 통일교 합동결혼식을 하는 신랑, 신부에게 혈통 복귀 의식인 포도주를 마시게 한 것입니다. 그 포도주는 문선명 교주의 피와 살을 의미합니다. 또한 문선명 교주는 통일교 합동결혼식을 하고 3년 전도기간이 지난 다음 3일 혈통복귀 피가름의식을 함으로 문선명의 혈통을 이어받고 혈통복귀를 한 통일교 교인들은 아담이 지었던 원죄는 물론 조상 대대로 지었던 혈통죄와 형제들이 지었던 연대죄 그리고 자신이 지었던 자범죄가 깨끗해지고 완전 구원을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제 5절 문선명 통일교의 혈통복귀 피가름 3일간 복귀 의식 다음은 문선명 자신이 처녀와 유부녀들에게 3일간 혈통복귀 피가름 구원의식을 행한 것 같이 통일교 합동결혼식을 한 신랑 신부에게 통일교 원리강론 복귀원리 완전구원교리가 3일 행사 혈통복귀 피가름 교리라는 증거의 공문이다. 통일교 합동결혼식을 한 신랑 신부가 행하는 3일간 혈통복귀 피가름의식 1. 의의 첫째 날은 구약시대(타락한 아담, 구약권)의 복귀식이다. 둘째 날은 신약시대의 예수님 입장을 탕감 복귀하는 의식이다. 셋째 날은 복귀된 신랑으로서 신부를 재창조하는 의식이다. 나.문선명 참부모님에 의해서 다시 태어나는 조건을 세우는 탕감의식으로 아내가 먼저 복귀되어 남편을 다시 낳도록 하는 가정을 외적으로 통과하는 탕감의식이다 내적인 의식이 문선명의 00포도주성주의식 임.
2. 준비 나,본 혈통복귀 피가름 의식은 통일교 합동결혼식 축복 후 40일 동안 부부관계를 하지 않고 성별 생활을 하여 성공한 남편과 아내가 통일교 목사님에게 축도를 받고, 3일간 혈통복귀 피가름 의식행사를 치르게 된다. 반드시 하루에 1번은 혈통복귀 피가름 행사를 하여야 하며,하루에 2번만 하여도 재 타락한 결과가 되어 죄인이 되는 것이다. 다. 3일 혈통복귀 피가름행사에 사용하는 방과 침구일체를 성염(소금)으로 뿌려서 깨끗하게 성별한다. 라.신랑 ·신부는 적당한 장소(주로 북쪽)에 문선명 참부모 재림주 온영(사진)을 모시고 심정초 또는 통일초에 불을 밝힌다. 마. 성건(수건에 포도주를 묻힌 것)의식 1) 남편과 아내는 먼저 정성껏 목욕을 한다. 2) 성건을 담근 그릇은 가로 20cm, 세로 10cm, 높이 3cm정도로 하고물은 성건 하나를 적실 정도로만 준비해서 신랑·신부가 서로 완전 나체 상태에서 성건 (수건)으로 몸을 닦은 다음에 그릇에 물이 남지 않도록 한다. 3)성건은 남편과 아내의 것이 바뀌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3일 동안 반드시 구분해서 사용해야 한다. 4)몸을 닦을 때에는 자기가 자기의 몸을 닦아야 하며, 닦는 순서는 머리부터 닦는다. 5)이 의식은 성건으로 몸을 닦아 외적으로 성결케 하는 조건을 세우는 것이다
3. 행사 1)성건으로 물을 적셔 몸을 닦은 다음에 다시 양복 또는 하얀 예복을입고, 하나님과 참부모님 존영(사진)에 찬송과 경배를 드리고 가정 맹세를 봉독한다. 2) 아내가 앉고 남편이 아내에게 3배 경배를 드린다(이 때의 아내는 어머니 입장이기 때문에 어머니, 나를 낳아 주십시오 하는 심정으로 경배한다. ) 3)아내가 어머니 입장에서 기도한다. (기도내용 : 통일교 축복에 대한감사와 문선명 참부모님 가정의 전통을 상속받는 가정을 이룰 것을결심하고 또한, 어머니의 입장에서 하나님과 참부모님의 심정을 상속받는 남편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4)아내 상위로 사랑행위를 한다 (어머니의 사랑으로 남편이 하나님의 아들로 탄생하는 의식이다. ) = 참고사항 : 사랑행위(삽입)을 위해서 애무를 해도 된다. 반드시 삽입이 이루어져야 하며 사정을 할 때까지 계속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사정이 안되면(어려우면)사랑행위를 마쳐도 된다. 단, 반드시 삽입은 이루어져야 한다. (주체가 발기가 되지 않아서 삽입이 되지 않을 경우 아내가 남편의 성기를 손으로 잡고 자신의 성기 속으로 밀어 넣어서라도 성공을 시켜야 한다. 사랑행위가 이루어지지 않아 시간이 연장될 때에 24시간 이상 경과하면 안 된다. 사랑 행위시 콘돔이나 피임기구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 5) 다시 신랑 ·신부는 1회 성행위를 마친 후 다시 정장을 입고 남편이 아내에게 1배 경배를 드린다. (이 때에 남편은 아내에게 "어머니, 나를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심정으로 경배한다. ) 6) 아내가 두 사람을 대신해서 하나님과 문선명 앞에 첫날 혈통복귀 피가름 혈통복귀 행사를 마쳤다는 보고 및 감사기도를 드린다. 나. 제2일 :혈통복귀 피가름행위를 남편이 아래에서 부부관계를 하고,아내가 남편위에서 부부 관계를 해야 구원을 받는 것이다. 1) 첫째날 혈통복귀의식과 둘째날 셋째날 피가름 혈통복귀 의식은 하루한 번만 성교의식을 해야지 통일교 합동결혼식 후 3년 동안 합방을 안해서 정욕이 넘쳐 두번 피가름을 하면 탕감봉으로 매를 맞고 천국 구원의식이 깨어지고 7년동안 금욕생활을 해야 한다 다. 제3일 2)성건의식 후 정장을 하고 하나님과 참부모님 존전(사진)에 찬송과 경배를 드런다. 3) 남편과 아내가 마주보고 맞절 3배를 한다. 4) 남편이 주관성 복귀된 남자의 입장에서 하나넘 앞에 기도한다. (기도내용 : 남자의 주관성 복귀와 잃었던 조건회복을 감사하는 내용) 5) 아내가 답례기도를 한다. 6)남편 상위로 남편이 3일째에는 혈통복귀 피가름관계를 할 때 아내 위에서 부부관계를 하고, 아내는 남편 밑에서 사랑행위를 한다. 복귀된 아담 가정에서 혈통복귀 피가름로 타락했기 때문에 통일교 복귀 원리인 혈통복귀 피가름로 완전구원을 받은 아담 가정의 입장이 되는 것이다. 7)사랑행위 후 성건으로 하체를 닦는다. 닦은 성건은 세탁하지 않고,그대로 말려서 이스라엘 민족이 법궤를 보관하듯이 소중하게 보관하여 자손만대까지 물려준다 그 이유는 완전구원을 받은 중생의 마지막 관문을 통과한 표시가 되기 때문이다. 8) 정장을 한 후에 남편이 앉고 아내가 남편에게 1배 경배를 드린다. 9)남편이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린다(전체 행사의 종료 보고와 절대로 타락하지 않겠다는 맹세의 기도 및 3일 행사 성공을 감사하는내용으로 기도한다. ) 4. 주의사항 가. 3일 행사를 1일이나 2일에 끝내거나 4일 이상해서는 안 된다. 단,3일행사 도 중 불가피한 사유(긴급한 일)로 첫날 행사 후 그 다음날 행사를 할 수가 없게 되었을 때에 며칠 뒤 2일째 행사를 할 수는 있다. 기성가정(결혼 후 통일교 입교하여 문선명 교주에게 합동결혼식을 한 가정)의 경우 나이와 건강의 문제로 계속해서 3일간 할 수가 없게 되었을 때에 첫날 행사 후 수일간을 띄워서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수개월 씩 띄워서 해서는 안된다. 나. 성건 사용시 주의사항 2) 성건을 사용하지 않고 3일 행사를 해서는 안 된다. 3)성건을 서로 바꾸어 사용해도 안되고, 하나의 성건을 둘이서 사용해도 안 된다. 다. 아래와 같이 사랑행위를 한 경우에는 실패가 된다. 2) 셋째 날 아내상위로 사랑행위를 한 경우 3) 삽입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랑행위를 끝낸 경우 4) 본 식 외에 다른 사랑행위를 한 경우 라. 3일 행사 첫째 날(둘째 날이나 셋째 날도 해당됨)의 행사를 수일에 걸쳐서 행할 경우도 실패가 된다. 시작된 시간으로부터 24시간 안에 끝내야 한다. 마. 3일 행사는 반드시 허락하신 목사의 축도를 받은 후에 실시해야 한다 바.본 식대로 3일 행사를 하지 못했을 경우 협회 가정국에 상담한 후성별의 탕감조건을 세워야 한다. 그 다음 축도를 받고 성건을 다시지급 받아 3일 행사를 실시한다. 사.제1일 제2일 사랑행위 한 후에는 타월로 하체를 닦되 제3일째 날은 반드시 성건으로 하체를 닦은 후 그대로 말려 보관한다. 아. 3일 행사중 동일한 일자에 사랑 행위가 중복되지 않도록 한다. 즉,3 일 행사의식이 끝나는 시간과 새로 시작하는 시간이 동일한 날짜에 중복되지 않아야 한다.
