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글 출처 : http://cafe.naver.com/jubo/2086 제5장 재림 메시아의 정체
원리와 실천의 모순 나의 수기는 진실의 기록 나는 흥남수용소에서 문선명을 알았고, 1년 6개월을 같이 생활 하였다. 6.25동란으로 출옥한 그와 두달간에 걸쳐서 남쪽으로 피딘하여 평양에서 서울 부산까지 왔다. 한동안 나는 경주에 있었고 문선명은 부산에 있었다. 그와 채차 합류하고서도 이 세상의 창조의 역사와 타락의 원인, 그리고 이 세상을 복귀시켜 하나님이 구원한 깨끗한 세상의 창조 목적대로 되돌리는 원리를 듣게 되었다. 원리의 주인공인 재림 메시아 참부모의 이름 아래 통일교회는 이제야 세계 백수십개 국가에 퍼져 있다. 진정한 어머니인 해와가 된다고 하는 것으로 한 사람을 선택하여 "어린양의 잔치(정식결혼)"를 행하고 열한사람의 아이들을 낳게 하였다. 그리고 그 첫번째 아들을 아버지 문선명의 후계자로 하고자 하는 세습체제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 다만 현상적으로 나타난 것 만을 쓴, 겉치례 만의 내용 이었다. 그러한 책에 책에 씌어있는 내용에 대해서는 나도 비판하고 싶지 않다. 다만 내가 이 책에서 써 온 것은, 문선명과 같이 있으면서 직접 이야기를 듣고 행동해 온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 했다고 단언해 두고 싶다. 문선명이 흥남수용소에서 시간만 있으면 나에게 이야기한 "원리"는 부산 수정교회에서 원고로 써 냈다. 152 이것이 '원리원본'이다 (이것은 종이에 연필로 쓴 것인데, 이것을 대구에 와있던 정선옥이 보관하고 있었고, 내가 서진광산에 있을때 박애자가 가져다 주었다. 그때 내가 공책에 베껴쓴 것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 이 원리원본을 기초로해서, 두뇌가 뛰어난 유효원이 '원리해설'(原理解說)을 썼다.
우리 한국이나 한반도에는 단군을 비롯한 건국의 신화가 있다. 일본에는 천조대신이 있고, 중국에는 덕왕형제 11인 등이 있다. 그런데 내가 따랐던 문선명은 한나라의 국조가 아니라, 세계의 재림 메시아라고 한다. 지금까지 출판된 많은 책 가운데는 문선명을 구세주라고 쓴 것도 있다. 문선명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세계를 통일 하려고 주장 하고 있으나 내가 믿어온 재림메시아는 점점 그 모양이 커감에 따라, 그 원리와 실천이 점점 상반 되어 가는듯한 느낌이 드는것을 어찌하라. 2천년전 십자가 위에서 죽어 간 예수와는 너무나도 차이가 있다. 문선명은 제3의 아담 참부모로서, 통일교회 교인은 물론 온 세계 사람들로 부터 추앙받아 백수십개 나라에 넓혀져 있다. 그러나 식구라고 불리는 통일교회의 신자가 되더라도, 사단의 세상에서 생활하고 있을 때와 생활에 변화된것은 전혀 없다. 오히려 나빠지던가 비명의 죽음을 맞은 사람도 있다. 나는 그점에 대하여 계속 의문을 가져왔다. 많이 있는 통일교회 관계의 출판물 가운데 실제로 내가 읽은것에는, 통일교회는 이러한 윤곽의 교회이며, 그 교주인 문선명은 원리라고 하는 교리에 나오는 재림메시아 이다 라고 하는정도의 표면적인 것밖에 씌어져 있지 않다. 따라서 문제는 문선명이 얼마만큼 재림메시아 로서의 역활을 다 하고 있는가. 구세주로서 이 세상을 구원하고 있는가 하고 하는 것으로 귀결 된다. 그런데 뻔뻔스러운 문선명은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고, 지금부터도 계속해서 희생 시키려고 하고 있음으로, 더 이상 잠잠코 보고 있을 수 만은 없다고 생각되어, 이책을 쓰기로 한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통일교회 교인들은, 지금도 백수십개 나라에서 문선명을 참아버지로 생각하고, 한학자를 참어머니라고 부르면서 이 세계가 통일될 것을 매일 같이 기원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나도 문선명이 진짜 재림메시아가 되어서 이 세상을 구원해 줄 것을 기다리고 있는 식구의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만약 문선명이 재림메시아가 아니고, 요한 묵시록 20장에 씌여 있는대로 라고 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154 또 문선명이 재림메시아 라고 한다면, 진짜 참 신부와 어린양의 잔치를 올려 참부모가 되여, 열 한사람의 아이들을 출산하고 있는데, 어째서 참 부모한테서 남은 아이들이 두명씩이나 교통사고로 죽어 갔는가. 또 다른 여자에게 출산시켜 입적한 세사람 가운데 한사람도 사고로 죽었다. "요한묵시록 21장 4절"에는 사람의 눈에서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주신다. 이미 죽음도 없고 슬픔도 없고 부르첫음도 아품도 없다. 먼저 것이 지나가 버렷기 때문이다라고 쓰여 있다. 문선명이 재림메시아 라면, 복귀 원리대로 어린양의 잔치를 행해서 이 세계의 모든것을 해방하는 날짜 까지 정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이 세상은 그대로인 것인가. 원죄의 근원을 모두 없애고 복귀의 의식을 거쳐 참부모가 되었을 터인데 어째서 거기서 태어난 어린 자식들이 죽어 가는가. 또 그 자손들 가운데는 부끄러운 스캔들을 일으켜서 언짢은 소문까지 내는 자도 있다. 나는 문선명이 원죄를 통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 왔는가. 원리대로 실천하였는가? 등에 관해서 밝혀두고 싶다. 문선명의 장래는 하나님 만이 결정 할 수 있는 문제 이다. 나는 다만 문선명이 발표한 원리에 근거해서 그 원리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함께 살고 있었던 때의 사실에 대해서 써 보려고 생각한다.
여기서 다시 한번 문선명의 원리를 복습해 두자.
156 그의 그 원리와 실천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복귀를 설명하면 해와가 성숙하지 않았을 때에 천사장 루시엘이 섹스를 해서 해와의 정조를 빼앗았기 때문에 이 죄악을 깨꽃이 하기 위해서 복귀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복귀를 실현하는데 우선 하나님과 같이 더렵혀 지지 않은 사람이 나타나서 루시엘 에게서 정조를 빼앗긴 해와와 같은 여인과 루시엘이 해와와 섹스한것과 같이 이 두 사람이 섹스를 하는것이 펼요하게 된다. 그리고 루시엘은 해와 위에 올라타고 섹스를 하였으므로, 지금 이 사단의 세상에서도 똑같이 남자가 위로 타고 섹스를 하는 것이 보통으로 되어 있다. 하나님과 동격으로 복귀할 수 있는 사람은 말 할것도 없이 문선명 이라고 원리 에서는 단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문선명은 왜 죄 없는 하나님과 동격의 입장에서 복귀 시킬수가 있는가. 문선명이 이 사단의 제상에서 극히 평범한 가정에 태어난 것에서부터 생각하자면, 도저히 납득 할 수없는 일이다. 이것에 관해서는 어느 것 하나도 납득되는 부분이 없다. 한번 더 생각 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흥남 형무소에서 1년 6개월간을 문선명과 같이 지냈다. 이 수용소에서의 1년 6개월간은 외부생활의 16년 정도에 해당되는 기간이라고 서로 간에 이야기 하곤 했다. 그때, 그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문선명이 16세때 (1935년), 부활절 전날밤, 예수가 꿈속에 나타나 예수가 달성 하고자 하였던 일을 하지 못한채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으므로, 당신이 나 대신 그 사명을 완수해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문선명도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으나, 몇번이나 부탁을 하였으므로 받아 들였다는 것이다. 이 예수에게서 부탁 받았다고 하는 것은 후에, '원리'에서 말하는 '복귀'의 실천이며, 섹스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이 실제로 있었는지의 여부는 본인 밖에 알지 못하는 이야기 이므로 모르겠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예수의 꿈을 봤다고 하는 사람은 많이 있을 터이고, 꿈속의 말씀에 의한 예수의 이야기 한 것이, 이렇게 엉뚱한 섹스 복귀의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인지 아무래도 이해 할 수 없다.
1955년(소화30년) 7월 4일, 문선명 등이 체포되어 중부경찰서의 유치장에 수감 되었을때 평양시절의 정득은 이 찾아와서 나에게 그녀의 집까지 와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註 : 나도 마침 그당시 문선명의 평양시절에 관한 이야기가 듣고 싶어서 김종화를 찾던 중이어서 정득은이 살고 있는 집 까지 가기로 하였다. 50세가 되는 정득은은 원효로 3가에 조그만 집을 빌려서 살고 있었다. 여기서 1주일을 함께 지냈다. 그리고 문선명이 서울에서 평양에 도착한 후의 정득은 과의 신비(?)에 싸인 생활을 듣게 되었다. 158 정득은 은 북녁의 평안북도에서 한때 번성하였던 이웅도 목사, 황국주와는 전혀 관계가 없고, 복중교 와도 관계는 없었다. 다만 기독교를 믿고 있었는데, 1946년 6월 6일 하늘에서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평양으로 향하고 있으니, 나가서 그 사람을 맞아 들이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 했다는 것이다. 정득은 은 부랴 부랴 남쪽으로 찾아 갔더니, 사동이라고 하는 곳에서 남루한 옷을 입고 릭구삭 하나를 멘 청년이 이쪽을 향해서 왔다. 그것이 문선명(당시는 문용명)이었다. 정득은은 그의 앞으로 나아가 인사를 한 후에 자기의 집으로 안내하였다. 정득은의 자택은 만수대 밑에 있었다. 문선명을 안내하여 온 정득은은 자기가 계시를 받았다는것. 선생이 오는것을 알고 마중하러 갔던 것을 설명하였다. 뿐만 아니라, 정득은은 자기가 여호와에게서 성모로서 인정 받았으므로 문선명과 섹스를 하면 문선명은 신과 동격의 입장이 되어 타락한 부부의 입장에 있는 여인들을 복귀 시킬수가 있게 된다고 이야기 하였다. 그리고 문선명이 밑으로 가고, 정득은 은 그 위에 올라타서 소생, 장성, 완성의 3회의 섹스를 하였다. 미 복귀의 실천공식과 방법은 흡사 문선명의 원리와 같다. 성모 마리아 대신에 성스러운 정득은 파 복귀를 한 것으로서, 문선명은 온전한 하나님 처럼 죄 없는 정득은 은 꿈속에서 여호와와 섹스를 하였으므로 자기는 성모라고 말한다. 너무나도 잘 꾸며진 이야기지만, 문선명의 한쪽 팔과 같은 입장에 있던 당시의 나는 오직놀랄 뿐이며 감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다시 한번 냉정하게 생각해 본다면 창조, 타락, 복귀의 원리도 완성되 있지 않았을 때에, 원리도 모르고 문선명과는 처음대면의 정득은 이 도저히 생각 할 수 없다. 앞뒤의 사정으로 보아 두 사람이 육체관계는 있었던 듯 하지만 아무래도 후에 억지로 끌어다 붙인 조작된 이야기라고 나는 지금 믿고 있다. 백보를 앙보해서, 만약 그것이 진실이었다면, 통일교회의 인쇄물은 어째서 이 (정득은의 대기적)에 관한 것을 한 줄을 쓰지 않았을까 ?