제 25 장 문선명은 모든 사람의 재산을 착취하고 파멸시킨다
문선명의 죄악은 자식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으며 이는 문선명이 사이비 교주라는 증거이다. 자녀들도 방탕, 마약, 이혼, 동거, 자살, 사고사, 감옥 생활 등으로 고통 당하고 있다. 자신의 자녀들 신앙교육도 책임 지지 못하는 문선명 사이비교주가 인류의 구세주 참부모 재림주라는 것은 거짓이며 영혼 사기꾼이라는 증거이다. 문선명이 결혼하여 낳은 여섯 번 째 아들인 문진영(21세)은 1999년 9월26일날 호텔 경영 수업을 위해 미국 네바다주로 가는 길에 있는 '리노'라는도시 호텔에 투숙하던 중 17층 발코니에서 떨어져 자살하였다고, 미국 신문에 대서특필하였습니다. (리노 미국 레바다주 AP=연합뉴스/1999. 11. 11) 그 당시 문진영은 문선명이 수많은 통일교 2세 가운데 뽑은 유화주와 결혼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유화주에게는 애인이 있었고 그의 애인은 한남동 저택과 미국 문선명 왕국의 저택인 이스튼 가든까지도 찾아가 크나큰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이 문제로 문진영이는 괴로워 하였습니다. 아기를 하나 낳았지만 별거 하였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문진영이는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자신을 포기했던 것입니다. 문선명 교주는 자신의 며느리 될 사람의 신앙을 보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며느리 후보 중 학벌, 미모만보고 결정하고 맞이하여 결국 사랑하는 아들인 문진영을 죽음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문선명이 본부인인 첫 번째 부인 최선길과 아들을 버리고 이혼하고 처녀를 피가름하여 사생아를 낳고 그 수많은 가정을 파탄시켰다. 1960년 4월11일 문선명(40세) 부인 한학자(17세)에 자칭 재림주 참부모 어린양 혼인잔치를 하고 낳은 큰아들이 문효진이다. 문선명과 한학자 사이에 낳은 큰아들 문효진이 당시 19세, 홍난숙 15세에 결혼하여 5남매를 두고 이혼하였는데 전 며느리 홍씨는 "전 시아버지인문선명 교주는 구세주가 아니며 사기꾼" 이라고 미국 CBS방송에 한 시간 동안 보도 하였습니 다. 문선명의 딸 문은진도 "문선명은 자기 아버지일 뿐이지 재림주 구세주가 아니다" 라고 주장 하였습니다 (조선일보, 1998. 10. 08) 문선명 사이비 교주는 며느리 감도 제대로 고르지 못하는 그런 부모입니다. 자신의 자녀도 신앙책임을 갖지 못하고 파경을 맞는 자녀들이 있는데 통일교 미혼남녀를 합동결혼식을 시켜 완전 구원해주고 후손대대로 복을 빌어 줄 수 있겠습니까? 귀중하고 소중한 자식을 죽게 만든 사람이 바로 문선명 교주인 것입니다. 문진영이 죽은 후 통일교회 내에서는 7일 동안 문진영의 죽음을 통일교 교인들에게 숨겼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숨길 수 없어 호텔 발코니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발표 하였던 것입니다. 문진영의 죽음은 결국 부모를 잘못 만났기 때문입니다. 문선명 사이비 교주는 처녀인 Y대 여대생 김명희도 간음 간통 복귀의식을 치러 문희진이라는 아들을 낳았으나 문희진은 1955년 6월 30알(양력 8월 17일)출생하였고 1969년 8월 1일 14살 때 조치원 부강역에서 열차 사고로 사망하였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가 문선명 사이비 교주의 유혹으로 통일교인이 된 이득삼과 그 딸 최순화는 문선명 교주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문선명 교주는 처녀인 최순화와 혈통복귀라는 미명으로 복귀의식을 치러 박 사무엘이라는 사생아 아들을 1965년도에 낳아 길렸습니다.
제 2 절 문선명의 둘째 아들 문흥진의 사망
문선명은 문흥진이 통일교 전체 교인들을 위하여 희생의 제물이 되어 죽었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전 세계 통일교 교인들에게 1984련 1월 1일부터 1월 30일까지 금식 철야 회개 기도를 실시하라고 명령하여 실행을 하였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죽은 문흥진과 박보희 회장의 살아있는 큰딸 박훈숙을 영혼 결혼시키고 박훈숙을 문훈숙으로 성을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것은 1971년에 문선명이 미국 시민권을 가졌을 때 미국성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훈숙은 일생동안 영혼결혼을 하여 살아있는 처녀가 문선명 교주의 며느리가 되었습니다. 문선명은 박훈숙에게 죽은 아들 문흥진을 위해 희생의 제물이 되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과천교회에 목사로 있으면서 국내의 유명한 사건을 해결한 강창수(가명)라는 형사를 만나 문흥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문흥진이 미국 뉴욕에서 교통사고로 죽기 전 국내에서 과속으로 교통사고를 내어 경찰서에 잡혀 온 일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문흥진의 비서 역할을 했던 과장이 강창수 경정을 찾아와 "제발 문흥진의 운전 면허증을 빼앗아 달라" 는 부탁을 한 일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문흥진을 수행하는 비서는 과속으로 차를 운전하는 문흥진이 무섭다고 하며 운전 면허증을 빼앗아 달라고 담당형사에게 말을 하였던 것입니다. 미국에서 어떻게 운전하고 다녔는가? 하는 것을 저는 안 보아도 훤히 알 것 같았습니다. 제 3 절 재림한 문흥진 노릇한 에지프트
문선명은 1987년 에지프트가 적극적이며 설교도 잘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문선명과 곽정환 회장은 에지프트에게 문흥진이 되라고 강요하고 명령하였습니다. 에지프트는 문흥진이 되기 싫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곽정환 회장, 간부들의 설득으로 재림한 문흥진이 되어 통일교 회개 운동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에지프트에게 전세계 통일교회를 다니며 통일교 교인들을 회개시키는 고백식 설교를 하게 하였습니다. 문선명은 통일교 교인들을 회개시킨다고 하며 죽은 문흥진이 살아서 재림해서 에지프트에게 영이 들어 왔다고 외쳤습니다. 에지프트를 문흥진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리고 에지프트는 죄있는 통일교 교인들을 몽둥이로 때렸습니다. 전 세계 통일교 교인들에게 죄악을 용서를 받는 조건이라며 죄악의 정도에 따라 몽둥이로 탕감봉이라는 구실로 10대, 7대, 3대, 1대를 무자비 하게 폭행하였습니다. 유럽, 아프리카, 남미, 미국, 일본, 한국에서 흑인인 에지프트가 사망한 문흥진이라고 자칭하며 통일교 교인들이 저지른 간통죄, 강간죄, 성 추행죄, 공금 횡령죄, 절도죄, 부부 싸움한 죄를 심판하였습니다. 통일교 교인들에게 문선명 교주를 배반한 죄, 욕설한 죄는 몽둥이를 맞아야 용서를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통일교 교인들은 공개적으로 에지프트에게 죄악 고백식을 하였습니다. 에지프트는 죽은 문흥진 행세를 하며 전 세계 통일교 교회를 방문하였습니다. 죄악을 저지르는 통일교 교인들에게 죄를 용서하여 준다는 면죄부 형식으로 폭행을 하였습니다. 심지어 합동 결혼식 전에 혼전 혈통복귀 피가름 한 것과 합동 결혼식 후 혈통복귀 피가름을 한 것까지도 몽둥이로 폭행을 하였습니다. 문선명은 미국 호화 저락인 이스트 가든에서 에지프트를 불러 환영 만찬회를 열었습니다. 에지프트는 자신을 교통 사고로 죽은 문흥진이라고 소개하였습니다. 문선명 큰아들인 문효진, 셋째 아들인 문현진, 넷째 아들인 문국진은 진짜 문흥진이 재림 한 것이라면 어린 시절에 대하여 말을 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에지프트는 어린 시절에 대해서 단 한 마디도 말하지 못하였습니다. 에지프트가 문흥진이라는 것은 거짓이었기 때문에 예언할 능력도 없고 영을 볼 수도 없으며 투시력도 없었습니다. 에지프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문선명, 곽정환, 에지프트 3명은 통일교 교인들의 죄악을 회개시킨다며 사기극, 조작극을 하였습니다. 통일교 협회 최고위층 간부들과 통일그룹 내 기업체 사장들은 에지프트에게 하는 고백식을 피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허사였습니다 문선명 교주의 겹사돈이었던 홍성표 일화사장도 곽정환 회장에게 고백식을 안하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곽정환 회장은 한 마디로 거절하였습니다. 문선명 교주와 겹 사돈인 박보희 총재도 에지프트에게 죄악을 고백하는고백식을 했습니다. 에지프트는 60세가 넘는 박보희 총재를 무차별적으로 폭행 하였습니다. 그래서 박보희 총재는 뇌출혈을 일으컥 뇌수술을 받았고 조지타운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습니다. 통일교 최초 합동결혼식을 한 36가정(1901년 결혼)부터 6,500가정까지의 모든 축복 가정도 고백식을 하였습니다. 그중 1,800쌍(1975년 결혼) 고백식에 저도 갔습니다. 1988년 12월 18일이었습니다. 그 날 통일교 본부 교회에 1,800쌍 합동결혼식을 한 통일교 목사들과 교인들이 전국에서 모였습니다 1,800쌍 전부가 지를 지었다며 고백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10가지도 넘는 지의 종류 중에 한 가지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1,800쌍 전부가 죄가 있다며 몽둥이로 지를 탕감해 주는 탕감봉 폭행을 당하였습니다. 지를 지은 1800쌍 부부는 자리에 앉고 저와 다른 한 목회자가 일어서 있었습니다. 죄악의 조건에 걸리지 않는 저와 다른 목회자는 통일교 죄악 고백식 중 노아 같은 의인이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저는 진실과 정직으로 살아 온 목회 길을 회고하며 그 당시 문선명에게 미쳐서 참 부모님께서 저를 지켜 준 것에 대하여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교통사고로 죽은 문흥진 행세를 하며 폭력을 행사했던 에지프트는 문선명, 곽정환의 1회용 이용물로 사용되었습니다. 통일교회에서 에지프트를 버림으로 에지프트는 통일교회를 탈퇴했고 문선명 통일 교주는 고백식 후에 문흥진이 에지프트를 떠나 영계로 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에지프트는 1992년 8월 4일 일본 지바시 지바깽 마꾸바리에 있는 국제회의장 대 강당에서 통일교회와 문선명 교주의 문흥진 조작 행사를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하였습니다. 문선명 교주는 사이비 교주이고 적 그리스도며 인류의 영혼을 파멸시키는 하나님의 대적이라고 문흥진 군 행세를 했던 에지프트가 폭로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교 교인들은 이런 내용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짐바브웨 흑인청년 에지프트의 고백식 사건으로 수많은 통일교 교인은 신앙의 타격을 받고 상처를 받았습니다. 통일교 교인들은 부부지간에 간통, 성추행 사건 등이 서로 폭로되어서 왕따가 되고 가정 불화가 일어났습니다. 통일교회 목회자 회의에도 타격을 주었습니다.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에지프트는 교회에 많은 사건을 일으키고 통일교회를 탈퇴하였습니다. 문선명 사이비 교주가 재림주라며 호의호식하는 모습을 보고 에지프트도 사이비 재림주가 되었습니다. 에지프트는 문선명 교주가 하던 것처럼 재림주 노릇을 배웠던 것입니다. 에지프트는 아프리카 짐바브웨에 가서 가루트라는 기독교 종파를 만들어 가짜 재림주가 되어 포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문선명으로 인하여 또 하나의 사이비 교주가 수많은 영혼을 죽이는 재림주가 된 것입니다.
제 4 절 문선명과 친인척은 재산착취를 통해 초호화 생활을 누린다.
출세하여 개선 장군같이 고향에 가서 죽은 부모에게도 효도하고 형제, 친척들에게도 온갖 선물로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문선명 교주는 통일교 교인1인 당 8만원씩의 돈을 거두어 고향에 땅 30만 평을 마련하고 수백억의 돈을 투자하여 예수님이 탄생한 베들레햄 같이 문선명의 고향 땅인 정주를 평화공원으로 만들었습니다. 문선명 교주는 남한에 살고 있는 문선명 교주의 사촌 육촌 형제들과 친척들을 통일그룹 사장, 기업체 총 책임자들로 세워 통일그룹을 망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통일그룹이 망한 후에도 문선명 친척들은 돈을 가지고 초호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제 5 절 문선명의 브라질 자르딘 계획
그렇기 때문에 문선명은 통일교 교인들의 돈이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며 소유권을 이전하라고 하였습니다. 한국의 전통은 부모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인데 어느 누가 자식이 부모에게 재산을 물려줍니까? 문선명교주는 참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선명은 한국과 일본의 통일교 교인들에게 무조건 재산을 자신의 소유로 이전하라는 공문을 내렸습니다. 교인들은 무조건 문선명에게 2,100만원을 총 생축 헌금이라는 명목으로 내야 했습니다. 죄를 용서해주는 천국행 면죄부인 탕감비 1300만원을 바쳐야 되고 조상 구원헌금 수천만원 등 재산을 바치지 않으면 통일교 교인이 아니고 죄인이 되며 지옥을 가야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온갖 공갈 협박에도 통일교 교인들은 문선명에게 세뇌가 되고 훈련이 되어 있기 때문에 재산을 바치게 됩니다. 문선명은 재산 착취를 통해 브라질 자르딘 새 소망 에덴동산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통일교 교인은 브라질의 자르딘 40일 수련에 무조건 참석 해야 하며, 만약 40일 수련을 참석하지 않으면 통일교 교인이 아니고 문선명 통일교 제국의 황족의 자격을 박탈한다고 하였습니다. 온갖 공갈 협박으로2,100만원 헌금을 내고 브라질 40일 세뇌교육 수련에 일천만원 경비를 쓰고 참석하는 사람만 문선명 사이비 종교 통일 제국의 황족 자격을 갖는다고 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문선명은 1차로 1억 평의 남미의 브라질 자르딘 새 소망 에덴동산 수련소를 매입하였습니다. 이 땅은 통일교 교인들을 잔인하게 공갈 협박하여 재산을 착취한 돈으로 사들인 것입니다. 문선명은 이 땅에 통일교 교인들 세뇌교육을 시키기 위한 교육수련소와 앞으로 50억 평을 매입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추진하고 있습니다. 리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학교 건물을 건축하였습니다. 문선명 사이비 교주는 브라질 자르딘 새 소망 에덴동산이라는 거창한 이름도 붙였습니다. 새 소망 에덴동산은 문선명 통일교 제국의 새 세계, 새 국가 건설을 하여 통일제국을 만들자는 것이 최종 목적입니다. 예수님은 나라와 백성이 없었기 때문에 십자에 달려 죽었다고 문선명이 주장합니다. 문선명은 문선명 통일교 제국을 세우기 위하여 2004년 4월30일까지 세워야 한다고 통일교 교인들을 명령하며 독촉하고 있습니다. 이미 문선명은 주권 복귀와 조국 광복, 왕권 복귀라는 대명제를 가지고 통일교 교인들에게 재림주 천지 부모, 통일교 제국의 왕으로 취임을 하였던 것입니다. 1차는 새 소망 에덴동산에 새 세계, 새 국가 통일제국 건설이 목적입니다. 2차는 산업 개발을 하여 임업농업 생산환경을 성공하자는 계획입니다. 3차는 공업도시를 만들자는 것이 목적입니다. 4차는 건설업을 육성하는 것이 목적이고 5차는 문화, 예술, 이상세계, 통일제국 건설이 목적입니다. 문성명은 한국에서 통일그룹 부도 후 한국 통일교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고 통일교 교인들을 남미 브라질로 대 이동하는 방대한 계획을 세워 각종학교를 세우고 1억 평 대지를 매입하였던 것입니다. 성경말씀에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중심 삼고 애굽이라는 나라에서400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하여 애굽을 탈출하였고 홍해 바다를 건너 가나안 7족을 멸망시키고 이스라엘 백성은 고향 땅을 400년만에 찾게 되었다는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역사의 동시성을 반복하고 복귀 섭리역사를 위해서 브라질 자르딘 새소망 에덴동산으로 이주할 계획을 세웠던 것입니다. 통일교 교인들이 브라질로 이주하면 브라질 자르딘 에덴동산에서 1억 평의 밀림을 무보수로 논과 밭을 개간해야합니다. 통일교 교인들은 세뇌되어있기 때문에 자자손손 영혼의 노예가 되어 죽을 때까지 밀림을 농업도시,공업도시, 상업도시, 어 업도시로 개간하고 건설하여야 합니다. 문선명 통일교 사이비 교주는 자신의 욕망과 통일교 제국을 세우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 엄청난 자원과 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통일교 교인들에게 부끄러움도 없이 재산의 소유권 이전하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한국과 일본 합동결혼식을 한 통일교 교인들은 남미 브라질 자르딘 새 소망 에덴동산에서 세뇌교육을 40일 동안 받았던 것입니다. 한국과 일본 통일교 교인들은 2,100만원을 문선명 교주에게 바친다는 각서를 쓰고 무조건 40일 동안 브라질에 가야 합니다. 문선명 사이비 교주와 같이 40일 수련을 가는 통일교 교인 부부는 문선명 통일교 사이비 교주 부부와 같이 천국 황족으로 입적하는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그 기념사진을 10만원씩에 판매하고 브라질 자르딘 새 소망 에덴동산에서 40일 수련 세뇌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식사비로 120만원을 바칩니다. 이 나라에서 40일 식사비는 1인당 5만원도 되지 않지만 식사비라는 명목으로 재산을 착취하고 있습니다. 한국 통일교 교인들이 외화를 밀 반출하여 브라질에 가져가서 문선명 교주에게 바치는 것입니다. 통일교 교인들 부부가 브라질 40일 세뇌교육 수련을 받기 위해서 가정생활도 할 수 없으며 직장도 퇴직해야 되고 장사도 문을 닫고 브라질에 가야 했습니다 부부왕복 항공경비 등 일 천 만원 정도의 금액이 들어갔습니다. 문선명 통일교 사이비 교주는 피골이 상접한 일본 통일교 교인과 한국 통일교 합동 결혼식을 한 통일교 교인 2만 쌍을 브라질 자르딘 새 소망 에덴동산농장으로 대 이동하라는 명령을 하였습니다. 한국 통일교 교인 1만 5천 명을 남미 브라질 자르딘 새 소망 에덴동산 농장으로 대 이주하려는 계획을 세웠던 것입니다. 문선명 통일교 사이비 교주는 남미 브라질 자르딘 새 소망 에덴동산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고 통일교 합동결혼식을 한 교인 재산을 빼앗기 위하여 세뇌 교육을 시켜야 했습니다. 문선명 사이비 교주는 야망에 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한국 통일교 교인과 일본 통일교 교인의 집을 팔고 융자를 받아서라도 무조건 남미 브라질 자르딘 새 소망 에덴동산 교육에 참석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통일교 교인들은 일생 동안 통일교 교세 발전을 위하여 매일 각종 전도 대회와 행사에 일회용 이용물이 되었고 재산을 바쳤습니다. 처절하고 불쌍한 통일교 교인들은 세상에서 돈 벌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통일교 교인이 되려면 계속 행사에 이용당하고 참석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직업을 갖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직업을 갖고 개인 장사를 할지라도 운영하기가 힘이 듭니다. 통일교 교인들은 일생동안 인생의 밑바닥에서 처절한 가난과 싸우면서 그 날 그 날 식사 끼니를 걱정해야 되는 처지니 자녀 교육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문선명 교주를 참부모 재림주로 믿고 있는 통일교 교인들은 재산을 바칠것이 없어 집을 팔고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하여 문선명 교주에게 7천 만원에서 1억원을 바쳐야 했습니다. 문선명의 명령에 복종하여 거액 재산을 바치기 위해서 통일교 교인들은 막노동을 하고 파출부 일을 하고 식당 일을 하며 매월 분납하는 교인도 있고 처절한 생활입니다.