평양시 대의 이야기를 계속하자. 이 후, 문선명은 나최섭의 집으로 옮겼고 다음에는 경창리에 있는 정명선, 김종화 부부의 집으로 가서 거기서 예배를 올리게 되었다. 이미 섹스관계가 있었던 지승도 옥상현들과의 여러가지 갈등이 있어서 정득은 은 독립해서 다른 신자를 모아놓고 예배를 올리고 있었다. 또 여기서 여러가지 문제가 생겨난다.
160 요컨데, 신자이었던 여자들이 문선명과 섹스 함으로서, 문선명에게 복귀할 자격을 주었다고 하는 것이다.
거기서 문선명은 나와 함께 생활하고 있었던 것인데, 이것에 관해서, 통일교회의 출판물에는 이렇게 쓰고 있다. 아무런 죄도 없는 문선명이 복역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 여성을 역시 6마리아 논법으로 꾀어내서 육체와 금품을 뜯어 냈던 것이다.
색과 욕과 돈과 남편의 돈을 훔쳐 오라 1955년 7월 4일 문선명은 서울시 경찰에 구속 되었는데 재판에서 무죄로 선고되어 석방 되었다. 이것에 대해서도 통일교회는 죄없는 사람이 구속 되었으나, 그 후 사실이 밝혀져 석방되었다고 선전하고 있다. 당시 문선명과 아침부터 밤까지 함께 있었던 내가 그간의 사정이나 사실을 제일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문선명은 실제로 여러가지 많은 죄 를 범 하고 있었지만, 우리들의 기민한 대책으로 경찰의 조사에 정직하게 응하지 않았던 것과, 위증이나 거짓으로 뒷말을 맞추었기 때문에 결정적인 증거로 삼을 만한 것이 나오지 않았던 덕분에 무죄로 되어 석방 되었던 것이다. 사실로 말하면, 재림주로 믿었을 때 어떻게 허락없이 재림주의 연령을 내 마음대로 올릴수 있겠는가. 이건 생각도 못할 일이다. 재림주 문과 의논해서, 허락아래 연령을 올려서, 제 2국민병을 기피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태산 같지만 가령 이순철이라고 하는 유부녀를 자기는 재림 메시아 이니까 자기와 복귀 하면 당신도 6마리아 의 한 사람 예수의 마리아로 된다고 속여서 섹스를 했다. 훌릉한 간통죄 이다. 또, 이 세상을 사단이 주물르고 있으나, 이 세상의 모든 재산은 본래 하나님 것이므로, 사단이 쓰고 있는것, 남편의 돈이나 집에 있는 재산은 전부 훔쳐서라도 나에게 헌금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세상이 이상적인 세계로 되며 하나님은 수천배도 넘는 행운을 주실 것이다. 어느 때에는 문선명에게 강요되어 당시의 미국달러 1만 5천불이나 되는 돈을 집에서 끄집어내서, 그돈으로 두달동안 문선명을 마음껏 놀아나게 하였다. 절도의 훌륭한 공범이다. 이것이 어찌하여 죄가 안 될 것인가. 남펀이 경찰에 그런 이야기를 안하고, 간통죄로 고소하지 않았기 때문에 견디어 냈을 뿐이다. 다른 마리아의 남편들도 모두 그러했다. 또 처녀인 딸들에게, 문선명은 나의 처가 되면 세계의 진짜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라고 말해서 믿게 하고, 속임수 섹스를 했었다. 쾌락에 빠지고 결흔을 구실로 다음에서 다음으로 청순한 처녀들을 범한 문선명이 어째서 죄가 되지 않았을까? 식구들의 눈물어린 심정을 통일교회는 생각해야 할 것 이다 왜 죄없는 아이들이 죽는가 그리고 나는 문선명이 재림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것이라면 탈세라고 하는 죄명으로 미국의 형무소에 투옥 되었던 것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요한 묵시록 21장 3~4에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살며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 스스로 사람과 함께 계셔서 사람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신다. 이미 죽음도 없고 슬픔도 없고 부르짖음도 아픔도 없다. 먼저 것이 이미 지나가 버렷기 때문이다 라고 쓰어져 있는 바와 같이, 이러한 것을 실현시켜 주는 것이 재림 메시아 시다. 북한에서도 남한에서도 그했던 것 처럼, 미국에서의 사건도 6천년간 하나님의 희망이었던 복귀의 실천을 하고 있어서 사단 세상의 법률에 걸려서 투옥되는 것은 원리의 예정에 있다고 문선명은 말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원리대로, 처녀를 신부로 맞이하여 "어린양의 잔치"를 행해서 아이들을 태어나게 하였는데, 그 아이들 가운데는 교통사고로 또는다른 형태로 죽은자 들도 있고, 세상에 여러가지 좋지 못한 소문을 퍼트리고 있는 장본인도 있는 것은 무슨 이치일까? 문선명을 믿고 있는 사람들은 왜 그런지 당연한 사실을 왜곡해서 선전하며 전도하고 있다. 그 때문에 도리어 문선명의 장래는 점점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이라고생각한다. 나는 문선명이 원리의 실천이라고 말하면서 하고 있던 행위를 옆에서 직접 보아온 사람으로서, 그 사실을 명확하게 하여 . 문선명이 재림 메시아인가? 아니면 남달리 여색을 좋아하는 돈벌이 주의자인가 라고 하는 것을 밝혀둘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그 대신 제3의 아담으로서 재림 메시아의 임무를 다 해 주기 바란다 라고 말했다는것(통일교회의 신문에도 명기 되어 있다)의 두 가지를 들수 있다. 만약 그대로 문선명이 하나님의 실체로서 복귀의 임무를 실천 하였다면, 창조 당시의 에덴의 동산이 복귀되어, 통일교회의 교인들은 참 부모와 함께 눈물도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어야 할 것이다. 복귀(復歸)라고 하는 미명으로 섹스 우선 6마리 아 복귀문제에서 부터 생각해 보자. 사탄에 의해서 해와를 빼았긴 것 때문에, 하나님은 6천년 동안이나 노여움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하나넘은 해와를 도로 찾기 위해서 제2의 아담인 예수를 이 세상에 보냈으나, 예수의 생모인 마리아는 예수를 자기의 아들로 밖에 생각지 않고, 자기의 아들이 우선 어머니와 섹 그 때문에 예수는 십자가위에서 죽을 수 밖에 없었다고 원리는 설명하고 있다. 또 원리원본에는, 가롯 유다의 연인이었던 막달라 마리아를 예수가 빼앗아 복귀시킴으로서 하나님의 원한을 없애기로 되어 있었는데, 유다가 이에 복종하지 않고 은화 30냥을 받고 예수를 팔았기 때문에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죽게 된 것이다라고 설명 되어 있다. 예수가 복귀하려고한 6여인의 마리아를 복귀 시켰더라면 원리대로 실천되게 되는 것이라고, 나도 이해 하였었다. 그런데 6인의 마리아를 복귀시킨 후에도 문선명은 손에 닿는대로 몇십명이 넘는 여인을 복귀 시켰다. 166 한충화는 열열한 크리스챤으로서 미망인이 되어 사무엘 이라고 하는 벙어리 아이를 데리고 열심히 생활하고 있었는데,그 '원리'에 속아서 문선명에게 자기의 몸을 제공 하는것이 하나님의 뜻 이라고 믿고 기뻐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문선명이 또 다른 여자와 복귀하고 있는것을 알자, 그 길로 서울로 돌아와서 문선명과 결별하였을 뿐아니라, 그곳이 더럽혀 졋다고 자궁 수술까지 하였단다. 그때 까지의 자기의 경솔한 행동과 섹스에 미쳐있던 문선명에게 정조를 빼앗긴 것을 후회하면서 그 뒤 얼마 안되어 죽고 말았다. 이것이 누구 때문이며, 누구의 죄라고 말 할수 있을 것인가? 1955년 이화여자대학의 5인의 교수가 퇴직하도록 추궁하여 사표를 내고, 14인의 학생이 학교에서 를겨나게 되었다. 이일은 역시 문선명과 교수와 학생과의 복귀 사건에 얽혀 있던 일이다. 그리고 복귀를 한다고 하는 것만이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는 여성 식구들의 입을 통해서 전해지고 ,또 원리를 자세히 알지 못하는 여인들에게는 무작정 복귀를 받는 일에만 필사적인 것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의 통일교회에 대해, 외부에서는 통일교회에서는 벗고, 춤추며 한번 입교하면 마취에 걸려서 두번다시 올수 없도록 해 버린다 고 하는 소문이 널리 퍼져 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문선명의 원리의 이야기를 듣고, 타락원리와 복귀원리를 들음으로서, 각계 각층에서 와있던 사람들의 생활에 변화를 가져 왔다. 지금까지 아이들과 함께 평화로운 생활을 해온 부부와 처가 통일교회에 들어가고 나서는 옷을 벗는 것도, 남편과의 섹스도 거부하기 때문에 충돌이 일어났다. 이 사람들은 문선명에게 바치는 경제 문제만도 골머리를 앓았다 . 그래서 결국 이혼하게 되고, 문선명의 원리에 따라 가정생활이 파탄나게 된다. 경제적 기반이 없는 가정에서는, 더욱이 믿기만 하던 남편이 처에게 절망해서 아이들을 버리고 집을 나가고 말게 된다. 그 당시 통일교회의 섭외부장이었던 김인철은 이렇게 버려진 아이들을 고아원으로 보내는것이 큰일의 하나였다. 이와같이 파탄된 가정 은 내가 알고 있는 것만도 170가정 이나 된다. 그 당시 문션명으로부터 복귀를 받기는 하였으나, 문선명의 행위를 보고 체험하고서는 저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 오직 색에 미친 행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여인들은 남편에게는 모르는체 하고 가정으로 돌아갔다. 이 여인들의 심경은 지금쯤 어떠할 것인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여자 식구들은 그래도 모든 것을 바쳐서 봉사했다. 168 그때는 웃으면서, 그러믄요 하나님이니까 라고 대꾸해 두었으나, 재림메시아의 복귀의 의식인 만큼 엄숙한 것이라고 상상 하는것도 당연 하겠지, 그러나 실제는 다르다. 하나님 이었어야 할 문선명은 먹음직스러운 먹이를 앞에두고 입 맛을 다시는 개같이 되어굶주림에서 해갈이나 된듯이 섹스를 했을뿐이다. 오로지 성욕 불덩어리 같았다. 사실 문선명은 정력이 뛰어 나서 하루밤에 열번 한 일도 있다고 한다. 본처였던 최선길의 말이니까 이것은 틀림 없을 것이다. 복귀를 받을 때의 부인 식구들도 그렇다. 순수했던 여성들이니까 당연 하겠지만 멋대로 너브러져서 곧 기를 쓴다. 큰 소리를 지르며 실신한 사람도 있다. 내가 돌봐 주었으니까 이것도 틀림 없는 사실이다. 사단을 부정하고 있는 문선명의 복귀라지만, 결국은 사단 세상의 섹스와 무엇 하나도 다를것이 없다. 그러한 문선명의 정체를 재발리 눈치채고 가정으로 복귀한 부인네들은 정말로 현명하였다. 그녀들은 엄청난 피해를 미연에 방지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여자의 원한은 여름에도 서리를 그런데 문선명은 지금 자기가 재림메시아 진정한 아버지가 된 것이라고 말하면서 복귀한 식구들의 뒷바라지는 하나도 해 주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까지 희생이 되어온 사람들에게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문선명을 원망하면서 통일교회를 나서는 여성이 날마다 늘어 가고있는 상황이다. 