제 6 절 재산착취 수단인 자르딘 새 소망 에덴동산
1차 브라질 자르딘 40일 세뇌교육 때는 7월 22일~8월 30일까지 한국과 일본 합동결혼식을 한 통일교 교인들 2,000명이 참석했습니다. 2차 브라질 자르딘 세뇌교육 때는 9월 1일~10월 10일까지 3,400명의한국과 일본 합동결혼식을 한 통일교 교인부부가 자녀들을 40일 동안 떼어놓고 1천만 원씩을 교육비를 내고 브라질에서 세뇌교육을 받았습니다. 통일교 교인들은 2,100만 원씩을 총 생축 헌금이라는 명목으로 문선명 교주에게 바쳤습니다. 3차 세뇌교육 때는 10월 11일~11월 17일까지 700명의 통일교 합동결혼식을 한 교인이 참석하였습니다. 4차 브라질 자르딘 새 소망 에덴동산 세뇌교육 때는 11월 18일~12월 28일까지 문선명 교주가 세뇌교육을 시켰습니다. 총 150명이 참석하였습니다. 문선명 교주의 거듭되는 명령과 지시에 남미 브라질 자르딘 40일 세뇌교육에 우리 부부도 어쩔 수 없이 약 1천만 원 정도의 돈을 내고 세뇌교육에 참석하였습니다. 문선명 사이비 교주는 "통일교 목사 부부까지도 40일 교육에 참석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목사들은 교육비가 없으면 교인들이 헌금을 마련하여 목사 부부 경비를 지원하여 참석하라" 고 명령 하였습니다. 교인들의 정성으로 경비를 마련하여 저의 부부는 4차 세뇌 교육 때 브라질 자르딘 수련회를 다녀왔습니다. 저의 부부는 문선명 교주와 황족으로 살 수 있다는 입적 사진도 같이 찍었습니다. 문선명 교주에게 통일교 교인들이 재산소유권 이전하라는 2100만원을 바치고 오라고 했습니다. 만일 바치지 않은 통일교 교인은 브라질 자르딘에서 40일 교육 등록할 때 2100만원 총생축 헌금을 문선명 재림주 참부모에게 바칠 것이라는 서약서를 제출하였습니다. 5차 때는 1998년 12월 29일~1999년 2월 6일까지 문선명 사이비 교주는 세뇌교육을 시켰습니다. 6차 때는 1999년 2월 6일~3월 17일까지 한국과 일본 통일교 교인들에게 세뇌교육을 시켰습니다. 통일교 역사가 있는 한 총탕감비 1300만원이나 총생축헌금 2100만원,조상구원헌금 1대부터 120대 조상까지 수천만원, 10의 3조헌금, 문선명 나라 건국기금 매월 17만원, 8대명절 헌금 등을 통일교 합동결혼식 한 교인들은 무조건 바쳐야 합니다. 문선명 통일교 사이비 교주는 40일 수련이 회를 거듭할수록 한국과 일본의 통일교 교인들이 적게 오자 말을 바꾸어 버렸습니다. 문선명 사이비 교주는 "브라질 자르딘까지 40일 교육을 못 오는 한국과 일본 합동결혼식을 한 통일교 교인들까지도 2,100만원씩을 나에게 바쳐라" 하고 한국과 일본 통일교 교인들에게 공문으로 명령하였습니다. 한국과 일본에서 직장에 다니거나 장사하는 통일교 교인들은 브라질 40일 세뇌 교육을 안 가더라도 집을 팔거나 융자를 받아 총 생축헌금 2,100만원씩을 문선명 교주에게 바쳐야 했습니다. 저는 브라질 자르딘에 가서 문선명 교주 부부를 아침 식사할 때 만났습니다. 문선명 교주 부부가 새벽 집회를 마치고 6시 30분에 식사할 때 통일교 교인 경호원 여러 명이 경호를 서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김윤상 자르딘 새소망 에덴동산 원장과 부원장인 윤정로씨에게 저의 이야기를 하고 아침에 몇 분만이라도 문선명 교주 부부를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문선명 교주가 식사를 하는 중에 그 앞에서 땅 바닥에 무릎을 꿇고 경배를 하였습니다. 통일교 교인 전부는 문선명 앞에 나아갈 때 경배 세 번이나 한 번을 무조건 해야합니다. 그러고는 문선명 교주에게 억울한 강제 인사를 당했던 것을 간단하게 설명 하였습니다. 1991년도 1월 6일 노원 교구 본부에 제가 교구장으로 발령을 받았지만 김봉철 총무국장이 서유암 교회장을 교구장으로 만들기 위하여 노원 교구 교구장으로 임명된 저를 강제 박탈시키고 서유암으로 교체 시켜 버렸다고 말하였습니다. 제가 서울 시내 교회 전체 목사들 앞에서 일어나 부당성을 발언하고 밖으로 나가 버렸던 것은 제 마음이 상했기 때문에 나갔다고 문선명 교주에게 보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김봉철 국장과 김철현 국장이 저를 폭행한 내용이나 충격으로 심장병이 되었다는 내용은 차마 말하지 못하였습니다. 문선명 통일교 교주는 저에게 "수련을 잘 받고 가라!" 고 말하였습니다. 문선명 교주는 자르딘 수련 받는 교육생들에게 세뇌 교육을 시킨 후 아침새벽 설교를 하고 6시 30분에 식사를 한 후 바로 자르딘 새 소망 에덴동산을 떠나갔습니다. 저는 브라질까지 간 것은 40일 세뇌 교육 조건도 세우는 것 이었지만 제가 문선명 교주에게 할말을 하기위해 갔습니다. 그러나 저는 할 말을 다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문선명 교주는 미국에서 이미 화가 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브라질 자르딘 수련소에 와서 문선명 교주의 가족이 되는 황족 입적 사진도 안 찍어 주려고 하였습니다. 뿌리까지 썩은 통일교회는 한국과 일본 통일교회에서 공갈 협박으로 걷어지는 헌금이 없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브라질 자르딘 40일 세뇌교육 수련이나 청평 천성 왕림 궁전에서의 조상 해원 헌금을 한국과 일본에서 하지 않으면 전 세계 통일교회는 순식간에 쓰러지는 것입니다. 미국 소수의 통일교 교인들과 유럽 극소수의 통일교 교인들, 남미 통일교 교인들, 아시아 통일교 교인들은 절대로 문선명 교주에게 헌금을 바치지 않습니다. 오직 한국과 일본 통일교 교인들만 문선명 사이비 교주의 노예가 되어 재산을 착취당하고 빼앗기고 있는 것입니다. 문선명은 1998년 12월 21일 밤에 브라질 자르딘 수련소까지 와서 통일교 40일 세뇌 교육생들과 하늘나라 천국 황족 입적 사진을 부부끼리 찍어주었습니다. 문선명 교주 부부가 자칭 재림주로 의자에 앉고 통일교 합동결혼식 한 부부는 문선명 교주의 뒤에 서서 황족 입적 사진을 찍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입적 수련을 받은 합동 결혼식을 한 통일교 교인들은 1천만 원의 경비를 쓰고 2천 1백만원의 재산을 문선명 교주에게 바쳐야 합니다. 브라질 자르딘에서 수련생 전체에게 매일 회개기도와 새벽에 문선명의 기도책을 읽는 훈독회와 세뇌 교육 프로그램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저의 뇌리에서 맴돌 뿐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문선명 통일교 교주는 통일제국 건설과 주권 복귀, 왕권 복귀가 최종목적입니다. 그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통일교 교인들의 재산을 빼앗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결국 자르딘 수련은 통일교 합동결혼식 한 교인들 재산 착취에 목적이 있습니다. 참으로 이 지구상에 생지옥과 같은 통일교회에서 문선명 교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일들이 너무나 사악합니다.
제 7 절 문선명이 사이비 교주임을 증명한 사람들
문선명 교주와 같이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했던 엄덕문 회장도 초창기 통일교 청파동 시절부터 문선명 교주를 재림주로 믿고 따랐지만 통일교회를 탈퇴 하였습니다. 엄덕문 회장은 문선명 교주의 축복을 받았고 통일교회의 산증인 이었습니다. 엄덕문 회장은 세종 문화회관 설계 등국내 설계의 일 인자로 통일교의 전국 교회를 설계하였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엄덕문 회장은 문선명 교주의 사이비 성을 알고 통일교회를 탈퇴하고 떠나 지금은 장로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문선명 사이비 교주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김덕진이라는 음악가는 일본음악 대학에서 공부를 하여 국내에 들어온 사람으로 통일교회 성가 19곡을 작곡한 열렬한 통일교회의 충성꾼 이었습니다. 지금도 통일교회는 김덕진이 작사 작곡한 19곡 성가를 즐겨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선명 교주는 한국의 성가에는 김덕진 작사, 작곡을 지워 버리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본 통일교 성가에만 김덕진 작사, 작곡 19곡이라고 인쇄되어 있습니다. 문선명 교주는 김덕진과 여자 교인 들에게 아담과 하와 때문에 혈통복귀 피가름으로 파탄된 세상을 자신이 완성된 아담으로서 세상의 여성들을 혈통복귀 피가름을 통하여 복귀의식으로 구원하여야 한다고 주장함과 동시에여성들을 원래의 모양대로 복귀시키는 혈대 교환, 피가름 의식을 하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김덕진씨는 복귀원리, 혈통복귀 피가름 교리로 유신선씨와 피가름 의식을 치렸습니다. 김덕진씨는 서울에서 통일교 여자 5명과 릴레이 혈통복귀를 한 것이 일주일 후에는 72명으로 불어났다고 문선명 교주에게 보고를 하였습니다. 또한 문선명 교주는 소생 장성 완성 3일 동안 혈통복귀 피가름관계 행사를 치러야 구원받는다고 하였습니다. 문선명 교주는 김덕진씨에게 한번만 혈통복귀 피가름을 하여 혈통복귀를 해서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문제로 문선명 교주와 김덕진 씨는 이 새끼라는 소리까지 들으며 싸움을 하였다고 들었습니다. 김덕진씨는 문선명 교주와 싸운 후 통일교회를 탈퇴하였습니다. 후에 그는 기독교 신학교를 나와 경찰 목사가 되어 일생동안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렸습니다. 문선명 교주의 오른팔인 박정화씨도 이북 흥남 감옥 에서부터 알게되어 이남에 까지 같이 내려와 초창기 통일교회에 충성한 산 증인 입니다. 그는 문선명 교주의 통일원리가 김백문 교리라고 증거하였고 문선명 교주의 지시에 의해 혈통복귀와 혈통복귀 피가름 교리를 실천하여 통일교 여자들과 관계를 많이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문선명 교주의 지시를 잘 따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중 박정화씨는 문선명의 비서실장으로 수행하면서 일기로 쓴것을 '야록 통일교회사' 라는 책을 저술하려 통일원리가 혈통복귀 피가름 교리이며 문선명 교주가 수많은 처녀와 유부녀들을 혈통복귀 피가름으로 복귀하여 개인과 가정을 파괴한 문선명 교주라는 것을 폭로하였습니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대대적인 통일교 비리 폭로운동이 벌어졌으며 특히 일본에서는 언론과 방송을 통하여 대대적으로 보도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문선명 사이비 교주는 일본 통일교 활동에 엄청난 타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황선조 한국 통일교 협회장을 박정화씨와 만나게 하여 자신의 비리와 혈통복귀 피가름 스캔들을 감추고자 하였습니다. 박정화씨는 문선명 교주의 부산 피난 시절부터 비서실장 일을 보면서 문선명 교주와 같이 동행하고 행동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 문선명 교주와 혈통복귀 피가름한 여자들과 혈통복귀, 혈대 교환을 한 내용을 일기로 써 놓을 수 있었는데 그것을 책으로 발행하여 일본과 한국에 폭로하였던 것입니다. 박정화씨는 1998년 1월에 문선명 교주의 잔악성과 통일교 원리가 혈통복귀 피가름 교리에서 출발하였다는 것을 전국 통일교 목사들에게 수백 권의 책을 발송하여 읽게 하였습니다. 다급해진 문선명 교주는 황선조 한국 통일교 회장을 통하여 통일교 교인들의 피살인 거액의 돈을 주고 박정화씨를 매수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박정화씨는 거액의 돈을 받고 통일교 문선명 교주의 야록 책을 통일교회에 팔았던 것입니다. 이 사실은 황선조 한국 회장이 1998년 4월 14일 부산 교구 내 통일교 목사 부부 회의석상에서 박정화씨에게 엄청난 돈을 주고 야록 책을 회수하고 사들였다고 한 말이 사실을 뒷받침 해 주고 있습니다. 통일교 목회자들과 저의 부부는 황선조 회장의 그 말을 똑똑히 들었습니다. 제가 마포교회에 있을 때 전도한 문희숙씨는 1975년 2월 8일날 1,800쌍 통일교 합동결혼식을 하였습니다. 문선명 교주가 최고의 신랑감이라고 하며 짝을 맞추어주어 합동결혼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문희숙씨는 그 남편과 이혼하였습니다. 이혼한 7년후 1982년 10월 14일날 6,000쌍 합동결혼식을 다시 올렸습니다. 문선명은 이혼을 당한 문희숙에게 박철수라는 사람이 최고 좋은 신랑감이라며 또 짝을 맞추어 주었습니다 문희숙씨는 남편과 두 남매를 두었습니다. 두 아들을 키우면서 중고등학교 등록금을 내지 못하여 졸업도 시킬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까지 이르렸습니다. 문희숙씨는 저에게 통일교회에 들어온 것을 통곡하며 하소연을 합니다. 문희숙씨는 아무리 살아보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불가능하였고, 가난 때문에 두 아들을 고아원에 보내고 싶어도 다 커서 고아원에서도 받아 주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자식을 중고등학교도 졸업시켜 줄 수 없는 무능한 엄마가 되었다고 통탄하였습니다. 문희숙을 전도한 믿음의 부모인 저는 통일교회 문선명 교주를 재림주 참부모로 믿게 한 결과로 이렇게 비참한 가정 파탄을 몰고 온 것에 대하여 제자신 스스로가 죄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문희숙씨는 이제 죽더라도 문선명 통일교 사이비 교주는 재림주로 믿지 않을 것이고 통일교를 탈퇴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문희숙씨는 장로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대종교(단군교)에서 통일교회로 입교하였던 이백림 논산할머니에게 전국 통일교 교인들 조상 구원 해원식을 문선명이 명령하여 통일교 조상들을 1973년도에 모두 구원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통일교 교인이 합동결혼식인 축복을 받으면 조상들은 모두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또 다시 지옥간 조상을 들고 나와 통일교 교인들을 미혹하여 1대부터120대까지 조상구원 하라고 명령을 내려 실천하는 것은 거액 재산을 착취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제 26 장 통일왕국을 꿈꾸는 문선명
제 1 절 통반격파를 지시한 문선명
문선명은 통일교 교인들 조상이 지옥간 것을 천국으로 보내 준다는 약속을 하고 지를 용서해 준다며 면죄부를 팔아 통일 교인 재산을 빼앗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성약시대 청평역사와 축복가정의 길', '축복가정과 이상천국 I~2권' 등을 전 세계 통일교 교인들을 세뇌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한국 통일교 교인과 일본 통일교 교인을 집중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통일교 교인들은 매일 1시간 씩 전 가족과 친척이 모여 훈독회라는 이름으로 책을 소리 내어 읽습니다 전국적으로 각종세미나,각종 행사,국민연합 세미나 행사를 통하여 문선명 교주를 참부모 재림주로 믿기 위한 세뇌교육으로 지속적인 훈독회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 교인을 뛰어 넘어 이제는 전국 시군구 면동리까지 국민연합을 조직하여 훈독회를 하고 통반격파를 하라고 명령하며 통일교 교세 확장에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지역의 노인들과 유지, 전도 대상자들이 있으면 무조건 문선명 교주의 책을 전달하고 글 읽는 행사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2004년 4월 30일까지 한국과 일본 통일교 교인 남편과 아내 3만명이 총동원되어 전도 목표를 세워 교세 확장에 사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문선명은 남북통일을 자신이 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남북한의 정치, 경제, 문화, 종교, 기독교를 문선명 사이비 교주가 통일하여 조국광복을 하자고 외치고 있습니다. 문선명은 주권 복귀를 외치고 왕권 복귀를 외치며 통일교 교인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 대통령은 문선명에게 경배하고 문선명을 남북한 7천만 국민들에게 메시아요 천지 부모가문선명 교주라고 국민들에게 증거하여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이 나라의 국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문선명은 1990년 2월 27일날 한남동 문선명 교주의 저택에서 하늘나라 왕권 정착이라는 설교를 통하여 자신이 세상의 천지 부모라고 선포 하였습니다. 문선명 교주는 자칭 참부모요, 재림주 메시아라고 주장합니다. 문선명 교주는 1990년 4월 9일~13일까지 제 11회 세계 언론인 대회를 모스크바에서 개최하고 국내에 들어와 4월 30일에 충북 수안보 통일교 호텔인 와이키키 호텔에서 전국 12개 대도시에 수천명의 사람을 모아놓고 참부모 메시아 재림주 선포식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문선명 교주는 "전국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통반 격파를 하자" 고 외치고 있습니다. 문선명 교주의 책을 훈독회라는 이름으로 통일교 교인들과 지역 주민들에게 읽게 만들어 문선명 교주가 재림주라고 세뇌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제 2 절 통일제국 건설을 위한 문선명의 음모