문선명은 장래 어떠한 방법으로 무슨 원리를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해 갈 것인가 ? 미국의 목사들에게 원리의 비디오 테이프를 35만개나 만들어서 발송 하였는데 그것으로 이런 것이 방지되게 될 것인가? 미국의 목사들이 원리설명회란 명목으로 세계각국을 방문하여 몇억원이란 돈을 쓰면서 포교했다 하더라도 이러한 것을 방지 할수는 없을 것이다. 일본, 미국, 한국의 유명한 학자들에게 비싼 원고료를 주고 문선명을 재림 메시아 구세주로서 치켜 올리려고 하고 있지만, 한국의 속담에 여자의 원한은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註 - 이것은 음력이니까 5, 6월은 한 여름이다)고 하는것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청춘시절에 문선명에게 복귀되었던 여인들은 재산을 전부 털어 넣고, 남편한테는 이혼 당하고 자식들과도 헤어져서 지금은 폭삭 늙어 버렸다. 이 사람들은 거의 식모를 두고 살았을 만큼 넉넉한 가정의 부인들이었는데 재림주! 문선명을 맞아서 그에게 모든것을 바쳐 버리고 지금은 먹고 지내는 것도 옹색해서 자기(자신)가 식모노릇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사람이 몇 십명이나 된다. 또 원한을 품은채 일생을 보낸 사람들은 몇백명이나 될 것이다. 170 나는 이 여인들 한사람 한사람을 만나 보려고 생각 하였으나, 나의 경제적인 사정둥 여러가지 문제로 실현 하지 못해서 참으로 민망하게 생각한다. 처녀에게 낳게 한 아이들 원리 중에서 제일 중요시 되는 참어머니가 되는 처녀의 선택에 대해서는 이미 이야기 했 인간 사회의 원죄를 뿌리에서 부터 뽑아버린 후에, 또 죄없는 깨끗한 세상으로 되돌려 고통도 없고, 죽음도 없이, 영원히 참 부모를 모시고 살아 갈수 있는 세상이 창조 된다고 하는것이 원리의 내용이다. 그러나 이 참어머니인 처녀 한사람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또 알기 힘든 문제가 많이 있다. 문선명이 평양에 있을 무렵 정명선 씨의 처이며 아이들의 어머니인 김종화가 "어린양의흔인 잔치"의 상대로서 준비를 하고 있던 중에 문선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징역 5년의 선고를 받아 문선명이 흥남 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는 것은 몇차레나 썼다. 부산 영도의 신성묵의 자택에서는 김영회라고 하는 처녀를 복귀 시켰으나 그 후에도 관계를 계속해서 김 영희는 임신하였다.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 문선명은 오승택이란 학생에게 연애한 것처럼 연극을 꾸며 김영희와 함께 일본으로 밀항 시켰다. 김영희는 일본에서 문선명의 아들을 낳고 가난의 밑바닥에서 살게 되었다. 또 더욱이 이성례 라고 하는 처녀와도 복귀하여, 남자아이를 낳게 했다. 서울로 와서는 6마리아의 경우도 그러했지만, 문선명은 신부인 처녀를 선택한다고 하는 명목으로 이성화를 서울역 앞의 여관에서 복귀한 것이다. 이성화는 그 후 자기가 참 어머니 후보의 첫번째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성화를 선동한 그녀는 신부 참어머니로 선택되어 복귀한 증표로서 금반지를 만들어 이 가련한 처녀에게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문선명은 이 처녀들을 모두 버리고 홍순애의 딸 한학자와 "어린양의 잔치"를 올려, 한학자가 참 어머니가 된다고 말하며 결혼했다. 지금은 많은 통일교회 관계의 출판물 중에서 참 아버지로 되어있는 문선명과 참 어머니로 되어있는 한학자와 함께 살며 새로운 세계를 창조 한다는 목표를 걸고, 여러 단체와 많은 경제력을 동원해서 문선명을 옥중의 구세주라고 치켜 세워 문선명을 재림 메시아로서 돋보이게 하기위한 여러 가지 마련을 하고 있는 것이다. 173 배신한자는 누구냐 문선명의 소개장 다음에는 경제문제의 내정에 관해서 쓰고자 한다. 앞에서도 쓴 바와 같이 1953년 내가 서울로 올라 왔을 무렵은 대구에서 부산으로 가려고 해도 기차의 3등석 자리의 여비도 없어서 여자 식구들이 준 돈으로 겨우 왕복 할 수 있는 형편이었다. 그 후, 서울시 북학동에 집을 전세임대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를 창립하고 유효민의 제안으로 푸로마이드 사진을 제작 판매를 시작하였다. 이것이 성공하여 경제적으로 안정되게 되어서 교회를 흥인동으로 옳겼다. 식구들도 점점 늘어서 통일교회는 번창해가고 있었다. 그해(1955년)에 7.4 사건 (이화대학 퇴학퇴직사건)으로 문선명과 간부 다섯명이 구속되어 재판을 받았다. 문선명이 출옥한 후에 청파동 (현재 통일교회 본부가 있다)으로 일본식으로 지은 이층집을 사서 본부교회를 이전하였다. 그 후 나는 문선명한테서 수고 하였소 한동한 서진광산으로 가서 쉬십시오 라고 말하기에 그가 써주는 소개장을 가지고 서진광산으로 가게 되었다. 1956년 7월 나는 거기서 생각해 보지도 앉았던 광산의 책임자가 되어 몇 달간을 지내게 되었다. 이 서진광산은 통일교회의 간부였던 정석천이 기부해서 문선명의 소유가 되고, 그가 직접 경영하고 있던 광산이었다. 내가 광산에 가 있는 동안 유효민은 산탄 공기총을 발명해서 특허를 얻었다. 174 이 공기총을 제작 해 보니까 꽤 성능이 뛰어 났으므로 본격적으로 제작 · 판매하게 되어
그 당시 문선명의 친척으로서 통일교회에 들어온 사람은 문성균이 처음인데 문선명이 찝차를 구입한 때에 운전수로 들어왔다. 그 다음이 문용선 인데 정석천 장로가 경영하고 있던 아산의 토기 공장에 가서 일하고 있었다. 문선명의 친척은 이 두사람 이외에는 한사람도 없었다. 그 이전에 내가 문선명과 부지런히 일하고 있을 무렵에 문선명의 친척은 한사람도 없었고 이름조차 들어 본 일이 없었다. 그런데 현재 문선명의 친척들이 통일 교회의 경제를 좌우하는 상황이 되어 있어서 내부에서도 큰 불만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것은 원리에 반하는 것이다. 문선명은 그전부터 이세상의 모든 돈과 재산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남편의 돈을 훔쳐다가 나에게 헌금 하더라도 그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만약 가능하다면 은행에 있 그렇기 때문에 여성식구들은 양심의 가책 같은것은 조금도 느끼지 않고 남편의 지갑에서 돈을 몰래 가져다가 문선명에게 쏟아 부었다. 그 덕분으로 오늘날의 통일교회가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이렇게 식구들이 고생해서 경제적인 토대를 만들어 놓은곳에 문선명의 친척들이 뛰어 들어와서 경제를 주무르며 자유자제로 쓰면서 사치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 반면 최초의 단계에서 경제적인 토대를 만드느라고 고생한 사람들은 거의 탈퇴 하든가 쫓겨 나고 있다. 현재 그 당시의 사람으로 남아 있어서 경제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는것은 일성종합건설의 사장을 거쳐 작년(1992년)부터 일신석재로 옮겨 간 이수경 사장과 일화식품의 김원필 사장 뿐이다. 이수경은 당시 아직 열여덟살 정도라 문선명의 뒷일은 아무것도 몰랐다. 또 북에서 우리들과 함께 남하 하였을 때는 22세 정도였던, 김원필은 문선명 이 죽으라고 말하면 언제라도 죽을 수 있는 충실한 심복이었다. 공기총 제작을 시작한 무렵의 일이었다. 어머니가 입교함으로 가정이 산산조각이 되어 고아원으로 보내져서 거기서 키워진 15~6세의 아이들이 수택리에 있던 통일산업(주) 예화공기총 제작소의 공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통일산업 당시의 사장은 김인철) 그 인원수는 350명 정도였으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고 그들에게 지불된 돈은 한달에 단 어느때 지금은 고인이 된 김희옥 집사의 17세된 아들이 고아원에서 도망해 나와서 어머니를 찾아 통일교회로 왔다. 그리고 이 모자가 서울에서 주택건설의 공사를 하고 있는 나를 찾아 176 아들은 통일산업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너무나 혹사해서 참을수가 없어서 도망쳐 온 것이었다. 이 사실을 내가 그 아들을 사원으로 쓰고 있을 때에 들은 이야기임으로 틀림없다.
1983년 문선명이 미국에서 귀국하여 서울을 비롯한 7개 도시를 돌며 강연을 한 일이 있다. 그때 문선명의 아들 문흥진이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그 이유로서 통일교회는 문선명선생이 숭공강연을 하고 있을때 사단이 문선명선생을 죽이 문선명과 그의처 한학자는 이 세상에 군림한 참아버지 어머니며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원리에서는 죄도 더러움도 없을 터인데 교통사고로 별안간 죽기도 하며 사단과 똑같이 행동하는 나쁜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또 일본인의 아스기요시는 옥중의 구세주 문선명이라고 하는 책명을 청년구세주 문효진이라고 바꿀 것인가? 나는 이런 이야기를 어느 사람에게서 들었다. 178 그때 모여있던 식구들은 문선명의 후계자인 그가 참회하기 전의 본래의 불량자로 되돌아간 것이 아닌가?하고 말했다고 한다. 북조선에서 김일성이 자기 아들인 김정일에게 정권을 넘기려고 한다는 것으로온 세계에서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거기에 곁들여 한국에도 통일교회의 문선명이 자기의 아들에게 재림메시아의 자격과 권한을 넘긴다고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우습기만 하다. 통일교회는 이제까지 막대한 자금으로 문선명을 재림메시아라고 선전해 왔다. 그 구체적인 예로서 일본인 나스기요시가 쓴 옥중의 구세주 구세주 나타나다등 많은 책이 출판되고 있다. 나스기요시가 돈을 받았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통일교회의 체질에서 보아 많은 돈을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한 원리 어디를 읽어도 문선명이 재림메시아 라고 한다면 그 아들에게 재림 메시아 를 계승 시킨다고 하는 원리는 없다. 이와같은 통일교회의 내용을 보고 있노라면, 그때 그때의 편의주의로 멋대로 이유를 붙여서 상식으로는 생각 할 수 없는것, 인간의 도리에 맞지 않는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중히 하여야 할 원리에 맞지 않는것도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우니까 무섭다.
더욱이 또 통일교회는 역사를 바꿔쓰며 태연하게 거짓을 쓴다. 통일교회의 태동기에서 부터 오랜동안 문선명을 믿고 문선명을 위해서 죽을 힘을 다해서 수고해 온 많은 식구들을 거저 내 쫓을 뿐만 아니라 함부로 사단으로 딱지를 부쳐서 명예도 푸라이드도 빼앗아 버리고 배신자라는 죄인으로 만들어 버린다. 나는 이러한 사람을 많이 알고 있지만 예를 들자면 한이 없을 것이므로 그 중에서 일부만 소개한다. 우선 나 박정화 자신의 문제부터 기술하기로 한다. 통일교회사(상권)에 실려 있는 나에 관한 기록을 보면 이렇게 되어있다. 박정화가 누님집에 다만 개 한마리가 남아있는 빈 집에 혼자 있을때 김원필이 찾아 가서 다쳐서 다리를 질질 끌고 있는 박정화를 자전거에 태워서 문선명과 함께 피난해 왔는데 그 선생을 박정화가 서진광산 시절에 배신하고 통일교회에서 나가 버린 것이다. 이와같이 통일교회에 기록되어 있는 박정화는 배신자로 되어있는 것이다. 나로 하여금 말하게 한다면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를 하느냐의 한마디다. 이것은 모든 진상을 똘똘 싸서 감추고 문선명의 우상화 하도록 꾸며 붙인 거짓 기록이다. 그래서 나는 여기에서 그 진상을써 두고자 한다. 우선 지금까지의 요점을 정리 한다면 북에서 피난 할 때의 경과(제2장)에서 자세히 설명한 바와 같이 나는 가족을 버리고 다쳐서 상처를 입은 몸에 채찍을 가하면서 문선명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왔다. 일생동안 고락을 같이 하자고 한 옥중에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였다. 그후로는, 문선생을 도와 경제적인 문제로 말로서 다 할수 없을 정도의 고생을 해 왔다. 문선생과 유부녀의 복귀라고 하는 섹스에서 생기는 갖가지 충돌에도 내가 대처 하였고 여러가지 고생을 겹쳐 가면서도 살아 왔다. 문선명과 함께 있던 7년간에 두번씩이나 경찰의 전기고문까지 받았다. 최대의 고비 7. 4사건에서는 5인의 간부가 체포된 중에 수사당국의 끈질긴 심문에 대해서 나는 온갖 수단을 구사해서 문선명의 죄상을 숨기고 무죄가 되도록 노력하였는데 이것도 통일교회의 기록에는 아무런 죄도 없었던 문선명선생은 구속 되었으나 무죄로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사실은 식구들의 덕분이었던 것은 앞에서 기술하였다. 180 통일교회는 문선명의 신격화에 열중하였으나 1년6개월간의 감옥생활이나 부산의 수정동에서 서울의 청파동에 이르는 7년간 문선명의 한쪽 팔 노룻을 하며 함께 지낸 나로 하여금 말하게 한다면 문선명의인격은 신격적이란 어림도 없고 회노애락이 심하며 금욕과 호색가인 기상이 약한 문선명은 내가 경찰에서 최초의 고문을 받았을 무렵 누가 그를 찾아 가면 항상 피하기가 일쑤여서 안절부절 불안해 했다. 너무나도키가작고 약골처럼 보여서 이 사단의 세상을 맑고 깨끗한 세상으로 복귀해서 본래 그러한일로 이 우주나 세계를 복귀시킬수가 있겠습니까 고 몇번 문선생에게 말한 일이 있다. 1954년 5월 3일의 일이다. 이것도 또 통일교회에서는 무슨 일인지 날짜를 5월 1일로 고쳐서 발표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의 통일교회의 관련 출판물에는 박정화라고 하는 이름은전연 나오지 않는다. 제일로 오래된 나에게 "배신자" 딱지를 붙여서 말살해 버린 것이다.
사실은 전혀 다르다. 배신 한것은 문선명 자신이었다. 그것은 내가 서진광산에 있을때의 일이다. 서진광산에서 일하고 있던 어느날 조동석이 찾아와서 지금 서울에서 사건이 일어나서 선생은 도망갔고, 그때에 문선명 말이 곧바로 광산에 있는 박정화한테 가서 빨리 다른곳으로 도망하도록 전하시오. 만약 경찰이 광산까지 가서 박정화를 체포해서 취조 당할때에 심하게 고문이라도 당해서 박정화가 나의 일을 고백하게 되면 큰일난다고 지시 한 모양이 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어디를 도망하면 좋을까. 이러한 산 속도 위태롭다고 하는것은 당연히 서울의 교회도 식구들집도 위험하다. 이것 저것 생각한 끝에 우선은 문선명을 만나서내 몸가짐을 어떻게 한면 좋을지 의논 해 보려고 생각했다. 나는 그 동안 노동자들이 기거하는 서울역전의 지저분한 간이 숙박시설에서 하루에 빵 한개를 씹으면서 살고 있었다. 182 배신자는 문선명이다 한달이상 기다려도 문선명에게서는 여전히 연락이 없었다. 이상하다고 나는 의심스러운 생각이 일기 시작했다. 뒤에 남은것은 서울에서 온 김덕진과 대구에서 거들어 주려고 와 있던 여자식구 세사람뿐 한 동안은 매식을 하면서 견디고 있었으나 얼마 안되어 바닥이 들어나서 끼니도 거르게 되었다. 너무나도 극심한 가난에 시달려서 밥짓는 아주머니는 대구로 가고 말았다. (그리고 탈퇴 한 김덕진도 서울로 철수해 버렸고 단지 흘로 남은 나에게 같은 마을에 사는 화약주임인 전종만이 때때로 놀러 올 뿐이다. 내가 산속의 광산에서 먹을것에 어려움을 려고 있던 수년 동안에 통일교회는 미국으로 진출하고, 일본에도 통일교회를 창립시켰다. 그리고 3쌍 합동 성혼식(동년 4월 16일) 33조 합동성혼식(1961년 5월 15일)과 소위 36가정의 조직을 만들었다. 36가정의 신부들의 자격은 원칙으로 문선명이 복귀한 여성들로 만들었다. 36가정의 신부들의 자격은 원칙으로 문선명이 복귀한 여성이어야 했으나 기성가정도 있었다. 이제까지의 경위를 지나치게 알고, 문선명의 여성관계도 상세하게 알고 있는 나는 역시 거북스러운 존재였을 것이다. 그러한 때에 또다시 일어난 여자사건으로 쫓기던 그가 광산에 있는 184 문선명은 나를 오래도록 살게 하기 위해서, 도망치라고 한것은 아니다. 자기가 오래도록 살아 남기 위해서 나를 과거의 우리에 가두어 버린채 도망치도록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날만은 신장 개점한 통일교회의 안방자리에 나를 돌아오지 못하도록 찬 것이었다. 이러한 것을 알게 된것은 정말 훨씬 뒤에서야 알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당시의 나는 하루 한개의 빵조각으로 허기를 채우며 살아가면서 한여름의 땀에 흠뻑 젖는 간이숙박시설에서 한달 이상을 문선명으로 부터의 연락이 올 것이라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것은 사실이며 거짓이 아니다. 배신한것은 문선명 이다.
제6장 진짜 사단은 문선명이다
산 증인의 이용가치 재혼해서 신천지로 나는 문선명에게 배신 당하고, 서울역전의 간이 숙박시설에서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있었다. 그러한 나를 구해 준것은 엄덕문씨 였다 나는 그의 도움으로 부산으로 가서 주택건설의 일을 하게 되었다. (그는일본 와세다 대학의 건축과 출신으로서 지금은 세계의 건축가 100명중의 한 사람) 그래도 하늘에 맹세하고 출발한 분신으로서 일해온 나를 절대로 방치 할 리가 없다. 흥남의 옥중에서 「생사를 같이하자」고 맹세 하고 여기까지 서로 도와 가며, 생명을 걸고온 두사람이다. 마음 한구석에 그것을 믿고 있던 나였으니, 14년간에 걸쳤던 문선명과의 인연도 이것이 마지막이고 자나 깨나 나의 인생이었던, 통일교회에서도 손을 떼기로 결심했다. 188 제1의 인생은 북조선시대 제2의인생은 흥남 형무소에서 통일교회 시대이다. 이때 나는 45세 처는 37세였다.
1981년 나는 뇌일혈로 쓰러져서 약 두달 동안 인천 기독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처의 오빠 엄덕문의 처 고희용과 누님의 엄순태가 나에게 「당신과 문선명 선생과는 하늘이 맺어준 깊은 인연이 있으므로 통일교회에서 떠나서는 않됩니다. 떠났기 때문에 당신은 병에 걸린 것이니까, 지금 부터라도 참회해서 통일교회로 되돌아 오시오」라고 권했다. 나도 생각지 않았던 병으로 조금은 마음이 약해 있던 상황이었다. 진실한 크리스찬 이었지만 신앙심이 얇어져이었던지도 모른다. 통일교회의 그 뒷일도 알고 싶었다. 그리고 열심히 모이는 식구들의 근처의 통일교회에 가서 그들과 이야기라도 나누며 조금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도록 노력하자고 생각하게 되였다. 그랬더니 그녀는 대구교회에있던 류권사의 딸입니다 하고 말했다. 그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까 내가 선진광산에 있으면서 대구교회까지 예배를 다니고 있을때 아직 고교생이었던 류집사의 딸이었다 지금은 이곳 교구장인 문홍권목사의 부인이 되어 있었다. 류권사라는 사람은 신앙심이 두터워서 여러가지 고생을 경험하면서도 열심히 교회에 다녔고 ,모두 교회에 다녔던 사람인데 그 아이들은 모두 교회의 임원이 되어 있었다.