이제는 국가 메시아 185명의 부인들까지 21일 세뇌 교육 후 전국 통일교회에 배치하여 전도활동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가정 생활은 상상도 하지 못합니다. 부부를 갈라놓습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 자녀들이 견우와 직년 같이 서로 떨어져 그리워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비극적으로 전도 활동을 하여야 합니다. 문선명 사이비 교주를 참부모 재림주로 믿으라고 전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문선명은 이제 그것도 모자라 통일교 최초 합동결혼식을 한 1961년의 36가정, 1962년의 72가정, 1963년의 124가정, 1968년의 430가정, 1970년의 777가정, 1975년의 1800가정, 1982년의 6000가정, 1987년의 6500가정, 1992년의 3만 가정까지 통일 제국 건설을 위해 가정을 떠나 총 출동하라고 하였습니다. 통일교 브라질 자르딘 새소망 에덴동산 40일 세뇌교육을 다녀와 문선명 교주에게 재산 2100만원씩을 바친 그런 교인까지도 무조건 청평 천성 왕림궁전 21일 세뇌교육에 참석하여 식사대로 115만원씩을 바쳐야 했습니다. 식사 수준은 21일 식대로 7만원을 받으면 적당한 정도인데, 문선명은 엄청난 폭리를 취하는 것입니다. 문선명은 통일교 교인들에게 천국생활 황족으로 입적한다는 명목으로 재산을 갈취하기 위해 2중, 3중으로 입적 수련을 하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미 하늘 황족으로 등록된 통일교 합동결혼식을 한 사람도 수련을 받아야 합니다. 문선명은 청평 천성 왕림 궁전에 한국과 일본 합동 결혼식 한 통일교 교인 920명을 모아 통일교회 원리강론보다 한 단계 높은 세뇌 교육을 시켰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심을 불어 넣으며 희생의 제물이 되어 가정을 떠나 전도에 앞장서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지금은 3차 교육생으로 1982년도 6천 가정 합동결혼식을 한 여자 통일교 교인 3천명을 모아놓고 세뇌교육을 21일 동안 시켰습니다. 통일교 부인들은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 딸을 떠나 가정이 파탄되어도 3년 4개월 동안 문선명 통일교 제국 건설에 목숨을 바쳐 미혼 남녀를 전도하여 합동결혼식을 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6천 5백 가정도 아내 되는 3천 여명의 여자 교인들이 총동원된 전국 통일교회 미혼남녀를 전도하여 합동결혼식을 시켜 통일제국 조국 광복에 목숨을 바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문선명 사이비 교주는 공갈협박을 한 것이었습니다. 청평 천성 왕림 궁전에 교육받던 한국과 일본 합동 결혼식을 한 통일교 교인 920명은 문선명 사이비 교주에게 총 생축헌금 2100만원과 총 탕감비 1200만원을 문선명 사이비 교주에게 재산을 바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만일 재산을 바치지 않으면 교육 받을 자격도 없는 것입니다. 36가정~1800가정까지가 1차 교육생이고, 2차 교육생은 6000가정~6500가정까지 21일 교육을 받는 것입니다. 문선명 통일교 사이비 교주에게 합동결혼식을 받은 통일교 교인은 무조건 재산을 바쳐야 되고 사랑하는 남편과 자식들을 떠나 전국 통일교회에 배치되어 계속적으로 교육이 되어집니다. 이 교육을 받은 교인들은 합동결혼식을 했더라도 문선명이 통일교 교인들의 죄를 용서해 천국 보내준다는 면죄부로 가정당 1200만원씩을 바쳐야 합니다. 문선명 교주에게 재산 바치는 총 생축헌금 2100만원과 1200만원을 합하면 각 가정 당 3300만원을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7천 가정만 계산하여도 2천 1백억의 거액을 착취하는 것입니다. 21일 청평 천성 왕림 궁전 황족 입적 세뇌 교육에 참석하면 앞의 사회자와 몇 사람이 북을 치고 각종 악기로 흥을 돋우며 1000명~5000명의 사람들에게 일시에 "악령을 물리치자. 악한 귀신을 성별하자" 고 외치며 머리를 계속 치고 가슴을 두 손으로 계속 치게 합니다. 집회 분위기는 온통 세뇌 분위기이고 회개 분위기입니다. 진짜 나의 악령이 떠나가고 지옥간 조상들이 구원받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세뇌 교육을 철저하게 시키고 있습니다. 과천교회에도 21일 교육을 받은 통일교 합동결혼식을 한 부인 6명이 왔습니다. 미혼남녀 합동결혼식 대상자를 전도하기 위하여 가정을 버리고 와있는 것입니다. 불쌍한 교인들입니다. 문선명 사이비 교주의 야망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통일교 교인들은 탕감복귀와 가인 아벨과 희생의 제물이라는 이름으로 이용당하며 희생되고 있는 것입니다. 문선명은 2004년 4월 30일까지 통일교 교회의 모든 기관 기업체 전 세계 통일교 교인들의 힘을 모아 한국 전도에 총력을 다하여 미혼 남녀 확보에 주력합니다. 그들에게 합동결혼식을 시켜 문선명 개인의 야망, 통일제국 건설에 이용물로 쓰려고 합니다 모든 통일교 교인이 통반격파와 주권복귀, 조국 광복, 통일제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총 출동하였습니다. 2000년 8월 25일 1차 21일 세뇌교육을 받은 통일교 합동결혼식을 한 920명의 부인들이 서울과 수도권 통일 교회에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전도 활동에 들어갔습니다. 앞으로 한국과 일본의 부인 2만 명이 한국 통일교회에 집중 배치되어 미혼남녀 합동결혼식에 통일교회 운명을 걸게 되었습니다.
제 3 절 문선명 한학자 교주의 세계 황제 황후 즉위식
그 소식을 듣고 그 당시에는 세뇌되어 있는 상태여서 세계 황제 황후 즉위식을 거행하는 것을 거룩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곳엔 통일교회 최고위 간부들만 참석하였습니다. 부인들은 몇 달 동안을 황제 황후 즉위식을 위하여 이씨 조선의 화려한 황제 비단의복을 몇 달 동안을 준비하였습니다. 황제 왕관도 순금과 비취왕관을 준비하여 머리에 썼습니다. 문선명은 세계 황제 황후 즉위식에 몇 억을 사용하여 통일교 교인들의 피살 같은 눈물의 헌금을 낭비하였습니다. 문선명이 사이비 교주가 아니고서는 자기 과시, 욕망으로 허황된 황제 즉위식을 했겠습니까? 문선명과 12명 자녀, 사위, 며느리, 손자, 손녀는 최고급으로 화려한 왕자와공주의 옷을 입었습니다. 문선명 교주는 이 세상에서 역사 이래에 없는 세계 황제 황후 즉위식을 올렸던 것입니다. 문선명 교주가 황제 즉위식에서 어떤 통일교 고위층 간부도 카메라로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문선명 교주는 자기 스스로 가짜 참부모요,가짜 재림주요, 가짜 천지부모라는 것을 세계 황제 즉위식을 통해서 알린 것입니다. '저는가짜요' 하고 만천하에 공표 한 것입니다. 비참하고 처절하게 가난한 통일교 교인들은 이 황제 즉위식 돈을 마련하기 위하여 꽃팔이, 생선장사, 파출부일, 막노동일 등을 하여 헌금을 했습니다. 문선명이 참 부모라면 자식이 헐벗고 굶주리며 피골이 상접하여 죽어가는데도 그런 돈을 썼겠습니까? 통일교인들은 참 부모라고 하는 문선명을 위하여 헌금을 하며 죽어가는 것입니다. 어찌 참 부모라면 향락, 방탕, 호화사치, 허영심의 극치를 통일교 교인들 앞에서 보일 수 있단 말입니까? 문선명은 통일교 교세가 강력해지면 대통령을 하려고 1990년에 통일 가정당을 창당하였던 것입니다. 문선명 교주는 앞으로 한국에서 여자대통령이 나와야 된다고 외칩니다. 문선명 교주의 부인 한학자를 대통령으로 세우기 위한 목적으로 통일 가정당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문선명 교주는 통일 가정당 주최로 전국 대 도시에 남북 통일운동 국민연합 이름으로 국내의 정치 지도자들과 시군구 의원 유지들을 초청하여 통일 가정당 대회를 열었으며 2000년 2월 15일 이후에 전국에서 대대적인 통일 가정당 주최로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문선명 교주는 사활을 걸어놓고 2004년 4월 30일 까지 이 민족을 통일교 제국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나 한국 통일교회 전체 교인은 33,000명 정도 뿐이고 예배 인원은 어린 학생 포함하여 17,000여명입니다. 전국 통일교 시 ·군 단위 교역 본부는 246여 곳이고 면 동 단위 교회는 170여 곳입니다. 대학생들 학사 교회는 01곳 뿐입니다. 선문대는 통일교가 세운 대학교입니다, 선문대학교 신학과에서는 통일교 목사를 양성합니다. 그러나 1998년도 졸업생 73명중 11명만 목회를 지원하고 62명은 통일교 목사 생활을 하지 않고 포기하였습니다. 통일교 선배 목사들의 비참함과 미래에 대한 소망이 없는 통일교 목회를 보고 포기 한 것입니다. 통일교 목사들을 양성하는 기관인 선문대학교 신학과는 이미 사명 있는 목사들을 양성하지 못하는 기관이 되고 말았습니다.
제 27 장 문선명 통일교 척결을 위한 주장
제 1 절 통일교는 사이비 교주의 온상입니다.