오랜간만에 만나 간부 190 남대문에 있는 그랜드호텔의 커피숍에 당시 승공연맹의 회장이었던 김인철과 국제부장 겸 섭외를 담당한 안병일, 김덕진목사, 유효민, 그리고 나, 다섯 사람이 모였다. 이 날 본부교회가 나에게 와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 한 이유는,「김덕진의 행동을 억제 할수 있는것은 박선생 밖에 없으므로, 어떻게 좀 설득해 주십시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김덕진은 전술 한바와 같이 작사 작곡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 통일교회의 식구였을때 통일교회에서 애창하는 성가 20여곡을 작사작곡한중, 성가편집사 유효민씨가 19곡만을 발취 게재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통일교회가 그 노래를 작자의 이름도 게재하지 않고 무단으로 한국어, 일본어, 영어로, 수만부나 인쇄를 해서 판매 하였다. 또 김목사는 그가 통일교회에 있을무렵 문선명으로 부터 직접 복귀를 받은 유신회 한테서 복귀의 섹스를 받은 뒤에 릴레이식으로 그도 열사람이 넘는 여인들을 복귀 시켰다고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복귀를 받은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복귀하고 그 복귀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복귀 시키면 섹스의 둘레가 점점 넓어져서 온 세계의 인간이 모두 복귀하게 된다. 그에게는 이 복귀원리의 실천의 실천 방법에 관해서 자기의 체험을 그대로 쓴 원고를 각 신문에 발표하고 싶다고 하는 의향도 있었다. (제7장참조) 동시에 5천만원의 손해배상청구소동을 민사재판에 걸어 김덕진 목사가 5백만원의 공탁금을 내서 「성가」의 가창 금지처분을 신청할 계획도 있었다. 김 목사는 이러한 계획을 변호사와 의논해서 준비하고 있었던 것인데, 이날 회합이 이루어 졌던 것이다. 통일교 창립의 산증인 서울의 본부교회에서는 가장 고참인 원로인 나에게 어떤 직책이라도 붙여 주려고 이것저것 제안해 왔으나 나는 모두 거절 하였다. 통일교회의 태동기에서 부터 관여 해 온 한 사람인 나는, 나이먹고 늙은 식구로서 통일교회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 되는 일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협력은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기들이 낳은 자식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어버이의 심경이기도 하였다. 192 나는 복잡한 심경 이었지만 사실 있었던 그대로를 이야기 했다. 문선명과 함께 평양에서 부산까지 내려갔던 피난과정을 재현 하기위해서 임진강에서 영등포까지 걸어 주었으면 하는 부탁 이었다. 나는 임진강에서 점심을 먹은 뒤에 비가 부슬 부슬 내리는 것을 부자유한 몸으로 18키로의 거리를 도보로 강행했다. 74세라고 하는 나이 에다가 너무나도 장시간을 걸었기 때문에 혈액의 순환이 나빠져 병원에서는 이 부어 오른 독이 뱃속으로 돌면 위험하다고 겁을 준다. 맨 처음 치료에서 약값이 2만원 침값이 5천원 교통비 4천원등 약 3만원인데 완치 하기 까지 나의 경제 형편으로는 지불이 불가능한 금액이었다. 학생회장에게 연락 해 보았으나 아무런 답변도 없었으므로 하는수 없이 만일의 경우를 위해서 간직해 두였던 수표를 은행에 넣고 한달에 백만원이란 비용을 들여서 겨우 치료할 수 있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이 사진에 대해서 그들이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미국에 있는 문선명이 이사진을 맨 처음에 보고, 이것은 내가 피난할 때에 박정화를 업고 한겨울 추운때에 맨발로 냇물을 건너는 장면이다 라고 이야기 한듯 하다.
말해 버린다면 문선명이 거짓말을 한것이 된다. 그렇게되면 일본의 식구들은 실망한것이 틀림 없다. 일본의 식구들은 감격해 있었으나 나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대단히 괴로웠다.
서울의 본부에 나가게 되면서 부터 나는 창립당시에 수고한 많은 식구들과 만날 기회가 생겼다. 탈퇴한 사람도 많고 또 그속에서 버티고있는 사람도 있었다. 년로(늙으신)한 부인들이 더욱 불쌍했다. 흥남에서는 평양의 여성들과의 성문란한 행위로 사회질서 문란죄, 서울에서는 식구들의 위증과 우리들의 필사적인 행동으로 증거인멸을 한 덕택에 무죄로 되었다고는 하지만 사실대로 라면 장기형이 되는 것 이었다. 196 미국의 탈세사건 외에도, 부동산취득을 둘러 싼 미묘한 소문도 얽혀있다. 1년을 넘게 옥중에서 보내고 다음해 8월 20일에 석방 되었으나, 통일교회는 문선명선생은 사실 무근이다라고 외치고 있었다. 더구나 통일교회가 보배처럼 소중하게 다루고 있는 「창조, 타락, 복귀의 원리」는 문선명의 발안(發案)이 아닌 것이다. 이스라엘 수도원 김백문 밑에 최선길 부인과 다니고 있던 문선명이 김백문의 논리를 그 되는데로 외워서 논리일관이 되지 못한채, 종이에 연필로 쓴 문선명의 메모를 유효민이 정서해서 정리 하고, 유효원이 논리에 모순없이 구성 한 것이다. 통일교회의 원리는 문선명이 김백문의 는리를 도용해서 유효원이 정리해 낸 것이라고 내가 지적하는 근거는, 김백문 저작 「기독교 근본원리와 성신신학」을 읽으면 일목요연하다.
잊을 수 없는 일이 있다. 그래서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오. 병이 웬만하면 곧 찾아 가리다 라고 말하였는데, 3일후에 죽었다고 하는 소식을 들었다. 이 죽은 송사장이 생전에 몇차례 나에게 문선명에 대해서 이야기 한 일이 있다. 한국의 관습상 남매결혼이란 말도 되지 않는 것으로서 있어서는 않되는 일이다. 나는 열심이 그렇지 않다. 무슨 착오 이겠지 하고 그를 이해 시키려고 애썼다. 이 송사장은 부산에서 내가 문선명을 소개 해서 식구가 되었다. 서울의 연희전문학교(현재의 연세대학교)출신으로 매우 친하게 지내고있었다. 부산의 세관과장을 퇴직하고 나서 통관사무소를 경영한 사장이었다 198 처음 한 동안은 왜 열심으로 나오는식구로서 제법 많은 헌금도 하였는데, 문선명이란 남자의 정체를 보고는 크게 실망했다고 노해서 탈퇴해 버렸으나 그후에도 문선명의 일을 그 송사장이 자신을 가지고 사실이다 라고 말한 이상 나는 반론 할 수 없었다.
원리대로 실천한 김덕진(金德振) 문선명과 통일교회의 복귀문제로 무어라 해도 기록에 남기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앞에서도 기술한 바 있는 김 덕진의 문제이다. 그 유신희 한테서 복귀를 받은 그는 종로 5가의 엄순태의 집에서 5인의 여자들을 복귀 시켰다 .그 여자들이 또다른 남자들을 복귀시켜 불과 한주일동안에 70여명의 남녀가 복귀 의식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와같은 방법으로 점점 넓혀져 갔던바 복귀라고 하는 남녀의 섹스 소문이 협회장인 유효원이나 문선명의 귀에 들어갔다. 광산으로 온 김덕진은 광산의 굴속에는 들어 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방안에 혼자 처 밖혀 그때 나는 분명히 당신은 원리대로 실천 한것이니까 당신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약 2년간 나는 그와함께 대화했다. 또 유효원이 나에게 연락이 왔으므로, 나는 서울로 가서 복귀의 실천을 하고 있던 김덕 200 속출한 재림 메시아들의 대책 도리켜 생각해 본다면, 원리대로 문선명이 복귀한 여성이, 남자 식구를 복귀시켜 그남자 식구들이 또 다른 여자식구를 복귀 시킨다고 하는 방식으로 이세상의 전인간을 복귀하여 혈대교환(血代交換)하는 것은 당연 하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중에 「나만이 재림 메시아다. 저 문선명은 엉터리고 사단이다」라고 부르짖어 자기의 복귀를 받지 않으면 진짜가 아니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몇 사람씩 각곳에 출현해서 그사람에게서 복귀를 받고자 모여드는 신자들도 늘어 가게 되었다. 이러한 사태가 되니까 문선명 은 생각끝에 「36가정」이 란것을 생각해 냈다. 문선명이 세계의 인간을 모두 복귀해서 혈대교환(血代交換)하는 것은 무리한 것이므로이 36가정만을 직접복귀(혈대교환)시키기로 한것이다. 그 후에는 진정한 부모가 「성수」를 뿌려서 새로 결혼하는 신부에게 축복을 준다고 하는 형태로 바꾸어 「합동결혼식」을 하기로 한것이다. 36가정이라고 하는것은 이러한 경로로 만들어 진 것인데 그러면 왜 36인가? 「구약시대」의 12지파,「신약시대」의 예수의 12제자, 그리고 문선명의 원리를 「성약시대」라고 해서 12제자, 합계 36가정을 택하여 빼앗긴 종적(縱的)인역사를 횡적(橫的)으로 벌려 놓코, 탕감복귀 한다는 조건만을 세워 구약, 신약, 성약과 전세계를 탕감복귀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36인의 신부는 문선명이 복귀한 여성이나 상대가 아니고서는 자격 이 없다고 되어 있다. 복귀라고 하는 것은 섹스를 뜻하는 것인데, 그 목적은 「혈대교환(血代交換)」이다. 제2의 아담인 예수가 이루지 못했던것을, 제3의 아담(요컨대 문선명)이 이세상에 재림해서, 혈대교환(血代交換)을 한다. 이것은 요컨대 메시아가 세계의 대표로서 6인의 마리아와, 36가정의 아내들과 섹스를 하면, 더러워진 피가 깨끗하게 된다고하는 것인데, 이 의식을 혈대교환(血代交換)이라고 한다. 그리고 혈대교환(血代交換)을 한 36가정에서 태어 나는 아이들은, 죄없는 하나님의 자녀 뿐이며 이러한 사람들이 세계에 널리 퍼짐으로써 죄악이 없는 세상에 태어 난다고 하는 것이다. 현재에는 36가정과 6마리아와 같이 문선명과 직접 간접복귀의 혈대교환(血代交換)을 받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 한다. 제아무리 식성좋은 문선명이라도 전부 먹어 치울 수 없는 많은 수 인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문선명이「성수」를 뿌림으로서 그것에 대신하고 있으며 섹스 3회의 방법은 그대로 하고 있다. 또 일본에서는 혈대교환(血代交換)을 피나누기 라는 표현으로 인식되고 있는것 같은데, 통일교회에는 피나누기란 말은 없다. 어디에선가 잘못 전해진 것이 라고 생각된다. 202 이 36가정은 혈대관계를 한 신성한 가정이라고 하는 것인데, 통일교회의 식구들의 추앙의 대상이 되어 있다. 원리에 의하면, 잃어버린 해와를 도로찾고, 6마리아도 도로 찾는다면,참부모와 함께 살수 있게 되어서 타락했던 인간이 창조 본래의 인간으로 회복되고, 그 원리대로 생각하면 두번다시 이세상에는 이 36가정과 통일교회의 식구들은 죽음도 없고, 고통도 없고, 타락하는 일도 있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 되는데,어찌하여 이 36가정중의 14가정이 죽든지 탈회 하던지 하게 되는 것일까? 이것은 그 원리에 잘못이 있음으로써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204
또 문선명이 재림 메시아 라고 한다면, 초기(처음)부터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양말을 짜 신긴 옥상현*, 자기 인생의 절반 이상을 문선명에게 바쳐 충성한 96세나 되는 그녀가 셋방살이로 겨우살아가고 있는 상황을 문선명은 무슨짓을 해서라도 도와주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 본래 송도욱 장로의 처 였던 박봉식집사의 경우를 보자. 문선명이 송도욱 장로와 오명춘* 집사를 결혼 시켰기 때문에, 홀로 되고 말았다. 그리고 늙은이는 더이상 소용없다고 하는 교회의 방침으로 교회에서도 쫓겨나서 먹고 살기도 어렵게 되었다. 열심히 문선명을 받들어 온 여인들을 어째서 이다지도 몰인정하게 못본체 내버려 둘 수가 있을까? 초기에 자기가 복귀 시킬 때에는 좋아서 함부로 아무짓이나 하고 그 젊음과 아름다움과 돈이 없어 지니까 곧바로 따돌려 치우고, 다른 여자에게로 옮겨가서 두번다시 만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것은 원리에 써 있지 않다. 이것을 여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나 박정화처럼 부러진 다리를 끌며 함께 남쪽으로 피난 해 온 사람에 대해서는 거짓말을 만들어서 배신자로 소문을 퍼트려 나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이 원고를 완성해서 진상을 밝혀야겠다고 결심 했다.