사이비 이들로 인해 수 십만명의 영혼을 빼앗고 살육하는 일이 세계도처에서 벌어지고 있고 사이비교주 때문에 엄청난 피해와 파탄, 파멸이 세계 각 나라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사건 중에 남미 가이아나의 조지타운이라는 도시에서 사이비 인민사원의 교주 짐 존스와 같이 923명이 집단자살을 한 것은 1978년 11월 21일전 세계 언론을 경악하게 했던 사건이었습니다. 일본 독극물 사건의 옴 진리교도 파멸하였습니다. 국내에만 하더라도 1925년에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며 재림주 황제라고 칭하고 황제 즉위식까지 올렸던 차경석, 차전자가 70만 명의 자기 교인들의 영혼을 빼앗고 우상숭배 재산 착취로 가정을 파탄시켰습니다. 1930년도에는 백백교의 교주 전용해가 교인들을 천국에 보내준다고 해놓고 천국이 아닌 지옥에서 살게 했으며 마지막에는 자기 교인들을 타살시켜 땅속에 수 십구 수 백구씩 파 묻어 버렸습니다. 1960년도에 대전에서 휴거론을 주장했던 박용주는 교인들과 같이 천국에 가는 것으로 알고 하얀 한복을 갈아입고 교회에서 7일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 올라가지 않자 에덴 수도원의 박 교주가 자살 함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60년대 사이비 교단을 창설하여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용화교 교주 서백일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수도원의 김백문 교주의 제자였던 전도관, 박태선 장로는 수십만 영혼을 60년대 부터 빼앗아 사단 마귀의 역사를 지금까지도 행하고 있습니다. 대전에서 일어났던 1987년 오대양교도 마지막 파멸 장소로 경기도 용인 남사면을 택하여 교인 32명의 동반타살과 자살로 막을 내렸습니다. 이 땅에는 사이비 교주들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살인과 강간, 우상숭배, 가정파탄, 재산 착취를 가져왔는지 모릅니다. 동방교, 전도관, JMS의 정명석 교주는 문선명 통일교 교인 이였다가 문선명 사이비 교주 문선명 사이비 교주 한 명의 출생으로 지금 통일교를 탈퇴한 통일교 출신의 사이비교주가 30명이 넘습니다. 이들로 인해 수십만 명의 영혼을 빼앗고 살육하는 일이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고 사이비 교주 때문에 엄청난 피해와 파탄, 파멸이 세계 각 나라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사건 중에 남미 가이아나의 조지타운이라는 도시에서 사이비 인민사원의 교주 짐 존스와 같이 923명이 집단 자살을 한 것은 1978년 11월 21일전 세계 언론을 경악하게 했던 사건이었습니다. 일본 독극물 사건의 옴 진리교도 파멸 하였습니다. 국내에만 하더라도 1925년에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며 재림주 황제라고 칭하고 황제 즉위식까지 올렸던 차경석, 차전자가 70만 명의 자기 교인들의 영혼을 빼앗고 우상숭배 재산착취로 가정을 파탄시켰습니다. 1930년도에는 백백교의 교주 전용해가 교인들을 천국에 보내준다고 해놓고 천국이 아닌 지옥에서 살게 했으며 마지막에는 자기 교인들을 타살 시켜 땅속에 수 십구 수 백구씩 파묻어 버렸습니다. 1960년도에 대전에서 휴거론을 주장했던 박용주는 교인들과 같이 천국에 가는 것으로 알고 하얀 한복을 갈아입고 교회에서 7일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 올라가지 않자 에덴 수도원의 박 교주가 자살함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60년대 사이비 교단을 창설하여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용화교 교주 서백일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수도원의 김백문 교주의 제자였던 전도관, 박태선 장로는 수십만 영혼을 60년대부터 빼앗아 사단 마귀의 역사를 지금까지도 행하고 있습니다. 대전에서 일어났던 1987년 오대양교도 마지막 파멸장소로 경기도용인 남사면을 택하여 교인 32명의 동반타살과 자살로 막을 내렸습니다. 이 땅에는 사이비 교주들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살인과 강간, 우상숭배, 가정파탄, 재산 착취를 가져왔는지 모릅니다. 동방교, 전도관, JMS의 정명석 교주는 문선명 통일교 교인 이였다가 문선명 사이비 교주에게 재림주의 사기성을 배워 가지고 나가 사이비 교단을 창단 하였습니다. 통일교 출신 재림주만 하더라도 혜아릴 수 없이 너무 많아 재림주 사태가 날 정도입니다. 이 땅은 사이비 종교 교주의 천국이요, 재림주 천국입니다. 1960~2000년도까지 30년 동안 종교의 자유 국가인 한국에서 수많은 영혼을 빼앗고 살육하는 사이비 교주들이 우후죽순 같이 생겨났습니다. 기독교 성직자와 성도들은 불쌍한 영혼 수 십, 수 백만명이 사이비 교주의 노예가 되어 지옥으로 끌려 가는데 그 고통의 절박한 소리를 듣고 예수이름으로 구원해 주어야 합니다. 한국의 기독교는 미국,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중동 등 세계 각 나라에 선교사들을 파송하여 영혼을 구하는 사명을 다하고 있습니다. 한국 땅에서 사이비 종교가 제 세상을 만난 듯이 선량한 국민들의 영혼과 재산을 빼앗고 가정을 파탄 시켜도 기독교회는 사이비 종교에 대한 대책이 미미하고 자신의 교회를 부흥 시키는데만 정성을 쏟고 있습니다. 이단 사이비교주 밑에는 이단 사이비 교주 양성소입니다. 사이비 재림주의 사기성을 배워 가지고 나가 사이비교단을 수도 없이 만들어 사기를 치고 있습니다. 통일교 출신 재림주만 하더라도 혜아릴 수 없이 너무 많아 재림주 사태가 날 정도입니다. 이 땅은 사이비 종교 교주의 천국이요, 재림주 천국입니다.
제 2 절 문선명의 앞잡이 노룻을 하는 기독교 교인을 추방해야합니다.
일찍이 문선명 통일 교주는 기독교 목사, 교인들을 포섭하기 위해 1966년11월 7일 초교파 기독교 협의회를 조직하여 이재석 (36가정, 통일교 최초 합동결혼식자)을 회장으로 세워 기독교를 가장한 포교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만찬, 세미나, 호텔 경비, 해외 왕복 비행기 요금, 이스라엘 성지 순례 등 일체의 경비를 문선명 사이비 교주가 무료로 지원해 주었습니다. 기독교 목사 가운데 통일교 초교파 회원에게는 매월 생활비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통일교 협회 예산의 몇 배를 기독교인 포섭에 투자했다고 합니다. 초대의장에는 방부신 목사, 본부장에는 박창번 목사, 상임 이사에는 이재석씨,이사에는 박철수 목사, 총무에는 김융관 목사 등 5명이 초교파 운동 본부를 결성했습니다. 조직이 활성화되지 못하다가 1975년 12월 8일 서울 문화 회관에서 33명의 기독교 각 교파 인사들이 모여 초교파를 재 결성했습니다. 회장에 강흥수목사, 부회장에는 기독교 장로회 증경 총 회장을 포섭하는데 성공한 송흥국, 양풍원 목사, 총무에는 박철수 목사, 장영석, 유영근, 박무신, 박영주목사를 이사로 세우고 통일교 측에서는 이재석을 이사로 세웠습니다. 초교파 기독교 협의회 회원으로 한국 기독교 목사, 장로, 집사, 청년, 평신도를 가입시켰습니다. 모든 경제 지원은 통일교 측에서 담당하고 각 교단 별로 조직을 다시 결성했고, 각 직책 별로 기독교 목사 평신도를 대상으로 전도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조직으로는 성노회로 각 기독교 교단 성목회를 기독교 교단별로 조직하고 성장회로 기독교 각 교단별로 원리수련, 수양회, 해외여행, 호텔 세미나를 실시하여 세뇌교육을 시켰습니다. 성청회로 기독교 각 교단 청년회를 통일교 원리수련을 통해 포교 활동을 했고 성녀회로 기독교 교단별로 온갖 경제적인 지원을 통하여 포섭 활동을 했습니다. 초교파를 통하여 기독교 목사 가운데 통일교 원리수련을 받고 세뇌 교육된 장로교 목사를 문선명 통일교 협회에서 용산교회 목사(나인수)로 발령한 일도 있습니다. 여러 곳에서 기독교 목사가 통일교 목사로 재직한 일이 있습니다. 통일교 문선명 교주는 포교 활동을 목적으로 정치인, 경제인, 종교인, 대학교수, 예술인, 언론인,각계 각층의 유명 인사들을 온갖 세미나,만찬,해외여행, 선물 등으로 유혹하며 통일교 세력으로 끌어들여서 활용하고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문선명 통일교 교주를 만찬 세미나에 초청하는 것은 영혼을 죽음으로 인도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테복음 16:26)에 판 천하를 얻고도 네 목숨을 잃어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고 말씀을 했듯이, 문선명 통일교 사이비 교주에게 영혼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통일교 각종 행사장에 발을 끊으십시오. 그것만이 기독교 성직자와 성도들이 문선명 교주로부터 탈출하는 길이고 영혼의 죽음과 지옥 길을 피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1988년 5월 1일 제 34회 협회 창립 기념일에 전국의 통일교 목사들이 서울 본부 교회에서 문선명에게 경배와 예배를 드리고 목회자 총회를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문선명 통일 교주는 전국 통일교 목사들이 자기 고향에 가서 목회를 하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전국 통일교 목사들에게 또 다시 불안과 공포심을 심어 주었습니다. 목사들도 아내와 자녀들이 있으며 생활기반이 있는 것인데 문선명은 목사들 목숨을 하루살이 파리 목숨처럼 여겨 고향에 가라는 소리를 했습니다. 그 소리는 지옥으로 가라는 소리와 같습니다. 통일교 목사들은 매일 불안과 공포 속에서 목회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들이 무슨 재미로 목회를 하겠습니까? 문선명 사이비 교주는 미국 알래스카나 남미 바닷가에서 일생 동안 낚시질을 하며 고기를 잡았습니다. 문선명 교주는 고기를 잡으면서 '통일교 교인들을 어떻게 요리할까?', '어떻게 재산을 착취할까?' 그 연구만 하고 있습니다. 간간이 한국과 세계를 순회하면서 통일교 교인들에게 불안과 공포심을 유발하는 무자비하고 살인적인 인사이동을 시킵니다. 문선명 사이비 교주는 통일교 목사들과 기업체 간부들을 손바닥 뒤집 듯 이동 시켜 생업을 빼앗고 가정 파탄을 일으킵니다. 통일교 합동결혼식은 곧 죽음인 것입니다. 1988년 6월 1일, 전국 통일교 목사들 총회를 본부교회에서 했습니다. 문선명 통일교 교주는 "통일교 모든 남편들은 고향으로 가라. 아내는 무조건 친정 고향으로 가라" 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1988년 6월 6일, 문선명 통일교 교주는 한남동 저택에서 통일 그룹 기 업체 과장급 이상과 서울 시내 1교구, 4교구, 목사 전체를 모아놓고 사표를 내라고 했습니다. 서울 목회자들은 서울도 중요하니 목회활동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 대신교인 많은 교회는 다른 교회에 20명씩 나누어주라고 했습니다. 6월 1일 에는 목사 그만두고 고향에 가라고 명령했다가 6월 6일에는 서울 목사 하라고 6일만에 말을 바꾸어서 뒤집어 버린 것입니다. 콩 볶듯이 강제 인사 이동을 또 당했던 것입니다. 문선명 사이비 교주는 통일제국의 제왕이며 공산주의에도 없는 잔인한 인사 정책으로 목을 붙였다 떼었다 온갖 횡포를 자행하고 있습니다.