다음에는 유효원씨에 대해서 밝혀 두고자 한다. 이것을 근거로 유효원이 구성 집필한「원리해설」를 완성 할 뿐만아니라, 불구의 몸으로 정력을 다해서 전도사 양성에 밤낮이 따로 없이 충성을 다했으며, 36가정을 선정 할 때에는 그가 고생해서 각자의 짝 짓기를 결정하는 임무를 수행 했다. 유효원은 구 경성제국대학의 의학과 중퇴자로 자기가 환자의 몸 인데도, 자기병에 대해서는 자제히 알고 있었다. 306 두뇌가 좋은 인격자로 신자들의 인기가 대단 하였던 유효원에게 문선명은 많은 비밀을 지령하고 후에 위험 한 존재 임을 느끼고 유효원을 거세하지 않았을까? 더구나 또 당시 미국에 있던 대간부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36가정의 멤버였던 이기석, 박종구(주.이 두사람은 당시 이미 죽었었다) 두 사람은 영계에서 대단히 높은 자리에 앉아 있었으나 유효원씨는 제일 말석에 앉아 있었다고 말했다. 더욱이 그는 통일세계 라고 하는 잡지에 이 기사를 기재하고 청평기도원에서도 발표 하였다. 참으로 죽은 사람에 대해 가혹한 매질이 아닐수 없다. 유효원이야 말로 통일교회 최대의 공로자인데도 볼일이 끝나면 들어덤벼서 못살게 굴고는 죽은 다음에도 매질을 하는 것이다.
유효민의 이야기도 해 두어야겠다. 유효민은 초기에 경제적 사정이 대단히 어려웠을 때에 푸로마이드 사진을 제작 판매하는 아이디어를 발휘해 당시의 식구들의 생활을 지탱시켜 주는등, 통일교회의 발전에 공헌한사람이다. 그런데 가장 핵심적 공헌자인 유효민에게는 주권을 단 천주를 주었을뿐(후에 다 회수하였지 만) 공기총의 발명특허권 (실용신안국제특허 )은 문선명의 명의로 기증하는 것으로 공증되어 조립부장이라는 직책만을 부여했다. 드디어 유효민은 통일교회와 인연을 끊고 1972년에 탈퇴하고 말았다. 나의 다음으로 그림자 같은 존재가 탈퇴 한다고 하는것은 유효민이 두번째이다. 이와같이 가장 최초의 비서였던, 박정화를 배신하고, 두면째 유효민을 못견디게 굴어서 탈회 시키고 ,제3의 송도욱이나 교회최고의 두뇌이자 공로자인 유효원을 사망케 한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예정인지, 문선명의 계획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내가 문선명과 같이 있었던 1953년에서 1956년에 서진광산으로 갈때까지의 말하자면 통일교회 발전의 제일 고생한 무렵에는 문선명의 친척은 한사람도 없었다. 208 실은 문선명이 재림 메시아가 아닌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것은, 문선명 자신이다. 통일교회의 재산을 안심 할수 있는 자기의 친척에게 넘겨서 장래의 생활기반을 확립하는 계획을 실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제7장 참조)
나는 어느때 일신석재사장인 유효영(註 - 92년에 그만두고 탈회)을 만나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다. 이것은 어림도 없는 생각이다. 이회사 일신석재는 유효영사장이 사장겸 목수겸 노동자로 스스로 청소까지 해가며 여기까지 키워 온 회사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나는 부산-대구-서울시대, 북조선에서의 형무소 시대의 일을 생각 하였다.
그런데 그다지도 어려웠던 시대가 지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니까 들어보지도 못했던 문선명의 친척들이 몰려 들어 차지하고 문선명 일족의 천하가 되어 버렸다. 문선명 이 탈세관계로 미국의 형무소에서 복역한 그것도 통일교회에 발표대로 「문선명선생은 아무 죄도 없는데 복역했다. 」고 하는것이 된다. 그 복역하고 있을때에도 막대한 돈을 마구 뿌리며 지내고 있다고 폭로되었는데, 타인의 명의로 부동산을 부정구입 하는 맞잡이나 돈이 되는 기업은 거의 문선명의 친적에게 빼앗기고 있는 현실을 볼때 대관절 이것이 종교 단체인가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210 원리의 이상사회등은 꿈같은 이야기일뿐 재림메시아의 아버지는 별것 아닌 허상에 불과 하다는 것을 빨리 알아야할 것이다.
종교인가? 단순히 배금 기업체인가? 문선명 이 노리는 것은 무엇인가? 메시아를 자칭 하고 있을뿐이라면 원리 는 어떻게 된 것 인가? 문선명의 행위가 원리에 따라서 복귀를 한 것이라고 한다면 원리대로 6인의 마리아로 충분하지 않은가? 6인의 마리아의 정조를 빼앗앗을 뿐만아니라 그외에 더 복귀라고 하는 명목으로 헤아릴수 없을 정도의 많은 여성을 범하고 재산을 착취 한것은 용서할 수 없다. 이러한것은 재림 메시아를 자칭하는 문선명의크나큰 범죄이며 통일교회로서는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연세대학교의 우수한 학생이었던 김영희의 경우를 특기하면 김영희를 임신 시킨것을 알게 된 문선명은 자기의 입장이 위태로울 것을 두려워해서 그녀를 같은 대학의 학생으로서 교인이 된 순수한 청년 오승택과 함께 일본으로 가도록 계획을 꾸몄다. 외국에서의 생활을 보장 한다고 약속해서 부산에서 일본으로 탄피를 밀수출하는 작은 배 가지고 왔던 얼마 안되는 돈은 다 써버렸고 문선명 한테서의 생활비도 오지 않아 기다리다 지쳐버린 오승택은 일본으로 밀항시킬때 문선명이 부를 때까지는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는 있었지만, 문선명한테로 돌아 오기 위해서 또 다시 밀항을 했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대단한 고생을 하고 있던 두 사람은 우선 오청년이 한국으로 돌아와서 직접 문선생에게 이야기 해서 생활비를 얻어낼 예정 이었다. 오승택은 문선명을 만나서 자기들의 어려운 사정을 이야기 하고 생활비를 구하였더니 문선명은 이것을 한마디로 거절 해 버린 것이다. 이렇게 가혹한 이야기는 들어 본 일이 없다. 보통사람이라도 이러한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에게 이와같은 처사는 하지 않을 것이다. 212 하물며 「재림 메시아」라고 하는 그사람이 자기가 책임을 지는것이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다지도 비정한 배신을 태연하게 당하였으므로 오승택은 몹시 노하여 그길로 지금첫 재림메시아로 믿고 우러러 오던 문선명과 결별하게 되었다. 사실은 이때 문선명은 그런 돈은없다. 너희들이 생각해서해 ! 라고 말한 것이다. 오청년이 노해서 뛰쳐나갈때 그자리에 7,8인이 있었으나 누구도 내심으로는 괘심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아무것도 할수 없었다. 그러 한 김영희 모자를 일본 오오무라 수용소에서 발견한 한국인의 황모씨가 그녀를 한국으로 데리고 돌아왔다. 이 아이는 황모라고 하는 사람의 부인이 숨겨서 양육하고 있었는데 교통사고로 죽어 버렸다. 이사건에 대해선 영계가서 소년들을 동원하러 영계에 갔다고 미화 시키는 것이 아닌가! 그 이외에는 「어린양의 잔치」를 거행한다는 구실로 처녀인 이성녀를 복귀해서 그녀에게도 아이를 낳게 했다. 이러한 일이 하나님께 용서 받을 수 있을 것인가. 214 납득되지 않는 사실은 그밖에도 있다. 최원복의 문제이다. 6인의 마리아는 예수가 복귀를 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었는데, 그것을 못했으므로 예수는 죽었다. 그래서 제3의 아담이 이세상에 와서, 6인의 유부녀를 마리아로 복귀시킨다고 하는 구실로 문선명이 섹스를 하고 그 육체도 재산도 빼앗았다. 그리고 처녀 한사람을 선택하여 「어린양의 잔치」라고 하는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문선명과 처인 한학자를 「참아버지」「참어머니」라고 부르게 한다. 참어머니는 이미 있는데도 「최원복어머니」라는 명칭은 원리가운데 어디에서 끄집어 낸 이론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문선명은 6인의 마리아를 선택 하였고 그중에서 한사람을 특별히 어머니 라고 부르게 할 이유는 없다.
나는 제3장에서 문선명으로부터 이순철이 만든 영계의 역사에 관한 시험을 치라는 이순철이 강요에 문제를 보고 답을 썼더니 「됐어 합격」이야 라고 말했다고 썼는데, 사실은 이때 문선명의 눈앞에서 6마리아의 한사람인 이순철과 섹스를 하도록 명령을 받았던 터였다. 나는 이미 문선명이 복귀한 6마리아 중 한사람 한테서 복귀를 받았으므로 문선명의 원리에 말하자면 유자격자였다. 216 전술한 바와 같이 남편 몰래 집에서 많은 돈을 가지고 나온 이순철은 격노한 남편한테 쫓기고 있었다. 남편의 노여움을 모른체 두사람은 이순철이 가지고 온 돈으로 호화스런 강산유람의 여행을 했다. 그리고 매일밤 두사람의 섹스를 문선명은 나에게「보라」고 말하며 「자네도 하게」라고 명령했다. 거기에는 종교도 없었고 원리도 없었다. 성욕에 놀아난 남녀 세사람이 귀신들린 광란의 성희가 아닌가! 문선명이 말하는 복귀의 정체를 나는 그때 실증이 나도록 체험 하였다. 또 부산의 영도의 밤 비좁은 방에서 자고 있는 나의 옆에서 문선명은「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안돼 잠잘코 있어」라고 말했다. 재림메시아라고 자칭 하려면 원리대로 하였을 뿐이지, 왜 감추려고 했을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해못할것이 많이 있지만 원리를 앞세워 가장하고 해괴한 복귀행위는 하나님의 심판을 어떻게 피할런지! 붉은 용(龍)이 세상을 미혹 자칭 재림메시아의 문선명은 그원리를 김백문으로 부터 배워가지고 평양으로가서 파렴치한 사건을 일으켜 체포되어 실형을 받고 복역한 후에 서울로 왔다. 그러나 오늘에서 원리와는 관련이 없는 문선명의 행동으로 많은여성들과 남성들이 희생되어 죽은 시체가 가득 쌓인 속에서 원한의 소리가 들려 오는듯 하다. 그리고 지금은 「복귀 실천의 비밀」이나 「실천의 치부」를 알지 못하는 철부지 교인을 전면에서 내세워서 가면을 쓰고 있다. 미국의 형무소에 들어 갔던것을 영광된 큰 기적등으로 선전하여 옥중에 있었어도 막대한 돈을 쓰고 있었다. 그 돈은 여러 식구들이 목숨을 걸고 벌어들인 귀 한 돈인 것이다. 수년전 미국에서 활동하던 일본인 여신자가 한국 인삼차를 팔기 위해서 흑인촌을 찾아 갔다가 집단으로 윤간을 당하고 죽음을 당했다. 흑인들은 증거를 없애기 위해서 도로에 그 시체를 끌어 내다가 차로 몇차례 깔고 뭉개버린 사건 이었는데 시체의 주머니에서 통일교회 회원증이 나와서 신원이 판명되었다. 이와같이 비참한 희생으로 들어온 돈을 물쓰듯 써버리면서 문산명은 재림메시아를 자칭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식구들이 총동원되어 영감상법(靈感商法)이나 초코렛 껌팔기로 술취한 사람들의 희롱을 받아가면서 돈을벌어, 그돈을 전부 문선명 한테로 보내진다. 그렇게 보내진 돈을 쓰는 명목으로 문선명은 엉뚱한 계획을 꾸며 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국제 하이웨이 건설계획」이다 현해탄에 해저터널을 통해서 일본, 한국 , 중국, 러시아, 유럽을 연결하는 국제 하이웨이를 만들자고 하는 것이다. 통일교회의 내부에서 조차 「실현 불가능」이라고 실소의 소리가 있는데도 말이다. 재림메시아! 문선명이 이세상에 나타나서 국제 하이웨이를 건설하다니 도대체 무슨 짓을 한다는 거야! 국제 하이웨이건설 같은 것을 계획하기 전에 혈대교환(血代交換)을 해서 참 부모가 되어있을 터인데, 그 재림 메시아는 무엇보다도 죄악이없는 세상을 만들어서 에덴의 동산을 복귀해 놓는것이 본래의 그가 할일이 아니었던가. 218 문선명은 미국의 신문이나 매스컴에서 자기를 「목사」라고 자칭했다. 문선명은 신학교에 다닌 일도 없고, 목사로서의 안수 받은 일도 없다. 만일 통일교회 계열의 신학교에서 얻은 자격이라면, 질문이 있다. 문선명은 처음 부터 자기는 재림 메시아이며, 제3의 아담이다. 그리고 자기의 할 일은 혈대교환(血代交換)을 통해서 본래 그대로의 죄없는 세상을 만들어 내는것이 사명이다 라고 계속 말해 왔다. 그렇다면 재림 메시아가 목사로 변신해서 어떻게 해서 사명을 다 할수 있는가 ! 스스로 지 금까지의 속임수는 말 할것도 못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 문선명이 북에서 남으로 내려 와서 이름을 바꾼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성경의 「요한계시록 12:91에 이 세상에는 끝날에 붉은 용이 나타나서, 이세상을 미혹케 한다고 씌어져 있다. 자기의 이름에 용(龍)이 들어있는 문용명(文龍明)은 그것에 착안해서, 서둘러 이름을 문선명으로 바꾼 것이 었다. 이것은 자기 가 붉은용=사단 임을 인정 한것이 된다. 나 자신의 부끄러움을 천하에 내밝혀 쓴 이 고백에 거짓은 없다. 문선명 이야 말로 진짜 사단이 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진짜 하나님의 심판을 마음속에서 부터 기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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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증언-우리들이 체험한 사실 통일교회의 경제적기반에 공헌하고 배신 당했다.
이화여자대학사건으로 문선명과 옥고 동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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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성경원리를 들을 무렵, 문선명을 위시해서 모인 식구들은 , 그날 먹을 것도 어려운 형편이어서 북한에 있을 때에 사진관을 했던 경험을 살려서 나는 푸로마이드를 제작 판매 하는 일을 제안했다. 이것이 적중해서 하루에 일만 장이나 매상이 있었다. 박정화씨가 말한 바와 같이 남자 식구들은 작업을 분담해서 일을 하고, 여자 식구들은 가위로 잘라서 정리하는 일에 몰두 하였다. 이 일은 2년정도 계속되 었다고 생각한다. 산탄 공기총을 발명한 내가 「통일산업」의 사장이 되지 못했던 것은 소위 7.4사건(이화여대 14인 퇴학사건)문교주와 옥고를 같이 치렀음으로 전과 기록으로 총포제조 허가조건에 하자가 있었다. 그래서 김인철씨가 사장 문선명의 6촌 문승룡이 공장장,그 아우가 생산부장이 되고 발명자인 나는 "조립부장" 이라고 하는 세상에 유래없는 기묘한 직 책을 받았다. 주요간부는 문선명 친척들 뿐, 그들은 한사람이 한대의 차를 가지고 화려하게 타고 돌아다녔으나, 나는 도보를 걸어다닐 수 밖에 없었다. 오래지 않아 그것은 더욱 노골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나에게 「당신은 사진에 솜씨가 있으니까 사진관이나 안해보려나」농담 말이, 사진관이나 하고 있을 그런 기분이라면 나 혼자서도 된다. 요컨대 이것은 공기총사업도 궤도에 올라셨고 또 문교주의 여자관계도 지나치게 알게 되여 산탄공기총을 발명한 나도 더이상 필요 없으니 그만두라고 하는 암시 아닌가! 1971년 어느날 나는 미국에서 막 귀국한 문선명을 만나서 여러가지 의논을 해 보려고 생각했다. 224 아무리 온순한 나라 하더 라도 이 것만은 머리가 화끈거렸다. 전신이 막 뜨거워지며 열이 나고 떨려오는 것을 자신으로서도 몸을 가눌 수가 없다. 박정화씨의 체험과 너무나 꼴이 같아서 나는 그의 억울함을 잘 이해할 수 있다. 문선명과 통일교회의 본질을 이야기 할 사건에 관해서 나는 한가지 더 구체적 인 것을 증언 해두고 싶다. 그것은 1955년의 「7 4사건」문선명과 우리들 간부가 체포되 었던 사건인 것이다. 7월 4일의 문선명에 이어서 6일에 나도 체포되었다. 체포이유는 「병역기피용의」우리들 북한에서 남으로 나온 피난민에게는 호적이 없었으므로 신분증명서를 만들어 받을 때에 「제 2국민병」으로서의 병역을 면하기 위해서 실제연령보다 5-6세 정도 올려(연상으로)신고 하였었다. 그런데 이 「병력기피」용의는 문선명 이하의 간부를 체포해서 취조하기 위한구실이고 실은 「간음과 혼음」을 조사할 목적이었다. 수사관의 질문은 날이 갈수록 이상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었고 당신들은 부부사이는 어떠한가? 여자 신자들과는 몇번이나 했는가 병 역기 피 와는 관계가 없는가· . 남의 사생활 문제를 집요하게 심문하는 형사에게 큰소리로 대들고 수사관과 입씨름을 한일도 있었다. 그러나 수사관의 조사는 끈질겨서 책상 위에는 문선명과 여자식구들이 관계를 도표로 그린 그림을 놓아두고 섹스관계의 확인을 하는 것이아닌가 ? 나는 시종일관 모른다. 없다고 버티었으나 내심으로는 그 정확함에 탄복하였다 유치장안에 있는 우리들은 밖의 상황을 잘몰랐으나 박정화씨들의 은폐공작의 결과인지 조사를 받은 여성들은 나는 문선명선생과 그런 짓을 한 일이 없고, 나는 꿈에서 섹스는 하였다 등등으로 적당이 거짓말을 늘어 놓았다. 226 참고로 이때 체포되었던 간부의 유치번호는 문선명 390번, 유효원380번, 유효영 1709번 ,나는 1175번 이었다. 김원필도 체포되어 그만이 1년 실형의 판결을 받고 수감 되었다. 하여간 통일교회와 결별하여 두고 두고 냉정하게 문선명이나 협회의 실정을 보니까, 여러가지 모순과 이념이 눈에 띈다. 비민주적인 횡포로서 독재일방의 역사를 거슬러간다. 또 통일교회의 인쇄물에는 어느 것이나 문선명선생이 1948년에 북한에서 체포된것은 공산당의 종교말살정책에 의해서 내무성에 구속 되었던 것이라고 판에 박은 듯이 거짓 말을 하고 있다. 나는 북쪽의 평안북도 선천에서 사진관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공산주의가 싫어서 1947년 8월 사진관도 각종기계도 그대로 두고 28세때 혼자서 월남했다. 이것은 통일교회의 거짓의 역사이며 박정화씨가 자세히 쓴 바와 같다. 그런데 최근의 합동결혼식은 마치 마작판의 마작말패 섞드시 남의 인권을 아무렇게나 적당히 처리해 버리는 것이다. 성스러운 축복 행복한 꿈이 채 가시기전에 여기 저기서 이흔소동이 발생하고 있으니 과연 땅에서 재림주에게 축복 받은것이 하늘에서도 영원한 부부가 될 수 있을까? 그 책임은 또 누가 져야 하는가?
1954년부터 수년간 6마리아의 한사람. 문선명의 원리를 믿고 복귀를 받아, 5-6인의 남 -유신희씨는 부산 영도에서 남편인 신성묵씨와 다섯 아이들과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때 근처에 살고 있던 사촌오빠 유효원의 권유로 문선명의 포교집회에 방을 빌려 주셨던 것이지요. 유 :그렇습니다. 1953년 12월 24일이었읍니다. 처음에도 3일간만 쓰겠다는 약속 이었읍니다만 결국 25일간이나 되고 말았읍니다. 그때 사촌오빠인 유효원, 효영형제, 그리고'유효민등 머리가 좋은 오빠들이 믿게 되므로 우리들 부부도 덩달아 믿게 됐어요. 228 -그래서 얼마후에 부부가 서울로 가셨군요? 아이들은 어떻게 하셧읍니까? 유 :남편이 먼저 집을 나갔으므로 내가 가족회의 처럼 아이들을 모아 놓고 이야기를 하였읍니다. 「아빠도 엄마도 재림주가 오셔서 대단히 바쁘게 되었다. 그래서 너회들의 뒷바라지를 할 수 없게 되었구나‥‥」 -벌써 40년이나 지났읍니 다만 지금 아이들은? 유 :모두 기독교신자로서 그저 얌전하게 잘 지내고 있읍니다. 그래도 막내딸하고는 자주 충돌이 있읍니다. 어머니 때문에 교육도 제대로 못 받고 대단히 어려운 생활을 해야만 했다고 나를 책망 한답니다. -문선명과 복귀의 섹스를 한 여성으로서 이렇게 얼굴을 내놓고 인터뷰에 응해준 사람은 아마도 유신회씨가 처음이 라고 생각이 됩니다만 지금의 심정은? 유 :지금까지 침묵해 온것은 아이들에게 북귀의 사실이 알려지는것이 부끄럽고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나는 벌써 나이가 나인만큼 참을 수 있읍니다만은 자식들이나 손자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한다면 사실은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기는 합니다만은 나같이 미혹 -문선명과의 복귀에 관해서 자세히 이야기 해 주십시요? 유 :여자 식구 한사람한테 꾀임에 빠져서 밤늦게 캄캄한 문선명의 방으로 갔읍니다. -그것은 왜? 유 : 문선명은 여러 여자와의 관계가 많아서 다음에는 언제 내 차례가 돌아 올런지도 몰랐고 또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피난민 시절에 그것은 다름 아닌 범냇골(지금은 성지로 명명 , 통일교 교인들이 세계 각처에서 참배 하러옴) 당시 나는 근처에 살고 있는 터이여서, 우리 아버님과 문선생은 매일 등산 산책을 하는 처지여서 어느날과 같이 나도 손을 잡고 아침 등산 하던중 문선명이 철부지 나를 움막으로 끌고 들어가 성폭행을 해 많은 출혈이 심했었다고 울면서 이야기 하여‥‥ 아무리 복귀라 하는 명분 이라지만 타락이니 복귀니 전혀 귀가 열리지 않은 철부지 어린아이에게 그런 몹쓸 짓을 할 수가 있읍니까? -문션명 한테서 복귀를 받은다음 유씨는 몇사람의 남성과 복귀를 하였지요. 유 : 그때는 문선명 한테서 복귀를 받은 여성은 다른 남성을 복귀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가르쳐서 그렇게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5-6인의 남성과 복귀 했읍니다 -그래서 유씨는 6마리아의 한사람이었다고 박정화씨가 썼던데요. 유 : 6마리아의 이야기는 듣기는 하였읍니다만 누가 그런지는 알지 못하였읍니다. 그래서 내가 어떤 처지 인지 나는 잘 몰랐읍니다.나 보다 훌릉한 여인들이 많이 있었고 문선명의 주위에는 항상 세사람 정도가 바짝 붙어 있어서 나와는 격이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 230 -그 세사람 이 란 누구인가요? 유 :신정순*, 이순철*, 양윤신*씨 들입니다. 문선명이 유난히도 귀여워했고 후에 재산을 노리고 재벌과 결혼시킨 임영신이 들어 온 것은 그 뒤의 일 입니다. 문선명은 차례 차례로 새 여성을 신변에 두고 시중을 들게 하였다고 하는데 같은 여성들 끼리 특탁거리는 일은 없었읍니까? 유 :있었지요. 여자들 끼리니까 질투나 독점욕은 당연히 있읍니다. 그래서 여자들 끼리 심한 싸움이 있을때에는 문선명이 그러한 여자를 때 린 일도 있었읍니다. -6마리아는 그때 그때의 정원으로 적당이 교체가 되어 결국은 재산이나 새로운 여 인이 목표 이었던가요. 신구교체는 문선명의 독단으로 행해 졌읍니까? 유: 우리들은 옆의 일도 몰랐었읍니다. 그래서 어느땐 그 주위에서 쫓겨난 여자만도 다섯사람이나 되어서 서로 이야기 한일도 있읍니다. 그 정보교환으로 알았읍니다만 실로 여러 여자들에게 피해를 주었던 것입니다.