제 3 절 통일교 행사장에 참석하는 전 현직 국회의원을 낙선 시켜야합니다. 문선명은 통일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수많은 정치인들을 각종 세미나, 만찬 장에 초청하여 원리 교육을 시키고 국회의원 선거 당락에 온갖 직악을 저질렸습니다. 180명의 여야 정치인들을 포섭하여 부하로 삼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문선명 재림주 교주의 말씀집', '조국 광복' 이라는 책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1990년 4월 자신이 메시아요, 재림주 참부모라고 선포 했습니다. 정치인 중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으면서 문선명 사이비 교주의 하수인이 되어 끌려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200만 기독교 교인은 목숨을 걸고 사이비 정치인을 색출해야 합니다. 문선명 통일교 교주의 각종 행사장과 만찬장에 참석하는 정치인을 철저히 낙선시키는 범 기독교적인 운동을 전개해야 합니다. 문선명 통일교 사이비 교주의 각종 만찬행사 세미나에 참석하는 전 현직국회의원,도지사,시장,군수, 시 ·군 구 의원들을 그냥 방치해서는 안됩니다. 1천2백만 기독교 목사, 교인들은 하나님의 대적인 문선명 통일교 교주를 돕는데 선봉장이 되는 사이비 정치인을 용납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문선명은 정권야욕이 있어서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정치인들을 포섭하기 위해 물질적 지원, 인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온갖 만찬행사에 정치인들을 초대하여 통일교 세력을 과시했습니다. 문선명은 2001년 7월 13일, 국회회관 대강당에서 현직 국회의원 27명과전직 국회의원, 시군구 의원, 통일교 교인 등 600명을 참석시켜 통일교 원리강론을 설파하고 통일교 선전장을 만들었습니다. 1200만 기독교인이 있고 또 국회의원 273명 중 112명이 기독교 장로, 집사인데 통일교의 국회강연을 속수무책으로 방관하였습니다. 저는 한국 기독교 총 연합회 이만신 회장님과 문선명 통일교 대책연구소 박준철의 이름으로 모든 일간지와 방송, 기독교 언론을 총 동원하여 통일교 집회에 참석하여 축사와 격려사를 하는 국회의원, 정치 지도자들은 1200만 기독교 성직자와 성도들과 합심하여 낙선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하였습니다. 2001년 10월 29일부터 11월 8일까지 전국 8대 도시에서 문선명 교주는'천주 평화 통일국' 이라는 이름으로 문선명 제국을 세우자는 정치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행사를 하였는데 7월달 행사 때 보다도 정치 지도자들이 극소수로 참석하였습니다. 그것은 1200만 기독교 교인들의 표를 의식하여 정치 지도자들이 문선명 교주의 집회에 참석하지 않은 결과로 믿습니다. 2001년 11월 8일, 신라호텔 문선명 집회에 현직 국회의원 몇 명과 전직국회의원 극소수가 참석하여 문선명 강연장이 아닌 별실에서 강연을 듣고 몰래 빠져나가는 정치 지도자들의 실상을 알리고자 합니다. 그것은 정치지도자들이 언론에 보도되는 것이 두려워 얼굴을 강연장에 내 놓지 않았던 것입니다. 앞으로 문선명 통일교 대책연구소 박준철 소장은 한기층과 1200만기독교 성직자와 성도들과 합심하여 문선명 교주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정치지도자들을 반드시 심판을 받게하여 낙선시킬 생각입니다. 저는 2001년 10월 29일부터 11월 8일까지 문선명 집회에 참석하여 격려사, 축사하는 정치 지도자들을 낙선시키자고 기독교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 하였습니 다. 정치인들은 통일교 집회장에 참석한 노인들이 자신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노인들은 통일교 교인이 아니며 문선명 교주의 이용물입니다. 노인들은 행사에 참석하면 식사를 제공하고 선물을 주기 때문에 행사에 참석하는 것입니다. 전국의 노인들은 투표장에서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정치인으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를 볼때 사이비 정치인들은 착각하지 마십시오. 문선명 통일교 교주는 정치인들이 만찬이나 집회에 한번 참석하면 각종 통일교 PR선전 책에 인쇄를 하여 전도용으로 활용하고 자랑했습니다. 문선명 사이비 교주는 김대중 대통령이 순수한 마음으로 80세 생일에 축전을 보내준 것도 책에 인쇄하여 전국 방방곡곡 시 ·군 ·구 ·면 남북 통일운동국민연합 대회와 훈독회 행사에서 수만 명에게 배포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마치 통일교 교인이 된 것처럼 문선명 사이비 교주와 통일교 목사들, 교인들이 자랑하고 있습니다. 현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통일교회를 지원하는 것으로 착각을 일으키게 하고 있으며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을 미혹하여 통일교 교인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문선명 사이비 교주는 정치인들에게 10원을 투자했으면 1000원을 뽑는 식입니다. 2000년 1월부터 문선명 사이비 교주의 각종 행사장에 참석한 순수한 정치인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문선명 교주는 그 정치인들을 자신의 노예로 착각합니다. 계속해서 정치인들을 참석시켜 원리교육과 훈독회를 하여 세뇌교육을 시키고 통일교 교인으로 만드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문선명 통일교 사이비 교주 집회에 각종 만찬이나 세미나 행사장에 참석하는 한국 정치인들을 1천2백만 기독교 교인은 백 번이라도 그런 정치인을 낙선시키는 운동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1987년 8월에 전직 국회의원 39명을 강원도 설악산 오색 약수 옆 호텔에 모아놓고 문선명 통일교 재림주에 대한 믿음을 가지라는 원리 교육을 시켰습니다. 1988년에는 국회의원 선거를 맞이하여 대대적인 경제적 지원, 맥콜 200박스 씩 지원, 통일교 교인과 승공 연합 조직을 총 동원하여 전국 국회의원후보를 지원했습니다. 통일교는 당선 가능성 있는 국회의원 후보들에게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었습니다. 또 전국 통일교회에 각종 행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을 약속하는 서약서를 받았습니다. 그 이후에도 정치인 포섭은 계속 되었고 2000년 4월 13일 국회의원 선거에도 후보들이 통일교 통일당 입당원서를 내고 인적인 지원을 받았습니다. 입당원서를 내지 않은 사람이라도 통일교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사람은 통일교 측에서 인적 지원을 전폭적으로 해 주었습니다. 저는 문선명 통일교 사이비 교주에게 표를 얻고자 하는 사이비 정치인들을 다시는 이 땅의 선량한 국민들을 대변하는 정치인으로 세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국정에 임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은 문선명 통일교 사이비 교주의 꼭두각시 들러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문선명 통일교 사이비 교주의 지지 세력 내지 추종세력으로서 통일교 각종 행사에 이용당하는 사이비 정치인들을 앞으로 철저하게 공개하여 1천2백만 기독교 교인의 이름으로 뿌리를 뽑고 낙선시컥야 합니다.
제 4 절 기독교회에 부탁의 말씀
사이비 교주의 미혹에 빠져 영혼과 몸을 빼앗기고 재산을 빼앗겨 처절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이비 종교에 빠진 교인들이 회개하고 기독교로 개종하고자 하여도 기독교 교회로 가기가 힘듭니다. 그들을 교육하고 안정시켜 줄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현재 전국 시군구 통일교회에서는 통일교 교인들이 참 가정운동 실천 본부 미혼남녀 결혼 상담사 라는 이름으로 전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이들은 미혼남녀들을 미혹하여 합동결혼식을 시컥 통일원리로 세뇌교육을 시키고 문선명 교주가 참부모 재림주라고 믿게 만들어 버립니다. 전국교회는 참 가정운동실천 본부와 같은 음성적인 통일교 활동에 미혹되어 불행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막아 주어야 합니다. 기독교회가 좀 더 사이비 종교에 대한 철저한 대비책을 세웠더라면 한국은 사이비 종교 천국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이비 교주는 이 땅에서 판을 치고 수많은 영혼을 살인하고 노예로 삼아 지옥으로 끌고 가는 현실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과 성령 하나님을 믿으신다면 사이비 종교궤멸을 위하여 기독교교회 1년 예산의 100분의 1이라도 쓰지 않겠습니까?기독교회는 사이비 종교 퇴치를 위해서 이제 일어나야 합니다. 1천 2백만 기독교 성직자와 성도들이 연합하여 하나님의 원수인 사이비 교주와 종교를 박멸해야겠습니다. 십계명의 첫째 계명부터 열 번째 계명까지 모두 어기는 사이비 교주와 종교를 자기 교단 일이 아니라고 방치하고 있지 않으십니까?기독교회는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 예수를 모시며 성경을 바르게 가르쳐야 될 사명과 의무가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는 한국과 일본에서 합동결혼식을 한 통일교 교인 3만명이 집중 배치되었습니다. 그들은 시군구 통일교회에 배치되어 통일교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조국 광복에 목숨을 바치고 있습니다. 문선명 사이비 교주를 뿌리뽑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부모, 형제,이웃이 통일교회의 미혹에 빠져 문선명 사이비 교주의 통일원리에 세뇌되고 교육된다면 생명을 구할 길이 없습니다. 기독교 성직자와 성도들은 자기 교단을 부흥시키고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급하게 해결해야 될 문제는 선량한 국민들의 영혼을 사이비 교주로부터 빼앗기지 않게 지켜 주셔야겠습니다. 기독교회 성직자와 교인들은 수많은 거룩한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이비 종교를 파멸시키는 데는 투자를 적게 하고 있습니다. 사이비 종교를 박멸하는 데 근 힘이 될 언론을 많이 이용해주십시오. 앞으로 기독교회에서는 정치인과 지역 유지 시군구 의원들이 통일교 행사에 참석하여 문선명 교주를 참부모 재림주라고 증거하는 행위를 용납하면 안됩니다. 범 기독교적인 차원에서 문선명 통일교회를 극찬하는 정치인은 철저하게 가려내어 강력하게 낙선운동을 실시해야 합니다. 그들은 사이비 정치인이요, 하나님의 역적이요, 거기에 모인 수많은 사람을 미혹하는 행위를 하여 통일교회 발전을 위한 공로자가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1천 2백만 기독교 교인은 사법부, 언론, 기독교가 연합하여 문선명 통일교 사이비 교주에게 절대로 위장된 거짓 행사 장소를 대여해 주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대대적인 사이비 교주와 교회 척결 운동에 앞장서 주십시오. 문선명 집단의 산 증인인 박준철을 기독교 교회와 신학교, 기도원에 초청하여 간증집회를 1번씩은 꼭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저를 간증에 초청해주시면 기독교 목사님과 성도들이 이단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통일교 집단을 척결하여 희생자를 줄이고 전도하는데 크나큰 도움이 될 줄 믿습니다. 한국교회 1200만의 목사님과 성도들이 섬기는 교회와 가정과 직장, 사업장에 하나님의 영원하신 은혜와 축복이 넘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저자 박준철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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