-여러가지 비극이 셀수 없을 정도로 속출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어 모두가 참말로 분개 하였었읍니다. 유 : 그렇다고 생각 합니다. 사람이 모여 있을 어느땐가 원리의 설명을 내 사촌오빠인 유효원이 열심히 땀을 흘려가면서 열심히 강의하고 있는데 문선명은 여성들과 히히덕 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 신자들에게는 유효원쪽이 존경을 받았고 인기가 있었읍니다.
-지금 자기의 과거를 돌이켜 보고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232
평양 숭설전문학교 출신. 나는 어느 한국육군의 고급 장교의 보신을 위한 모략으로 북의 스파이로 몰려서 유엔군 제1형무소에 무기징역수(438번)로 들어가게 되었어요. 그것이 사실무근인 것으로 증명되어 누이동생 집에서 한동안 신세를 지고 있으면서 그럼 문선명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그 당시는 아직 통일교회 따위는 아무도 몰랐었다. 거처를 모르고서는 편지를 건네 줄 수가 없다. 좁은곳인데 풍금도 아무 것도 없었읍니다. 처음에 노래한 찬송가란 것이6천년 한이 맺힌 싸움의 동산 승리의 월계관을 찾아 구하여‥‥ 문선명이 작사 하였다고 하는 「복귀의 낙원」이라던가 이 세상을 에덴의 동산으로 복귀한다고 하는것 같은 가사였는데 웬일인지 그 노래를 일본의군함 행진곡의 곡조로 노래하고 있는 거예요. 놀란 나는 끝난 뒤에 말 세계를 통일하는 살아있는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우리를 한국인의 원수인 일본국의 그것도 가장 군국주의를 대표하는 군함 행진곡으로 자작의'찬송가를 부른다는것은 무슨 일이요? 이렇게 바보스러운일이 어디에 있오? 234 잠깐 이야기는 조금 뒤로 돌아 갑니다만, 문선명을 방문했던 다음날 부터 아름다운 여성들이 매제의 집으로나를 찾아 오게 되었읍니다. 김선생님 저희들의 교회로 다니시지요 하는 것 이었읍니다. 작곡을 맡은것도 있고 해서 다니기 시작 하였더니 대우가 좋았다. 모두들 같이 푸로마이드 사진을 만들고 있었고 동대문시장에서 장사도하고 있는 신자도 있던 시대였다. 그렇게 가난한 속에서 나에게 신사복을 여러벌 만들어 주어서 즐거워서 열심히 작곡을 한 셈이지요. 요컨대 문선명은 젊었을 시절에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재림메시아 임으로 섹스로 파탄이 된 세상을 자기가 여성과 섹스 하는것으로 원래의 모양으로 복귀시켜 혈대교환(피갈음)을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고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겉으로 내세울수 없는 비밀의 원리임으로 대외적인 설교에서는 그 비유로서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기전에 하나님에게 「될수 있으면 이잔을 피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 원리 에서는 하나님은 95%까지 는 인간을 인도하여 주시지 만 나머지5%로는 인간자신이 생각해서 해결 하지 않으면 안된다. 예수에게도 하나님은 자기가 해결 하라고 발하였으므로 피의 눈물을 흘리는 수고끝에 깨달았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 하 이 원리를 재빨리 나는 깨달은 것이지요. 인간의 몸을 쓴 하나님(문선명)의 섹스의 무리를 점점 널펴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희망을 성취하는 것이 된다. 원래가 불량해서 청춘주식회사사장을자칭하며 아색을 탐미하고 있던 나는 딱 집히는 것이 있었다. 이것은 죄가 아니고 좋은 일이라고 학생시절에 일본에서 다방의 여자들을 유혹해서 그날밤에 범한 경우 같은것은 죄의식을 느낄때도 있었는데·그렇지만 통일교회의 복귀원리는 열심히 섹스에 전념하면 전념할수록 하나넘의 섭리가 성취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선 문선명으로부터 복귀받은 유신회씨에서 부터 「하나님의 거룩한 피」를 나누어 받기로 한것이다 지금은 이미 할머니가되어 늙었지만 당시의 유신희씨는 대단한 미인이었고 머리가 좋은 순수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문선명이 가르쳐 준 원리를 진심으로 믿고 있었으므로 다른 남성 에게 넘겨줘 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리라. 그녀는 남편이 있는 몸이었는데도 욕구불만도 있었던지 몰라도 불량하고 오입쟁이로 여러 여성과 경험해 온 나의 기교에 이미 흐물흐물하게 돼서 즐거워 했어요. 236 복귀원리의 실천 이라고는 하지만 이것은 이미 보통 남녀의 섹스 그대로여서 여자가 위라던가 아래라던가는 관계 없어요. 그후에도 다른 여성과 좋을대로 했다. 원리의 책을 쓴 유효원씨들 처럼 온순하고 꼼꼼한 사람들은 문선명이 자기가 범해서 복귀시킨 누구 누구와 자라고 지시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지만 나로 하여금 말하게 한다면 바보들이예요. 나는 달랴요. 95%는 하나님의 가르침이지만 남어지 5%는 자기가 찾아야 합니다. 문선명과 섹스를 한 여인은다른 남자와 혈대교환(血代交換)을 해야만 한다. 남자는 제2의 여자와 하고 여자는 제3의 남자와 하며 그래서 제4의 여자에게로 릴레이식으로 해간다. 이렇게해서 넓혀 가는것이 원리 아닙니까? 그렇게 함으로서 온세계의 남녀가 하나님의 혈통으로 사단에게 빼앗긴 전인류, 즉 사단혈통의 세계를 하나님편으로 복귀해야 사단의 발판을 무너뜨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문선명이 가르치고 있어요. 이것도 훌릉한 원리실천의 성과이지요. 몇백사람에게 둘레를 넓혀도 의미가 없다 그래서 나는 성질이 났어요 이 새끼 그런 거짓말이 어디 있어 라고 사단이 해와를 범했을때 하나님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사단을 이기는데는 조건만 맞으딘 되는게 아닌가. 그런데 문선명과 3회하지 않으면, 여성은 복귀가 안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문선명이 대구의 미인 신도 우옥례와 나를 정식으로 결혼 시켜서 무마 하라고 지시 하였다는 것입니다. 박정화씨 협조해 주었으므로 이석빈이 근무하는 교회의 장로의 장녀 강혜환 집사와 나는 재혼 하였읍니다. 가난했던 내가 결흔식에서 입을 옷이없어서 박정화씨 한테서 빌린것 238 재혼해서 2년째 되던해에 우리들 부부는 대구에서 서울로 이사해서 나는 성동고등학교의 음악교사가 되었고 밤에는 신학교의 생도로서 공부 하였읍니다. 그 부인이란 문선명의 본처였던 최선길씨 였읍니다. 최여사는 문선명의 인격이나 통일교회의 성의 난맥을 알고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이흔하고 가련하게도 과부가 되고 말았다. 문선명은 호색가로서 성욕이 장성해 내가 문과 결흔해서 자식(문성진)을 낳기 까지 부부관계를 매일밤 10회이상 해도 기운이 펄펄났었다. 이것은 그가 뱀처럼 이상하게 정력이 강한 때문입니다. 나도 전적으로 동감하였다. 통일교회는 종교가 아닙니다. 음란한 섹스교단일 뿐입니다. 문선명과 싸움을 하고서 대구로 옮길때 까지 나는 박정화씨가 있었던 광산으로 쫓겨 간 일이 있었다. 1년반 정도 있다가 서울로 돌아오고 나서 부터 친구들이 빌려준 방에서 남자 6인 여자 3인이 즐겁게「복귀게임」을 한일이 있읍니다 통일교회의 원리를 실천 한것 뿐이지만거기에는 종교다운 것은 하나도 없었읍니다. 나는 깨 달았읍니다. 문선명의 섹스원리는 잘못된것 이란는것을. 그는 이 원리를 내 세워서 어머니와 그의딸 형제를 범하고 끝의 딸에게는 아이까지도 낳게 하고 있읍니다. 극악 무도한 행위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니 겠읍니까? 이번에야말로 문선명도 통일교회도 하나님의 제재를 받을 때가 왔읍니다. 그리고 많은 희생자 들에게 그죄를 보상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나자신도 불량청년시대에 죄를 짓고 통일교회에 들어 와서는 원리를 미끼로 제멋대로 음행을 자행 한 죄는 몇천만가지 엄 벌을 받는다 해도 할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께 마음 속으로 부터 통회하며 열심히 경찰목사로서의 사명과 고아들을 위해서 전력을 다해 하나님의 선한 사업에 봉사하고 헌신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읍니다 <더 읽기 , 아래주소 클릭 ; http://cafe.naver.com/jubo/2086 , 통일교 문선명 - 야록 통일교회사 (野緣 統一敎會史), 박정화 외, 큰샘출판사 http://cafe.naver.com/jubo/1739 , 통일교 문선명 - 빼앗긴 30년 잃어버린 30년(문선명 통일교 집단의 정체를 폭로한다) 박준철 저, 도서출판 진리와 생명사 |